방학은 길었고, 조금씩 지루했다. 딸 친구가 엄마와 여행을 떠났단다. 자신도 엄마와 여행하고 싶다는 가련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했다. 딸과의 번개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부산행 항공권을 예약하고, 그 흔한 호텔예약사이트에서 숙소를 잡느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8시간 뒤. 난 이미 피곤한 몸을 이끌고 김포공항 저가항공사를 향해 걸었다. 대단히 신나하는 딸아이와 함께 말이다. 항공사의 착오로 탑승 게이트가 바뀌는 일이 있었지만, 승객들은 아무런 불만 없이 게이트를 찾았고, 혼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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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015년, 기내에서 발생한 폭행 및 폭언 등 불법 행위.(출처=국토교통부) |
반가운 팝가수 리차드 막스가 기내난동을 제압하고, 덜 익은 라면 때문에 승무원을 폭행하는 등의 일 따위는 메이저 항공사의 일등석에서만 발생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 고급진 의자에 앉아 갑질 난동을 부리는 꼴을 덜 볼 수 있게 됐다.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최대 3년 이하 징역형이 추가되는 ‘항공보안법’이 추진된다. 기내에서 욱 했다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승무원은 테이저건과 포승줄로 난동승객을 제압할 수 있으며, 그 모습을 촬영해 경찰 증거 자료로 쓸 수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항공기 내 난동’과 ‘임금 체불’, ‘감정노동자 피해’ 등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부당대우에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화하기로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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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권한대행 주재로 ‘사회적 약자 보호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출처=정책브리핑) |
백화점 직원을 무릎 꿇리고 고성을 지른다. 진상 고객의 ‘샘플’로 쓰일법한 이런 갑질 고객도 형법상 모욕죄와 폭행죄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서비스직 근로자에게 휴식시간을 늘려주거나 업무전환이 가능한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규정’이 신설된다.
감정노동자의 법적인 개념도 확장했다. 텔레마케터 등 전화 업무를 하는 서비스 노동자 모두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 및 우울병 에피소드’를 추가해, 감정노동과 질병의 의학적 연관성을 명확히 했다.
정부의 갑질 단속은 지난해 이미 시작됐다. 경찰청은 2,069명의 특별팀을 구성해 ‘갑질횡포’ 방지를 위한 100일 특별단속을 실시(2016년 9월 1일~12월 9일)했으며, 감정노동자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피기 위해 산재 인정기준 개선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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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하도급 불공정 행위와 유통거래 단속을 통한 점검 결과.(출처=공정거래위원회 블로그) |
2013년, 모기업의 불매운동이 일어난 것은, 대기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강매를 강요, 폭언을 한 녹취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대리점주 보호를 위한 ‘대리점법’을 제정했다. 더불어 부당대금, 위탁취소, 반품 등 3대 하도급 불공정행위를 위한 단속과 점검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의 엽기적인 행위를 한 교수가 알려진 것은 2014년도의 일이다. 이에 교수와 학생, 선후배, 기업과 인턴학생 간에 발생하는 부당처우 방지를 위해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제정·보급했으며, 대학이 자체적으로 부당처우나 성희롱 등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연 2회 실시하도록 했다.
2011년 1월, 생활고로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운 씨 사건을 계기로 제정(2012년 11월)된 ‘예술인복지법’도 강화됐다. 열정페이, ‘노예계약’에 묶인 문화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최고운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6개 분야 29종의 표준계약서를 개발 보급하고, 서면계약 체결을 의무화 했다. 앞으로 계약서 작성을 거부할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하면 계약 상대방은 5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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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인 등을 위한 ‘예술인복지법’ 개정으로 예술인, 연습생 등의 서면계약이 의무화 된다.(출처=문체부 블로그) |
단속과 처벌강화로 부당처우를 근절하기엔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정부는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계획이다. 초·중·고교 과정에 인권과 부당처우 근절 관련 교육을 실시, SNS와 미디어를 활용한 범국민 캠페인도 추진할 방침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진상 고객을 만나면 마음에 병이 든다.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을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법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집요한 단속과 처벌이 답이다.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보완대책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