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을 지날 때면, 낯선 정서가 스멀거렸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중국어가 떠돌았고, 난 어정쩡한 느낌으로 거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그 많던 중국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명동은 물론, 제주 관광객 12만 명이 예약을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외교문제가 관광산업을 흔들고 있는 거다.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문체부는 지난 6일, 국내 산업관광지 458곳을 발표했다. 관광에 산업이 연결되니 뭔가 생산적인 느낌이다. 맞다.
‘산업관광’이란 생산 현장이나 재래·전통산업 등을 활용해 소득을 창출하려는 관광업계의 새로운 콘텐츠다. 전국에 있는 기존 산업시설을 개발해 재밌고 유익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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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전국 458개 지역의 ‘산업관광지’ 정보를 공개했다.(출처=한국관광공사누리집) |
2016년,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 산업의 대표성을 갖춘 전국 산업관광지를 전수 조사한 바 있다. 이에 지자체 및 기업의 협조를 받아 근대산업유산, 문화콘텐츠 산업 등 9개 분야 총 458곳의 관광지를 공개했다. 흥미를 느낀 분야의 산업관광지를 찾아보자.
부산 수영구의 ‘에프(F)1963’는 철강 선재 산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963년 고려제강이 건립해 2008년까지 운영하던 공장 건물은, 2016년 부산 비엔날레 개최 후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공연·전시회와 더불어 서점과 카페 등도 입점하여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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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관광지로 선정된 전남 고흥군의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출처=한국관광공사누리집) |
화장품의 발전상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은,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스토리가든’이다.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화장품 제조 공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나만의 메시지가 새겨진 립스틱도 받아볼 수 있다. 여성들에게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관광지가 될 듯하다.
우주에 관한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이다. 전남 고흥군에 자리한 나로우주센터는 대한민국의 미래 우주항공 산업을 상징하는 곳으로, 인공위성 발사 현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아울러, 87,000㎡ 부지에 32종의 체험 전시물과 90여 종의 전시품 관람, 3차원 입체영상관 체험 등 우주를 향한 동경이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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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에서 내리는 순간, 구두가 보였다. |
문체부의 산업관광 기반시설 지원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서울 성동구 수제화 거리’, ‘강원 원주시의 뷰티(미용) 산업’, ‘경기 파주시의 출판도시’, ‘전북 순창군의 장류 체험’ 등 지자체 대상, 총 24개 산업관광지의 개발과 기반 조성을 위해 힘써왔다.
은근 바람이 매섭던 지난 8일,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부터다. 성수역을 상징하는 것은 오직 ‘구두’였다. ‘슈스팟(SHOESPOT SEONGSU) 성수’ 라는 테마로 구두 전시는 물론, 구두 박물관과 슈스팟 지도, 부자재 거리 등 수백 개의 업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사진으로 보는 우리나라 구두의 역사’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두의 변화를 볼 수 있었고, 구두 작업실을 재현했으며, 실제 장인들의 땀에 밴 작업도구를 전시했다. 수제 구두제작을 위해 필요한 시간은 7일이었다. 처음 알았다. 성수역사는 구두의 모든 것을 정성껏 담은 섬세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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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우리나라 구두의 역사’를 비롯, 구두 관련 수백 개 업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성수역. |
성수역 1번 출구로 나오자, 서울시가 성수동 수제화 공장 일대를 특화 거리로 조성(2013)하면서 생겨난 수제화 공동 판매 매장 프롬SS.(from SS.)가 있었다. 7개의 매장이 늘어선 형태로, 기품 있는 수제화들을 볼 수 있었다.
갖가지 신발형태의 모형이나 잘 꾸며진 수제화 판매숍, 다양한 부자재와 가죽을 판매하는 상점, 구두를 테마로 조성된 성수근린공원도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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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시가 성수동 수제화 공장 일대를 특화 거리로 조성하면서 생겨난 성수동 수제화 공동 판매 매장 프롬SS.(from SS.) |
성수동에는 50년 된 장인에게 배우는 수제화 제작 공방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구두공장부터 부속업체 등 약 500여 개의 수제화 관련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이는 한국 수제화 제조업체의 70% 이상이다.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이 있다. 70~80년대 명동에 자리 잡은 양화점들은 90년대 금융위기를 겪으며, 땅값이 저렴한 성수동으로 옮겨왔다. 작은 구두 업체가 하나 둘 씩 모여 테마가 있는 수제화 거리가 생겨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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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장인이 일주일에 걸쳐 제작, 전시된 수제화. |
문체부는, 이같은 산업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다채로운 계획을 내놨다. 지자체 대상으로 ‘우수 산업관광지 기반 조성 공모사업’을 시행, 문화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여행사들이 관련 상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방침이다.
산업관광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누리집,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 깃든 산업’, ‘대한민국 대표산업’. ‘신성장 미래지향 산업분야’ 등 전국 곳곳의 산업관광지에 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작은 동네에 수제 구두점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는 없다. 그래도 대도시의 제조업과 고용률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명품 구두에 도전한다는 꿈을 가진 성수동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성수동 슈스팟 전시장에 적힌 문구다. 의미가 깊은 말이다.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세련된 기획들이 우리나라 산업관광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은영 eypark194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