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고민을 털어놨다. 피곤해 보여 물었더니 우연찮게 법원에 증인으로 갈 일이 생겼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난생 처음 가는 거라며 잠도 잘 안 온단다. 필자 역시 주변에 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법정은 가본 적 없고 잘 몰라 대답을 못했다.
대부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요즘은 법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아져 예전에 비해 친숙해졌다. 여기저기 법정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몸짓과 언변, 반전을 거듭한 반전. 실제로도 그럴까.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문의를 해보니 법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일단 국민이 배심원이나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국민 참여 재판제도’가 있다. 또한 견학이 아니더라도 공개재판은 방청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모의재판, 생활 속 법강의, 음악회 등 각 법원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국민에게 열려있다.
필자가 찾은 건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이었다. 평촌역에서 가까운 안양지원은 등기, 재판, 즉결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 역시 검찰청법에 의거, 법원 옆에 검찰청이 있다. 모든 법원 옆에 검찰청이 있는데 두 기관이 유기적이고 신속하게 협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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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과 검찰청은 서로 출입구를 개방해 형사재판 등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
미리 안내를 받은 대로 신분증을 지참하고 들어가자 검색보안시설이 있었다. 앞에는 ‘오늘의 재판안내’가 적힌 게시판이 보였다.
방청하고 싶은 곳을 선택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통로 의자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벽에는 ‘법정에서의 준수사항’이 적혀있었다.
법정에서는 재판장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녹음이나 녹화, 촬영, 중계방송은 할 수 없다. 또한 휴대폰은 전원을 끄거나 진동으로 해야 한다. 위반 시 20일 이하의 감치 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 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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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마친 법정, 허가를 받아 촬영했다. |
재판은 진행 중이었다. 비로소 실제 법정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살풋이 긴장이 됐다. 법정은 화면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장이 앉아 있는 바로 아래 법원서기보와 실무관, 참여관이 있었다. 좌측은 검사, 우측은 피고인 및 변호인, 중앙에는 증인이 있었다.
뒤쪽에는 법원경위관이 있어 진행과정을 도왔다. 증인과 피고인 등의 책상에 놓인 마이크는 동시녹음이 된다고 했다. 일반 사건이라 그런지 방청객은 별로 없었다. 방청 중이라도 조용히 나가고 들어오는 건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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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석과 증거물을 볼 수 있는 스크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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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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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석과 변호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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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마친 후 찍은 법원서기보석과 실무관석, 참여관석. 앞에 보이는 프로젝터로 증거물을 비춰준다. |
필자가 방청한 형사재판은 사기와 폭력, 두 가지 사건이었다. 드라마처럼 손에 땀이 날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차분하게 진행됐다. 증인들은 증언에 앞서 인적사항 등을 확인한 후 선서서를 읽었다. 선서 후에는 위증할 수 없다고 재판장이 말했다. 가끔씩 프로젝터로 증거물을 비춰 확인을 시켜줬다.
갑자기 피고인이 직접 질문을 하고 싶다며 재판장의 동의를 얻었다. 의도와 달리 감정 섞인 이야기로 길어지자 재판장이 조용히 말했다.
“피고인, 의견을 이야기하지 말고 질문만 해주세요.” 변호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피고인에게 나지막이 흥분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음 기일을 정하고 증인은 경위관이 챙겨 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돌아갔다. 사건 내용은 복잡했지만 절차는 어렵지 않고 분위기는 차분했다.
쉬는 시간 없이 다음 재판이 이어졌다. 이번은 폭행에 관한 사건이었다.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증인이 교도소에서 왔기 때문에 교도관 2명과 경찰 1명이 동행했다.
재판은 30여 분간 진행됐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쓴 일기와 글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두꺼운 사건파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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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곳곳마다 봄이 흐른다. |
4월 25일은 ‘법의 날’이다. 지난 3월 24일, 50여 명 변호사들이 재능기부 해 만든 어플 ‘모두의 변호사’ 출범식을 가졌다. 법에 취약한 계층에 다가가기 위한 ‘모두의 변호사’는 영상 통화를 통해 무료법률상담이 가능하며 4월 25일부터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된다. 앞으로 점차 규모를 확대해 변호사가 직접 무변촌으로 찾아가는 법률상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법은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어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법원에 오게 되기도 한다. 물론 어느 프로그램 제목처럼 ‘法보다 화해’가 먼저고 가능한 좋게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법정을 보고 나니 법이란 단어 때문에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법에 대해 잘 모른다 해도 법원을 한번쯤 가보는 건 좋겠다. 특히 법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면 더 말할 필요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법정 안에서 세상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 지, 법 너머까지 배울 수 있었다. 다시 지인을 만나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