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선거 TV 토론회 등을 보면 과거와는 좀 달리 선거공약을 중심으로 토론회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선거에서 각 후보자와 정당이 제시한 정책을 중심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선거문화를 ‘메니페스토’라고 부른다.
선관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대선 후보자의 10대 공약을 공개하고 각 후보자의 공약을 분야별로 비교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후보자의 재산과 병역, 전과 등의 정보도 상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사전투표 시작 전날인 5월 3일까지 ‘정책·공약 바로알기 주간’으로 정하고 각종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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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알 수 있는 공보물. |
2017년은 우리나라 첫 선거가 있었던 1948년 국회의원 선거 이후 70년이 되는 해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7일부터 대통령선거 역사를 주제로 한 ‘선거, 대한민국을 만들다’ 특별전을 세종문화회관과 세종특별자치시 대통령기록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전시회에서 70년 대한민국 선거역사에 대한 자료들과 함께,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나온 후보자의 슬로건과 공약을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도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각각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외교·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다. 무엇보다 신중을 기해서 대통령을 뽑아야 할 때다. 그 기초는 바로 공약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나왔던 공약들을 한 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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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정·부통령선거 공약은 ‘계급타파’와 ‘인정과세 폐지’의 대결이었다. |
1. 1956년 제3대 정·부통령선거는 ‘계급타파와 인정과세 폐지’로 대표된다. 6.25 전쟁의 충격과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 재건이 급선무였던 1950년대,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계급타파와 남녀평등’을, 민주당 신익희 후보는 ‘인정과세(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사하여 결정한 과세 표준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 폐지와 공정가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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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거와 군의 정치적 중립으로 대립된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 공약 |
2.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 공약은 공명선거와 군의 정치적 중립으로 대립된다. 1962년 최초로 국민투표를 시행해 대통령 직선제와 단원제 국회로 헌법이 개정된 후 직선제로 치르게 된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혁명과업 완수를, 민주민정당 윤보선 후보는 민정수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룬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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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대통령선거 공약, ‘빈부 격차 해결과 남북 교류’ |
3.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빈부 격차 해결, 남북 교류’ 등을 내세운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오며 주목 받았다. 그러나 ‘번영의 70년대’를 약속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됐다. 두 후보는 안보 문제와 예비군 폐지 문제, 경제정책 문제 등으로 열띤 공방을 벌였다. 이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호남 소외론’을 내세웠고, 박정희 후보는 ‘신라 대통령론’을 내세우는 등 처음으로 지역감정 문제가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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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근대화’ VS ‘사회적 약자의 복지’의 공약대결이었던 제12대 대통령선거. |
4. 1981년 제12대 대통령선거는 ‘정치 근대화’와 ‘사회적 약자의 복지’ 대결이었다.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의당 전두환 후보는 민주·정의·복지를 내세우며, 경제근대화를 넘어 ‘정치 근대화’를, 민주한국당 유치송 후보는 ‘사회적 약자의 복지’를 약속했다. 복지라는 공통된 프레임으로 대결을 했으나, 간접선거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국민의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는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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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안정 대 군정종식’이었다. |
5.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안정이냐 군정종식이냐’였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10월 27일 국민투표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로 헌법이 개정됐고, 직선제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함께 ‘군정종식’을 외쳤지만 단일화에 실패했고, ‘안정’을 내세운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노태우 후보는 ‘1인당 국민소득 5천불’을,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는 ‘족벌경제체제 탈피와 인권보장’을 약속했으나 정치적인 불안정보다는 좀 더 잘사는 나라를 바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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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는 금융실명제, 15대는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이 지지를 받았다. |
6. 1990년대 제14대와 제15대 대통령선거는 금융실명제와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으로 압축된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는 ‘신한국 창조’를 내세우며, ‘금융실명제, OECD 가입’을 약속하며 당선됐다. 그러나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 대결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슬로건으로 ‘IMF 난국 극복,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등을 약속해 당선됐다. 투명한 경제와 선진국으로의 열망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력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대화합을 명분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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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16, 17대 대통령선거는 행정수도 이전과 국민소득 4만 달러 공약이 주효했다. |
7. 2000년대 제16대,17대 대통령선거의 키워드는, 행정수도 이전과 국민소득 4만 달러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행정수도 이전’을 약속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민주당 후보가 보수표 분열의 결과가 아닌, 정면 대결을 통해 당선된 첫 사례가 됐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는, 일부 중도 기권하긴 했으나 1987년 직선제 이후 12명이나 되는 가장 많은 후보가 난립한 선거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으로 ‘한반도 대운하, 국민소득 4만 달러’ 등 경제공약을 약속하며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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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의 슬로건이 담긴 벽보. |
정책과 공약은 선거에서 승리한 후 수행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실천을 약속하는 일종의 청사진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방법, 이행기간, 재원조달방안을 명시해서 제시해야 실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19대 대통령선거는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짧은 기간에 준비하고 살펴봐야 하는 선거이다. 그럴수록 후보자는 실천가능성이 있는 공약을 내세우고, 유권자는 공약의 내용과 실현가능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조강숙 naksc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