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 가는 곳, 만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 틀을 깰 수 있는 건 여행뿐이다. 정서적 환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떠나는 거다. 짐을 싸고, 정해진 길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그만이다. 행복해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은 설레임을 쫓는 일이다. 짐을 싸는 순간 마주한 세상의 중심엔 선명한 ‘봄’이 있다. 망설임 없이 떠나 가슴을 채워보자. 일탈의 짜릿함에서 얻은 추억으로 한동안 고고하게 버틸 수 있을 거다. 고민하는 사이, 기어코 봄은 사라진다. 마침 4월 29일부터 5월 14일까지 봄 여행주간이다.<편집자 주>
건강이 중요해지면서 ‘걷기’가 일상화되고 있다. 걷기는 특별한 장비나 경제적인 투자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유산소 운동이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도심 공원, 산은 걷기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봄 여행주간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국립공원 3050주간(5월 1일~14일)’이 더없이 반갑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설립 30주년과 국립공원 제도 지정 50주년을 기념하고 국내 관광 진흥에 도움을 주기 위해 특별히 기획된 행사이다.
이와 함께 5월 5일에는 오대산과 속리산에서, 6일에는 경주, 6~7일에는 월악산, 9일에는 가야산, 12일에는 태안해안국립공원 등에서 ‘국립공원 힐링로드’ 걷기 행사가 차례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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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달빛기행이 열린 서악서원. |
필자는 이 중에서 지역 자체가 국립공원인 경주에서 열린 ‘신라달빛기행’을 다녀왔다.
달빛기행으로 찾은 경주는 ‘국립공원 3050주간’에 ‘봄 여행주간’이 함께 열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습이다. 천년고도 신라의 수도 경주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선 관광버스가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흔히 ‘달빛기행’ 하면 ‘창덕궁 달빛기행’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 원조는 1994년부터 시작한 ‘신라달빛기행’이다. 달빛기행은 신라문화원이 주관하는 경주의 대표 야간관광프로그램으로 낮에는 유적지 스토리텔링 답사를,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 속 경주의 멋을 체험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기관에서 우수 프로그램에 선정될 정도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점도 오랜 기간 인기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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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체험, 죽궁체험. |
오후 3시 ‘서악서원’에서 본 프로그램의 막이 오른다. ‘서악서원’은 1561년 설총, 김유신,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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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체험, 다도체험. |
이번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행사 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양형 신라문화원 사무국장에 따르면 “경주하면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은 먼저 떠올린다.” 며 “서악서원처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경주의 다양한 보여주고 싶다.” 며 서악서원에서 달빛기행을 진행하는 이유를 풀어줬다.
무엇보다도 건물의 원형을 잘 갖추고 있어 고택숙박은 물론 다도예절, 국악공연, 화랑체험, 민속놀이 등 문화재 활용이 가능한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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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체험, 의복체험. |
이날 역시 의복, 다도, 죽궁 등 전통문화체험이 진행됐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찾은 이가 대부분이었는데 아이들은 왕, 왕비옷을 입어 보기도 하고, 구절초 꽃차를 마시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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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길, 진흥왕을 기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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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서 듣는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
전통문화체험이 끝난 후 ‘유적지 테마답사’를 가졌다. 이달의 테마는 ‘삼국통일의 길’로 삼국통일에 큰 초석을 닦았던 무열왕릉, 진흥왕릉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무열왕릉, 진흥왕릉은 서악서원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고, 문화해설사와 함께 1시간이면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왕의 무덤이 직접 보며 연신 감탄을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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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예술단과 관객이 하나가 된 ‘고택음악회’. |
이렇게 낮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서악서원에서 밤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밤 프로그램은 오후 7시부터 진행된다. 달빛기행에 앞서 서악서원에서는 가람예술단의 ‘고택음악회’가 펼쳐진다.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국악은 ‘지루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날의 공연만큼은 달랐다. 관객과 소통하면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배워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모인 150명의 관객이 ‘아리랑’을 합창했을 때는 전율마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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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달빛기행을 기억하며. |
음악회가 끝나고 이날의 하이라이트 ‘달빛기행’이 이어진다. 각자 소원을 적은 등을 들고 무열왕릉을 함께 걸어본다. 어둠이 내려앉은 왕릉에 등을 둔 무리가 나타나자 공연장 속 주인공이 된 듯하다.
특히 무열왕릉에서 바라본 경주 야경은 또 다른 포인트이다. 참가자들은 다들 카메라에 이 모습을 담기에 바쁜 모습이다.
제주도에서 온 김애란 씨 가족은 “이번 봄 여행주간을 맞아 아이와 함께 여행을 왔다.” 며 “고택체험을 하려고 서악서원을 들렀는데 뜻하지 않게 ‘달빛기행’이라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경주에서 좋은 추억을 얻고 간다.” 며 소감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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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기행을 마치며. |
경주에서의 짧지만 긴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다. ‘달빛기행’과 함께 걸어본 경주는 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듯하다. 경주는 지리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전체 22개 국립공원 중에서 유일한 사적형 국립공원이다.
도시 곳곳의 사적과 유물이 이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얼마 남지 않은 봄 여행주간 경주에서 마무리 해 보는건 어떨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홍진 lastking-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