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시험도 끝났고, 놀 시간만 남았는데 무슨 일이냐고 의문을 갖는 이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예전만큼 한가하지 않다.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난이 말해주듯 도서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양손에 책과 노트, 연필을 쥐어진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숨죽이며 공부하는 자리에선 누구 하나 잡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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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
열람실에 들어가 보니 책상에는 토익 책과 공무원 수험서 등이 널부러져 있다. 출판사만 다를 뿐 학생들이 공부하는 분야는 비슷해 보였다. 대부분 올 하반기 ‘반드시 취업’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취업 성공을 위해 학생들의 열정은 방학에도 식을 줄 몰랐다.
어느 날 필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요즘 뭘 준비하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 같이 ‘취업 준비’였다. 대부분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이게 정답일까’ 라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김천 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최 모 학생은 “공공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하려면 학점 4점대와 토익 800점, 관련 자격증 3개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쟁쟁한 취업 준비생들과 비교하면,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한 게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그는 “올 하반기까지 준비해보고 안되면 되는대로 취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본 김 모 학생은 “함께 면접 본 사람들이 모두 서울권 학생들이었다. 괜히 자신감이 떨어져 내년에 대학원이라도 갈까 고민중이다.” 말했다.
학력을 무시할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지방대’라는 꼬리표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으로 통한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거나 자신의 역량보다 한 단계 낮은 회사에 지원하는 일이 흔하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까지 줄곧 지방에서 공부한 필자는 누구보다 지역 학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처음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에 휩싸인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령, 학생들 사이에선 어느 기업이 수도권 학교 졸업생만 뽑는다거나 특정 학교에 가산점을 준다 등의 이야기가 돈다. 대부분 근거 없어 보이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괜한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면접에 떨어졌으면 ‘학교 탓’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는 학생도 있다.
공공기관, 취업시 학력기재 안 한다
후배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부문 채용할 때 블라인드 채용제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에 기본적으로 적는 학력 칸을 없애 실력위주로 인재를 뽑는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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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블라인드 채용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출처=청와대) |
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채용하는 분야가 일정 이상의 학력이나, 스펙, 신체조건을 요구하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이력서에 학벌이나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들은 일체 기재하지 않아야 한다.”며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국회에서도 지난 23일 ‘블라인드 채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차별적인 개인신상정보의 요구 금지’ 조항을 신설해 구직자에게 채용예정분야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상정보들이 이에 해당되며 구인자는 이를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해서는 안 된다. 차별적 요인들을 걷어내 공정하고 객관적인 채용을 도모하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직 입사 시험에는 2005년부터 학력란을 기재하지 않도록 했고, 고용노동부도 2007년부터 학력, 성별, 출신지 등을 삭제한 표준이력서를 만들어 사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이를 사용하는 곳이 드문 상황이다.
지방대 학생들, 기대감 커져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후배들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앞서 이야기를 나눈 김 모 학생은 “사실 지방대 학생들은 취업 정보를 얻는 것부터 쉽지 않다.”며 “기업들의 취업설명회가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발 빠른 취업 준비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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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블라인드 채용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필자의 모습. |
최 모 학생은 “지역의 많은 공공기관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대부분 수도권 사람들로 채워진다.”며 “이들은 막상 주말만 되면 서울로 가기 때문에 사실상 균형발전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를 활성화를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많이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대로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활성화 될 경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벌논쟁’이 해소될 전망이다. ‘좋은 학교 나와야 성공한 선후배가 끌어준다’는 그들만의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잘 정착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을 쌓는 것 외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이현주 ad_mv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