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던 시절이다. 레코드점에 돈과 공테이프를 가져가면 원하는 곡을 녹음해 줬다. 1996년 5월 발매된 015B의 ‘21세기 모노리스’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알았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까지 또렷했다.
‘2032년, 자원고갈과 사이보그 범죄, 핵전쟁 위기로 인류는 다른 행성에 드림시티 건설을 시작하고, 7년 만에 파견 노동자가 귀환하지만, 가족들과 만나는 순간 핵이 폭발한다.’는 내용이다.
막연하고 근본 없는 공포였다. 하지만,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뮤비는 현실이 됐고, 누군가는 이 노래가 지구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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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우리나라 첫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를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출처=청와대 누리집) |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은 탈원전을 향하고 있다. 지난 달 19일,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했으며, 27일에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들을 하나 둘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 해 9월 발생한 지진이 발단이었다. 벽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렸다. 5.8의 강도로 흔들린 땅은 낯설고 구체적인 공포였다. 놀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지진의 진앙지가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에 무게를 실었다. 우리나라는 원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원전은 6.5의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 됐지만, 7.5의 지진이 예상 가능했다. 622회의 여진 역시 불안을 가중시켰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며, 이는 미국의 20배, 러시아의 100배에 달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한 나라였다. 보유한 전체 25기의 원전은 총 4개의 단지에 집중돼 있다. 뿐만 아니다. 원전 주변 30km 내 인구는 세계 최다였다. 후쿠시마 원전 주위엔 17만 명이었지만, 고리원전엔 382만 명, 월성 원전엔 130만 명이 있다. 30km가 중요한 이유는,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의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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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지난해만 총 622회의 여진이 계속됐다.(출처=기상청, 한국수력원자력) |
체르노빌 참사와 후쿠시마 사고를 목격한 전 세계는 이미 탈핵으로 가는 에너지혁명을 시작했다. 최근 30년 동안 유럽은 약 50기의 원전을 줄였고, 미국도 약 10기의 원전을 줄였다. 신규건설은 하지 않고,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을 폐쇄해왔다. 선진국들은 원전을 서서히 축소하며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써 원전 2배 이상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대선 시 ‘문재인 1번가’에서 최다 지지를 받은 공약도 탈원전이 포함된 에너지 정책이었다. 경제성을 우선하던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안전과 환경을 중시하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거다.
신재생에너지는 안전하고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으며, 고갈될 염려가 없고 연료비가 공짜에다 세금을 붙일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에서 18%로 낮추고,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를 20%에서 37%로, 신재생에너지를 5%에서 20%로 높이는 등 친환경 발전 비중을 늘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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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일본 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누출됐으며, 이 지방은 아직 복구돼지 못한 채 폐허로 남아있다.(출처=픽사베이) |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던 일본은 지진에 완벽하게 대비한 국가였다. 100% 안전한 원전은 없었다. ‘원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켜본 독일은 이미 탈원전을 시작했으며, 스위스 역시 탈원전 대열에 합류했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석탄과 원전을 줄여나가며,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 역시 탈원전의 추세에 맞춰나가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원전 사업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전환하고,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위한 기구로 만들었다. 다양성과 대표성,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신고리 5·6호기 관련해서 가칭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선정된 일정규모의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공론조사’ 방식으로 공론화 작업을 거쳐 최종판단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원활한 전력수급을 위한 대체 에너지 확보와 그로인한 경제적 손실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무엇도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할 수는 없다. 지진을 비롯한 미세먼지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가 위험을 예고하고, 잦은 고장으로 가동이 멈춘 원전을 볼 때마다 국민들은 심장을 쓸어 내렸다. 이는 원전을 경제적 셈법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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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로 널리 쓰일 수 있는 태양 에너지.(출처=픽사베이) |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20만 명이 피폭됐다. 1988년 기형아 출산과 출생 전 사망률이 두 배로 증가했으며, 유아 사망률이 2.5배, 어린이 암 환자가 10배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체르노빌 원전복구를 위한 예산을 산정하고 있으며, 2065년까지 정화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원전사고의 완벽한 대비는 ‘탈원전’이다. 지금 이 순간, 한반도의 깊은 땅 속에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