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습니다. 9월은 독서의 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성인 3명 중 1명은 책을 아예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쁜 일상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우리들. 하지만, 서점에 들어가 빳빳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책을 고르다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진 않나요? 오래전 읽었던 책의 문구가 여전히 마음속을 울리고 있진 않나요? 사실, 우리는 책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정책기자 3명과 함께 책 향기 가득한 9월을 맞이해보시면 어떨까요?<편집자 주>
예향의 도시 전라북도, 그중에서도 목판 인쇄가 발전했던 전주는 조선시대, 출판문화의 중심이었다. 임진왜란 당시엔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유생들이 실록을 지고 산을 올랐고, ‘혼불’의 저자, 최명희 선생을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전주시는 인구 대비 도서관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인문주간을 선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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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대전 개막식에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를 낭독했다. |
이처럼 책과 인연이 깊은 도시 전주는 지난 5월, ‘책의 도시 선포식’을 가지고 책 향기 가득한 도시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부터 3일까지 국내 최대 독서 문화 축제인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렸다. 맑은 하늘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요즘, 책을 테마로 전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책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시민들과 함께 찾아봤다.
책은 역사로 빚은 도자기입니다 (김진원, 25,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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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판본 문화관 내부. |
전주는 예로부터 활자문화가 발전해, ‘완판본’이라 불리는 고유의 기록문화가 있었다.(완판본은 전라도의 중심도시였던 전주의 옛 이름 ‘완산’에서 발간된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완판본은 한글 고전소설이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적들이 주를 이뤘다.
이는 19~20세기 전라도 지역 방언을 잘 나타내고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9월, 전주 완판본 문화관에선 목판본과 필사본을 비교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관람객들은 호남지역 출판문화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고, 목판인쇄 체험을 하며 우리 기록문화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필자도 이곳을 둘러보며 책을 보급하기 위한 조상들의 오랜 정성과 노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책은 작가의 삶을 뜨거운 열정으로 녹여낸 결과물입니다 (김상훈, 35, 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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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작가의 친필 엽서. |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울안에 심어 놓고 천대하면 못 크는 법이 아니냐. 정(情)도 그와 꼭 같다.’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한 구절이다.
무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필한 작품 혼불은 그 이름처럼 작가의 혼과 타오르는 열정이 담긴 작품이다. 최명희 작가는 완간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지만, 이를 숨기고 작품을 완결하는데 집중할 정도로 뜨거운 혼불을 책 안에 쏟아냈다.
그래서 혼불을 읽다 보면 아름다운 글귀와 찬란하게 빛나는 최명희 선생의 사상이 심금을 울린다. 이번 가을을 맞아 필자와 같은 최명희 작가의 팬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전시가 열렸다. 바로, 최명희 작가가 생전에 썼던 미공개 편지 엽서가 최초로 전시된 ‘최명희 작가전’이다.
작가로서 활동하며 그녀가 했던 고민과 또 다른 면모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자리는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또 한 번 울렸다. 엽서 속 담긴 선생의 생각을 하나하나를 읽다 보니 혼불의 구절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울안에 심어 놓고 천대하면 못 크는 법이 아니냐. 책도 그와 꼭 같다.’
책은 작가의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다리입니다 (김라영, 23,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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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책은 작가의 경험을 전달하는 다리라는 김라영 씨의 말처럼, 독서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얻은 깨달음을 간접경험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해왔던 고민을 해결할 때도 있고, 책을 통해 위로받기도 한다.
‘술을 먹으면 목소리가 커지지만 책을 읽으면 목소리가 깊어진다.’ 독서 대전 개막식 행사에서 고은 시인이 했던 말이다.
일찍 끝나버린 축제에 짙은 여운이 남는다면, 완연한 계절처럼 깊은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면, 지금 소개하는 두 곳을 방문해보자. 비록 독서대전은 지나갔지만, 책은 이곳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헤이 온 와이’를 꿈꾸다 - 삼례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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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책마을은 무려 10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
삼례 책마을은 과거 1920년, 일제가 곡물을 수탈해가기 위해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북하우스를 비롯해 한국학 아카이브, 북갤러리 3개 동으로 짜여 있는 책마을에선 다양한 책 전시뿐만 아니라 우리 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북하우스엔 고서점과 헌책방이 있는데 유명 소설부터 일반 서점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절판 서적들까지, 서가에 빽빽이 꽂혀있는 책이 무려 10만여 권에 육박한다.
버려졌던 건물이 책을 만나 세계적인 책 마을이 된 영국의 ‘헤이 온 와이’처럼, 삼례에 생긴 지식 창고 또한 세계 속의 책마을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향긋한 편백나무 숲에서 읽는 책 한 권 - 숲 속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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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도서관은 건지산 편백나무 숲 사이에 있다. |
전북대학교 캠퍼스 둘레길에 위치한 숲 속 도서관, 편백 나무 사이에 숨겨져 있어 처음 방문할 때는 찾기가 쉽지 않지만 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에겐 숨은 진주 같은 공간이다.
작은 겉모습과 달리 내부엔 2,000여 권의 책이 구비돼있고, 매주 책에 대한 강연이 열린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 속에서 읽는 책을 읽다 보니 독서의 향기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마 인류의 발명품 중 자연과 가장 어울리는 것은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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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
책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떠났던 책 여행 속에서 많은 시민들을 만났고 그들이 가진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은 역사였고, 열정이자 경험이었다.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답한 고은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책은 밥입니다. 책은 별입니다. 책은 어머니입니다. 책은 길입니다. 책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책을 만날 때마다 각자의 의미를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홍정의 hje273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