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을 맞추지 않은 즉흥 연주에 연주자마다의 소리들이 쌓아졌다. 컴퓨터 사운드, 기타, 건반, 리코더, 콘트라베이스에 몽골의 전통악기까지. 그러자 무용가들의 즉흥적인 몸짓이 더해졌다. 독무는 때로 둘 씩, 셋 씩, 그 이상의 군무가 되기도 했다. 시각 예술가들은 이들 사이를 누비며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끝없이 얽히고 설켰다.
예술가들의 몰입도는 어마어마했다. 예술작품의 한 가운데 들어가서 작품을 바라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싶었다. 레지던시 ‘첩첩산중X평창’의 첫 전체 워크숍 풍경이었다. ‘렛츠 플레이(Let's Play)’란 총괄 프로듀서의 말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퍼포먼스였다.
레지던시 ‘첩첩산중X평창’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참가국의 음악, 무용, 시각 부분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40일간 평창과 강원지역을 투어하며 한국의 자연과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경험하고, 그를 통해 받은 영감과 주제의식들을 공연·전시·영상·출판의 형태로 발표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다.
![평창문화올림픽 프로젝트 중 하나인 국제 레지던시 [첩첩산중?평창]의 주공간이 되는 평창 복합문화공간 감자꽃 스튜디오.](https://www.korea.kr/newsWeb/resources/attaches/2017.09/26/0105.jpg) |
평창문화올림픽 프로젝트 중 하나인 국제 레지던시 ‘첩첩산중X평창’의 주공간이 되는 평창 복합문화공간 감자꽃 스튜디오. |
첩첩산중 레지던시는 문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 국가와 지역,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고 올림픽 정신에 입각한 평화와 화합,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협업하는 기획이다.
지난 15일 아티스트들이 입국해 서울 행화탕에서 환영파티를 갖고 서울 북촌과 서촌, 을지로, 홍대, 이태원 등에서의 문화투어와 강릉 문화유산 관람,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마친 후 평창 감자꽃 스튜디오에 입성했다.
아티스트들은 40일 동안 평일에는 개인작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주말마다 정선, 강릉, 평창에서 전통축제와 5일장을 비롯해 올림픽 장소 등을 둘러보며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한국 전통예술과 정체성’에 관한 인문학 강의 등을 수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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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의 참가 아티스트들은 강원도에서 한국의 문화와 자연을 체험하고 이에 영감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월정사 템플스테이(위쪽) 참여 모습과 전통놀이워크숍(아래 왼쪽)과 연주가들의 즉흥연습. |
지난 22일 토요일, 평창 감자꽃 스튜디오를 방문해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살짝 엿보았다. 국내 예술가 5명과 해외 예술가 15명 도합 20명의 예술가(음악 부문 7명, 무용 부문 7명, 시각예술 부문 7명)들이 40일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평창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농어촌 버스를 타고 감자꽃 스튜디오를 향했다. 하루 딱 3대 있는 버스인데 30여 분 기다리고 탔으니 운이 좋았다. 한적한 동네라 버스 기사가 건네는 인사가 정겹다. “처음 보는 분인데, 어디까지 가요?” 지도상에 그려진 정류장이 있긴 할텐데 딱 감자꽃 스튜디오 앞에 내려주고 버스는 가던 길을 간다.
마침 저녁 식사 전 자유 시간이었다. 아티스트들은 자유롭게 운동장에서 공을 주고받고, 조깅을 하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자유로운 자연의 내음과 이 공간 안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는 예술가들이 피부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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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자연 속에서 자유로움과 영감을 얻는 아티스트들. |
워크숍에 앞서 말레이시아 출신 무용가 용 션 리우(Yong Sean Liu) 씨와 타악기 연주자 최혜원 씨를 만나보았다.
용 션 리우 씨는 “올림픽에 관심이 많았다. 산에 와서 작업하고 자연과 풍경에서 영감을 얻는 일은 매력적이다. 상상과 실제 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 이곳에선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고 프로젝트 참여 계기를 밝혔다.
최혜원 씨는 “시각예술까지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여러 나라 출신의 예술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주고받는 시너지가 매우 크다. 아마 서울이었으면 일과를 마치고 또 어디론가 가야하고 집중력이 떨어졌겠지만 이곳에선 서로 대화도 많이 주고 받게 된다.”며 40일 간의 평창살이 장점에 대해 말했다.
![[첩첩산중?평창]에 참가하는 20명의 아티스트들.](https://www.korea.kr/newsWeb/resources/attaches/2017.09/26/4(103).jpg) |
‘첩첩산중X평창’에 참가하는 20명의 아티스트들. |
용 션 리우 씨는 “작가마다 생각과 작업이 다다르다. 그 접합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과제일 수 있지만 쉽게 진행된다면 도전도 없지 않나. 사람 대 사람, 문화 대 문화의 고민에서부터 부딪히고 깨나가는 이 작업이 좋다. 문화올림픽은 아티스트끼리의 달리기 같다. 같이 작업하며 자극 받게 되고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도출된다. 이번 프로젝트로 시각이 더 많이 열리고 장르 넘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최혜원 씨도 “부딪치며 생겨나는 스파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작가들 간 다양한 조합과 결과가 나올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자유롭게 몸을 풀고 대화를 하던 예술가들이 워크숍이 시작되자 진지한 눈빛으로 바로 돌변했다. 때로는 음악가들이 앞서서 길을 터주기도 하고, 때로는 무용가들이 먼저 몸짓을 던지면 음악가들이 이들에 맞춰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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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에서 즉흥 합주를 하고 있는 연주가들. |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협업에 장르 구분 역시 파괴됐다. 무용가들이 음악가 손에 있던 악기를 갖고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리코더 연주자는 소리 이외에도 자신의 몸을 움직여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냈다. 때론 거침없는 큰 사위의 몸짓이 몰아쳤고, 거대한 파도는 잔물결로 바뀌어 잔잔하게 일렁이기도 했다.
격랑의 고조를 넘나들던 워크숍이 끝난 후 아티스트들이 다시 모여 앉았다. 관객은 한없이 압도당한 무대였는데 작가들의 에너지는 지칠 줄 몰랐다.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앞으로 어떤 구성과 기획으로 다음 작업을 진행해볼지 열띤 토의가 이어졌다. 자리가 끝난 후에도 삼삼오오 다시금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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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워크숍에서 즉흥적인 군무를 선보이고 있는 무용가들. |
작가들 중 몇몇은 벌써부터 서로 협업을 약속하기도 했다. ‘첩첩산중X평창’의 프로젝트를 일부 엿보며 문화적 역량이 얼마나 증폭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지 새삼 놀랍기도 했다. 단순히 작가 개인 역량의 총합이 아니라 이들이 함께 만들어낼 에너지와 우리나라에 또 올림픽 이후 그들 나라에 잔존하고 싹을 틔울 문화의 어마어마한 역량에 대해 생각했다.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와 워크숍에서 절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어느 무용가가 선보이는 것을 지켜보며 더욱 그러한 생각이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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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워크숍에서의 협연. |
워크숍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평창의 밤은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에 압도됐다. 아티스트들이 평창의 자연에서, 강원도의 문화에서 채취할 영감이 매우 기대됐다.
이들은 10월 14일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선보이는 오픈 쇼케이스를 갖고, 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레지던시 최종 결과물을 발표한다. 아티스트들이 돌아간 이후에도 시각부문 작가들의 작품 전시가 10월 20일부터 11월 4일까지 서울 행화탕에서 진행된다.
이들의 단지 첫 시작을 엿보았을 뿐인데 최종 발표가 몹시 기다려진다. 이 멋진 열정의 파장들이 어떻게 얽혀 들어가고 정제되고 때론 증폭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남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