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주말 오전 ‘수상한 봉사 가치가자‘라는 말만 듣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역으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나처럼 ‘낚여 온(?) 사람’이 10여 명 더 있었다. 대학생을 포함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지만 직장인과 휴가 나온 군인도 있었다.
우리는 깃발을 들고 수상한 봉사를 알리는 조끼를 입은 인솔자가 이끄는 대로 행선지도 모르는 ‘수상한‘ 버스에 올랐다.
장소도 모르는 수상한 봉사활동 현장을 찾아가다
‘수상한 봉사 가치가자’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가 손길이 필요한 우리 주변의 불우시설을 찾아가는 봉사활동이다.
한 시간여를 갔을까. 동승한 인솔자들이 우리들이 도착한 곳을 설명했다. 이때 우리는 봉사할 곳을 비로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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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새빛 요한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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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 요한의 집 바자회 현장. |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간 곳은 경기도 용인의 시각장애인 양로원 ‘새빛 요한의 집’이다. 행사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이런저런 좌판을 깔고 물건을 정리하는 등 시장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새빛 요한의 집은 시각장애인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도록 돕고 주거환경을 개선해보자는 취지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자회를 열었다.
벌써 준비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위치에서 바자회를 찾은 손님들에게 물건과 음식을 팔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미션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그들의 손과 발이 돼 바자회를 함께하는 것이다. 그들이 식사하고 노래자랑과 음악회를 감상하고 쇼핑을 즐기도록 돕는 활동이다. 오늘 그들이 바자회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새빛 요한의 집에는 현재 시각장애인 27명이 거주하고 있다. 부부 셋도 있다. 80%가 60세 이상이지만 40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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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봉사’ 참가자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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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풍물팀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우리를 맞이한 김혜공(45) 사회재활교사는 봉사활동 하기 전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과 기본정보를 안내했다. 장애인중에서 가장 힘든 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이라 한다. 생활보조인이 없으면 거의 외부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가장 힘들어
시각장애인과 처음 인사할 때는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한다. 그러면 장애인은 목소리와 손 촉감으로 사람을 인식한다. 냄새와 향기에도 민간한 편이다. 발자국 소리로 사람을 분간하는 장애인도 있다.
간혹 비장애인의 낮은 목소리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은 가라앉은 목소리를 화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시각장애인과 이야기할 때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안내자는 장애인보다 반보 앞에 나서서 가볍게 팔장을 내미는 것도 센스.
우리는 식당에서 시각장애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내 파트너는 1급 시각장애인 김용태(66) 씨. 이곳에 온지 10년째로 터주대감이다. 그는 입소한 날짜까지 기억했다. 실제 나이는 6살이 더 많다. 호적이 잘못된 탓이다. 예전에는 태어나고도 늦게 호적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앓은 그는 주눅이 든 나에게 손님 맞이하듯 말했다. 식사는 자신이 알아서 먹겠으며 외출할 때 신발도 잘 챙길테니 등등. 그는 이곳을 찾은 여러 손님을 벌써 많이 대해본 솜씨다.
그는 점심으로 나온 육개장에 깍두기 반찬을 한데 부어 먹었다. 평소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어먹지만 나를 배려한 행동으로 보였다. 나도 그를 따라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날 편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도움’을 내가 받는 기분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입에 맞은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먹어보지 못한 생소한 음식은 멀리한다는 얘기다. 김 씨는 점심 때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은 떡볶이와 어묵이라 누누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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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나온 육개장과 깍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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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자랑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청력이 좋아 노래를 잘하는 편이다. |
점심 식사 후 장애인 노래자랑 시간. 건물 지하실에 있는 노래방 기기를 축제에 맞춰 내놓았는데 음향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부 신청곡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의 노래 실력은 가히 가수 수준급이다.
도움을 받아 무대에 올라 가만히 부동자세로 내뿜는 노래는 청아하고 우렁찼다. 모두 가사를 기억하고 박자와 리드감을 놓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타고난 청력과 집중력 덕분이다.
김 씨는 심사위원처럼 노래하는 동료들의 수준을 일일이 나에게 일러주었다. 노래를 권유했지만 그는 할까말까 하면서도 끝까지 노래하지 않았다. 만약 노래자랑 시간이 더 길었다면 그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 노래하고 박수치다보니 어느덧 출출하다. 간식시간에 맞춰 김 씨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어묵을 대령했다. 저렇게 먹어봤으면 싶다할 정도로 맛있게 먹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와 나는 벌써 친해졌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호적 나이가 2살 차이라면서 서로 ‘형, 동생’ 하기로 했다.
형 용태 씨는 간식 후 자신의 입에 묻은 것이 없나며 내게 턱을 갖다댄다. 난 준비한 휴지로 그의 입 주변을 깨끗이 닦았다.
몇가지 생활용품 쇼핑을 돕고, 그의 방까지 데려다준 후 우리는 헤어졌다. 함께 입소한 부인이 2년 전 먼저 세상을 떴다. 외로움을 견딜만하니 이번에는 김 씨가 4년 전 수술한 대장암이 재발해 투병 중이다. 나는 암선배로서 말했다. “병원 약 잘 챙기고 식사와 운동을 꾸준히 하면 꼭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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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씨와 나는 처음 만났지만 형,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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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코이노니아 어린이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준 ‘수상한 봉사’
장애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시작장애인들도 중도실명자가 많다. 당뇨와 황반변성 등 질환 후유증에 따른 것이다. 직장생활 하다 갑자기 안보여 입소한 시각장애인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만들기를 잘하는 편이다. 점자를 다루고 손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청력이 좋아 음악에 재능을 갖는 장애인도 많다. 보행이 불편할 뿐이지 시각장애인들은 야구장을 찾기도 한다. 생활보조인이 곁에서 설명해주지만 함성만 들어도 경기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에 점자를 못 읽는 중도장애인들이 많다. 기역 니은 자음을 배우는데 1년 이상 걸리는 사람도 있다. 점자도서관에서는 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이들은 TV보다 라디오를 즐겨 생각보다 정보에 빠른 편이다.
봉사활동 장소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을 뿐 전혀 수상하지 않았다. 되레 모르고 와서 봉사한 보람과 감동은 더 큰 것 같다. 무엇보다 용태 씨는 내게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가르쳐 줬다.
부디 새빛 요한의 집 식구들이 건강하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수상한 봉사를 계기로 보다 다양한 봉사프로그램이 발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빛 요한의 집은 국가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면 후원금이 절실하다. 현장에서 이들을 돕기 어렵다면 조금씩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
새빛 요한의 집(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원앙로 363-12)
후원계좌 081-17-006200(농협 예금주 새빛 요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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