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을 죽인 여자가 15년 만에 교도소를 나온다.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10)’는 그렇게 시작한다.
굳은 표정의 조용한 여자는 누구를 해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살던 여동생이 죽은 조카의 처방전을 발견한 순간, 숨겨왔던 그녀의 사연이 밝혀진다.
안락사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숨죽인 채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의사였던 여자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가 고통 받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안락사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엄마의 마지막 선택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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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가족들의 고통이었다.(출처=보건복지부) |
지난 23일부터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 15일까지 ‘연명의료결정법’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2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무의미한 의료행위로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환자 자신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모든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 치료를 해도 회복될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인 환자만이 가능하며, 이는 환자의 담당의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가 함께 내린 판단이어야 한다. 만약, 치료로 회복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치료를 중지하면 자살 방조에 해당될 수 있다.
환자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 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의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나 영양분, 물, 산소 등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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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의 동의와 더불어 담당의와 전문가의 진단을 필요로 한다.(출처=보건복지부) |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는 분명하다. 존엄사란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병의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개념이지만, 안락사는 약물 투입 등을 통해 고통을 줄이고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환자가 의식은 없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둔 상태라면 가족 2인이 연명 의료에 관한 환자 의사를 진술해야 하며, 환자가 의식이 없고 평소 연명 의료 중단에 대한 의사도 확인할 수 없다면 가족 전원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만, 내년 2월부터는 담당 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인 판단을 받은 경우, 타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존엄사 논란이 시작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던 한 환자의 가족이 퇴원을 요구했고, 병원 측은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얼마 뒤 환자는 사망했고, 법원은 2004년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존엄사 논란이 다시 시작된 건,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이다. 당시 식물인간 상태인 할머니의 가족들은 무의미한 치료가 필요없다고 여겨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병원 측에 요구했다. 병원 측은 거절했고, 2009년 5월 대법원은 연명 의료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던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첫 판결이었다.
2005년 정부는 의료계와 종교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가생명윤리 심의위원회’를 구성했으며, 10년간 논란이 지속된 존엄사법을 위해 연명 의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존엄사 논쟁 이후 20여 년 만에 합법적이 된 거다. 그간 여론은 회복 불가능 환자의 인위적 생명연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존엄사’를 찬성하는 쪽이 적지 않았다. 아울러, 85%의 국민이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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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은 말기 질환이나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외국인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유일한 병원이다.(출처=디스니타스병원, 외신종합) |
편안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스위스로 향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스위스 법은 본인이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제 3자의 압력이 없으며, 장기간 죽기를 원해온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허용했다.
스우스 디그니타스 병원은 1998년 설립 이후, 2014년까지 모두 1,905명을 안락사 했으며, 이 가운데 다른 국적의 외국인은 1,74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존엄사의 윤리적인 논쟁은 말기질환의 고통을 겪거나, 그러한 환자를 곁에서 돌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다. 죽음을 예감한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말 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건강할 때나 병에 걸렸을 때 죽음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마련된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고통 속에 비참한 삶을 연장하지 않을 권리, 이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식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살 권리’와 ‘죽을 권리’ 중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는 환자의 고통이 우선적으로 배려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의료 행위나 도덕적 판단보다 먼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