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파팍’
몇 년 전이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물이 내부로 들어갔는지 불꽃이 튀었다. 배수구 쪽 난방 장치에 문제가 된 누전이었다. 잠시 후 매캐한 검은 연기와 유독 가스가 새어 나왔다. 그 검은 연기는 죽음을 부르는 사신 같았다.
일단 꺼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냄새를 들이마시자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황급히 아이들에게 물에 적신 수건을 건네고 밖으로 나가있으라고 했다. 급한 대로 눈앞에 보이는 생수병을 통째 들이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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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
이후 가정용 소화기를 샀지만 그 날 일을 잊어 갈 즈음, 다시 화재가 일어났다. 기름 가득한 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채, 중요한 전화를 받은 탓이었다. 맛있는 저녁을 기대했던 아이들은 갑자기 치솟는 불길에 당황했다. 큰 아이가 재빨리 가정용 소화기를 들고 왔다. 침착하게 안전핀을 뽑고 분말을 뿌리자 불이 꺼졌다. 연기와 분말이 온통 집안을 뒤덮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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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 있는 용산소방서. 언제나 소방서 방문할 때 절반은 미안함을 느끼고 가게 되나 어김없이 친절하다. |
지난 7일 근처 용산소방서를 방문해 홍보교육팀 강경섭(41) 주임과 전민호(37) 대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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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소방서 당직근무를 섰을 때, 숭례문 화재 현장을 직접 본 일이 기억에 남는다는 강경섭 주임(좌)과 전민호 대원(우). |
“2012년 부산 노래방에서 9명이 사망한 사건도 누전으로 일어났어요. 반드시 가정이나 시설에서 누전차단기 위치를 알아두고 불이 나면 우선 차단시켜야 합니다.”
필자 이야기를 들으며 강 주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예방 차원에서 가정용 소화기를 추천했다.
“2017년 2월 4일부터 주택용 소방시설(소화기, 단독경보형 감지기)을 의무화하고 있어요. 얼마 전 ‘말하는 소화기’도 나와 화제가 됐지만 일반 가정용 소화기도 안전핀을 뽑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으니 꼭 구비해 놔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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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소방서 3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용산소방서를 방문했을 때 남긴 사인이 소방관들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전민호 대원은 “화재는 초기진압과 신속한 신고가 가장 중요해요. 무리한 진압 시도는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요. 화재가 난 곳의 문을 닫아 차단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불길이 위층으로 번질 수도 있거든요.” 라고 덧붙였다.
“가정용 소화기를 뿌릴 때는 꼭 나갈 문을 등지고 뿌려야 시야 확보가 됩니다. 가정용 소화기로 자체 진화가 되었다 해도 119로 연락 주시면 좋습니다.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 출동해 사후 조치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또한 “기름이 원인이면 물을 쓰면 안 되므로 프라이팬에 불이 붙으면 3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소화기를 벽으로 분사해 분말이 불을 덮게 하거나 양배추 잎 혹은 뚜껑을 덮어 공기를 차단해 끄도록 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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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 마련된 소방안전체험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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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실로 들어가는 곳. 체험에서는 컴컴하고 어둡고 곳곳에 걸림돌이 있어 실제 상황과 비슷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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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체험 중간에 있는 엘리베이터. 누르려고 하자 화재 시, 절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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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적성체험으로 온 학생들은 소방복을 입고 체험을 한다. |
용산소방서에는 체험실이 마련돼 있다. 한 달 전에 예약하면 소화기, 심폐소생술 등 소방안전교육을 체험할 수 있다. 대원들을 따라 4층에 있는 소방안전체험실로 들어갔다. 필자가 방문한 날만 해도 오전, 오후 두 차례 단체교육이 있었다고 했다.
직접 소방복을 입어볼 수 있으며 진로 교육을 위해 소방공무원 체력시험 측정을 해볼 수 있다. 또한 연기실에 들어가 실제 상황을 체험해보고 영상으로 불을 꺼볼 수 있다. 여러 체험 중에서 일주일 전에 새로 들어왔다는 VR체험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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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필자가 이곳에서 두 번째 VR체험을 했다고 했다. |
지하철과 선박 사고 중 필자는 지하철 화재를 선택했다. 지하철 내부로 들어서자 갑자기 좌석에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순간 가상현실인 것을 잊고 당황했다. 현실에 있는 대원들이 가상 속 필자에게 침착하라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안내 방송대로 노약자, 장애인석 측면 비상 버튼을 눌렀다. 이후 객차에 비치 된 소화기를 이용해 안전핀을 뽑은 후 불을 껐다. VR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출입문을 수동으로 여는 방법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우선 출입문 의자 아래쪽에 있는 조그만 뚜껑을 열고 비상 코크를 잡아당긴 후 손으로 밀고 나가 유도등을 따라 비상구로 나갔다. 기어를 벗고 보니 몇 발자국 이동하지 않았는데 가상현실 속에서는 매우 멀고 길게 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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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과 배우 유지태 씨가 소방서 방문 시 각각 앉았던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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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을 위한 아이들에게 소방공무원 체력시험 6종 중 오래달리기를 빼고 5개 측정이 가능하다. 참고로 남자인 경우 윗몸일으키기를 1분에 52개 이상 해야 만점이다. |
매년 11월 9일은 119를 연상시키는 ‘소방의 날’이다. 특히 올해 2017년은 42년 만에 소방청이 독립을 했다. 소방청은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앞선 지난 9월 조종묵 소방청장은 선포식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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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소방서 소방안전체험실 벽에는 체험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과 배우 유지태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3일 ‘제55회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는 올해 1,500명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부족한 소방 인력을 확충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소방 공무원 신분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소방관 처우 개선 및 인력·장비 등 지역 간 소방 투자 격차 해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2019년 1월부터는 지방직인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괄 전환해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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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실습을 하는 모습. 정말 매캐했다. |
소방서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데, 작년에 만난 홍보 대원이 올해는 구급 대원으로 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신속하게 출동하는 대원들을 보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화마와 싸우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은 말로 다 못할 훈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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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119,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화재 예방이 더욱 중요한 계절이 돌아왔다. 미리 미리 예방해 큰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정용 소화기가 아직 없다면 올 겨울이 오기 전 구입해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