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이다. 유럽 국가들의 올림픽 불참 가능성이 보도됐다.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이어지던 시기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됐고,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와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의 마음이 교차됐다.
분명 우려할 만한 일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국가에 자국 선수들을 보내는 것은 말이다. 그럼에도 그 위험 가능한 곳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아울러, 잠재된 불안은 북·미간 말 폭탄 수위에 비례해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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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13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평창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한 올림픽 휴전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출처=문화체육관광부) |
그 즈음 뉴욕의 9월은 완고하게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뉴욕에 위치한 유엔 방문 때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고, 지난 13일, 유엔은 ‘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의 핵심은 올림픽 기간 중 ‘분쟁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올림픽은 오직 평화를 추구했다. 도시국가들의 전쟁 중단이라는 큰 그림을 위해 스포츠가 한 몫을 한 거다. 휴전결의안의 관례로 정해진 휴전기간은, 선수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 경기장으로 오는 시간부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다.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후까지로,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2월 2일부터 3월 25일까지다.
그렇다고 휴전결의안이 모든 분쟁을 막지는 못했다.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사건은 1972년 뮌헨올림픽 기간에 벌어졌다. 팔레스타인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11명의 이스라엘 올림픽 팀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했으나, 전원이 살해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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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장 연단에 오른 홍보대사 김연아는 이날 평창동계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총회에서 특별연사로 나와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출처=문화체육관광부) |
이후 올림픽 휴전은 여름·겨울 올림픽에 앞서 2년마다 개최국이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엔 총회에서 의결하는 것으로 체계화 됐으며, 올림픽 참가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분쟁을 중단하자고 호소했다.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가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휴전결의안 채택 시 북한 대표단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평화적인 올림픽을 바라는 각국의 염원을 확인했을 터다.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위한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의미도 적지 않다.
유엔 결의안에서 발표했 듯 “평창올림픽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침 다음 올림픽 주자는 일본(2020년 하계)과 중국(2022년 동계)으로 스포츠에 아시아 시대가 열렸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동북아의 화합의 장을 실현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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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석대표 자격으로 유엔 총회에 참석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두번째)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첫 번째 메시지는 평화”라며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제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출처=문화체육관광부) |
우리는 이미,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경험한 바 있다. ‘반쪽 대회’로 치러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달리, 서울 올림픽에는 미국, 구소련, 중국 등이 모두 참가해 평화적 화합을 이뤘다.
북한 선수단의 올림픽 출전 역시 평화 올림픽을 위한 지름길일 수 있다.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북한 선수들이 적지 않으니, 외교적 입장을 배제한 북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로 평화적 스포츠 정신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80일 남았다. 전쟁 위험이 적지 않은 바로 이 땅에서,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 열릴 날이 말이다. 평창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약 80㎞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올림픽과 전쟁, 이 상반되고 거대한 단어가 개인의 일상에 어떤 변화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관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빈틈없이 연결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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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의 출전과 더불어 평화적인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픽사베이) |
올림픽 휴전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는 ‘무기를 내려놓다’라는 의미다. 무기를 내려놓은 손으로 악수를 할 수 있다. 전쟁의 위험이 가장 선명했던 곳에서, 북한 선수들과 함께 하는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의 화합이 이뤄지길 바란다.
남북관계 개선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기회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오직 평화다.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개최지, 평창에서 그 어려운 걸 해낼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