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의 정권 풍자는 눈엣가시였다. 연극이 오르지 못했고, 영화 상영을 막았으며, 미술작품이 전시되지 못했다. 지난 정권은 세심하게 골라낸 그들을 블랙리스트라 했다.
“문화 예술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앞서 생각하게 해주고 때로는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또 우리 일상의 삶을 빛나고 소중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선 그 사회가 허락하는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예술에 대한 배려이고 그 나라의 예술적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2016년 10월, 블랙리스트 파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이 SNS상에 올린 글이다. 14개월이 흐른 지난 12월 7일,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가 정해졌다. ‘사람이 있는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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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난 7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문화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출처=문체부) |
‘비전 2030’의 의미를 짚어봤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위해 제시된 것으로, 2010년대에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2020년대에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해 2030년에는 ‘삶의 질’ 세계 10위에 오른다는 보고서에서 기인한다.
문화비전 2030이 기존의 문화융성과 다른 점은 또렷하다. 이제까지 완성된 정책을 발표하고 홍보하는 방식이었다면, 문화비전 2030은 완성된 것이 아닌 계속 진화하는 개방형, 진행형 문화비전을 수립하겠다는 거다.
실제로 도 장관 부임 이후 문체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문화정책포럼, 문화자치연속포럼, 콘텐츠발전분과회의, 체육청책포럼, 열린관광토론회 등 3,100여 명이 참여한 현장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낡은 정책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종환 장관은 기조 발표를 통해 “문화비전은 진보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을 뛰어넘는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책으로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원리의 중심”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문화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서 창의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문화 개념을 확대하고 사회 혁신의 동력이 되는 문화를 지향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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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문화비전 2030‘을 완성된 것이 아닌 계속 진화하는 개방형, 진행형 문화비전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
또한, “세월호 재난을 겪으며 ‘이게 나라냐’라고 절규했던 사람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나라를 외쳤던 사람들, 희망을 잃어가는 미래세대,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국민의 창작·향유권을 침해한 국가에 대한 반성을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표어에 담았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새 문화정책의 3대 가치로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제시하고 8가지 정책 의제로 #개인의 창작과 향유 권리 확대 #문화예술인의 지위, 권리 보장 #문화다양성 보호와 확산 # 공정 상생을 위한 문화생태계 조성 #지역 문화 분권 실현 #문화 자원의 융합적 역량 강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 혁신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를 들었다.
각 정책 의제는 문화, 예술, 콘텐츠, 미디어, 체육, 관광 등 분야를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구체적인 대표 과제들은 정책 현장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해 나갈 계획이다. 분명한 것은, 공론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문화비전에서 제시한 의제들은 얼마든지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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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문화비전 2030 기조의 3대 가치로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설정했으며, 이는 국민의 문화적 권리에서 출발하는 문화기본권에 기초한 핵심가치라고 전했다. |
준비는 치밀하다. 지난 10월부터 민간전문가와 각 정책 분야별 책임연구자를 중심으로 ‘새 문화정책 준비단’을 구성해 문화비전 2030 수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문체부는 이번 문화비전을 통해 의사 결정이 중심이 되는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공론의 장을 열어 구체화된 정책사업을 내년 3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의미가 남다른 문화정책인 만큼 기대가 크다. 블랙리스트의 중심에 섰던 문체부가 적폐청산을 넘어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생명, 인권경시로 고통 받는 사람들, 블랙리스트로 배제된 예술가들 모두를 보듬는 게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한 도 장관의 말처럼 사람이 있는 문화가 일상에서 어떠한 변화로 다가올지 촘촘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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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전의 3대 가치로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제시한 문체부는 #개인의 창작과 향유 권리 확대 #문화예술인의 지위, 권리 보장 #문화다양성 보호 등 8가지 정책 의제를 발표했다. |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세상은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바뀌는 건지 모른다. 비판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비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풍자와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기대한다. 단호하고 참신한 문화정책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자존심을 되찾고, 실효성 있는 기획들로 국민의 삶 역시 세련되게 빛났으면 좋겠다. 문화가 이토록 제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