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모임이 이어지고 친구, 지인들과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라는 인사를 나눈다. 거리의 영롱한 트리 장식과 더불어 풍성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연말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영 무겁게 느껴진다. 못내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봄, 가을 날이 좋을 때는 날이 좋아서, 여름에는 여름대로, 평상시에는 더 잘 잊고 살다가고, 춥지만 그럼에도 마음만은 따뜻한 이 계절이 되면 아무래도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이 못내 마음이 걸린다.
평소 무시로 지나다니는 수원역, 그 광장 끝에 무료급식소인 ‘무한돌봄 정 나눔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아침과 저녁 식사 배식이 이뤄진다.
 |
수원역 광장 끝에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인 ‘무한돌봄 정 나눔터’가 있다. |
광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하던 곳을 경기도, 수원시,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경기사회복지협의회 등과 손잡고 민과 관이 협력해 2014년 개소했다. 수원시 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위탁관리를 맡고, 이곳에서 10여 년째 무료 급식을 하고 있는 마중물비전센터 백점규 대표가 운영을 하고 있다.
알량한 동정심의 발로는 아닐까 스스로 점검하면서도 취재를 나가며 뭐라도 조금은 보탬이 되고 싶어 좀 거들어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럼 고맙죠.” 라는 따뜻한 말이 되돌아왔다. 청소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저녁 배식에 동참했다.
50여 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급식소에 정말 끝도 없이 줄이 이어졌다. 자리가 없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국그릇을 식판에 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라는 인사를 건넨다.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건네는 씩씩한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꽁꽁 가린 노숙인들도 있다.
.jpg) |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이날 배식에 동참했다. |
드럼통으로 준비한 국은 금세 바닥을 보인다. 준비한 플라스틱 국그릇이 모자라 일회용 그릇까지 동원된다. 국그릇을 옮기는데 슬리퍼 차림인 노숙인들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손등이 다 튼 한 할머니의 손이 국그릇을 향해 식판을 내민다.
무료급식소에서는 고봉밥이 일상이다. 고봉밥으로 밥을 담아 드려도 급식판을 다시 들고 와 두 번씩 내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오랫동안 이들을 보아 친분이 있는 자원봉사자가 다정스레 말한다. “뒤에 사람들도 생각해야죠. 이것까지만 더 드릴게.”라고.
저녁에만 160명에서 200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배식 받는다. 마중물센터 백점규 대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 절반 이하는 노숙인들이고, 나머지는 쪽방촌 사람들, 고시원이나 여관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 홀몸 어르신들 등 다양하다.”고 설명한다.
 |
1시간 여의 저녁 배식 동안 배식을 기다리는 줄은 계속 이어졌다. |
장소와 기자재는 제공되지만 식사에 쓰이는 식자재는 전부 후원으로 이뤄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찬 생각부터 하게 된다는 백 대표는 무료급식이 중단되지 않도록 후원 모금을 위해 계속 발로 뛰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 중에는 심리적, 육체적으로 상처 받고 파괴된 이들이 많다. 이들은 껴안고 치유하는데 정말 필요한 부분은 복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다각적인 도움과 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나눔터에는 백 대표와 함께 날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때 노숙인이기도 했던 20명의 광야119 쉼터 사람들이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밝게 일하고 있는 이들과 작별하며 마지막 인사로 “참 부끄럽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무료급식소를 몇 걸음 지나 늘 지나오던 쇼핑몰을 건너오며 이 익숙한 풍경이 하염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옷에 밴 밥 냄새가 생전 처음으로 슬펐다.
우리 주변에는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많다. 홀몸 어르신들은 형편상, 때로는 무기력과 우울감에 끼니를 잘 챙겨 드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음날, 매일 홀몸 어르신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는 노인복지관을 찾았다.
수원 서호노인복지관에서는 매일 점심 어르신들 무료급식을 하며, 복지관까지 나오지 못하는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 매일 배달되는 도시락은 50여 개로, 식자재 구입비는 시에서 지원 받지만 도시락 조리와 배달에 자원봉사자들이 없다면 도시락 배달 자체는 어려운 일이다.
 |
형편이 어렵고 거동이 어려운 홀몸 어르신들은 배달되는 도시락 하나를 하루 두 끼로 나눠 먹으며 하루 식사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본인 차로 도시락 배달을 하러 수원 곳곳을 도는 자원봉사자 오철삼 씨를 따라 도시락 배달에 나섰다. 수원과 안산에서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를 일주일에 3일씩 하고 있다는 그는 “아직도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어르신들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봉사를 통해 스스로 행복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렵고 거동이 어려운 홀몸 어르신들은 배달되는 도시락 하나를 하루 두 끼로 나눠 먹으며 하루 식사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 중에는 대화상대가 그리워서라도 자원봉사자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jpg) |
일부 도시락은 지역주민센터로 배달돼 홀몸 어르신들께 전달된다. |
여러 사람들의 정성으로 채워진 도시락과 빵을 배달했다. 마지막 배달지에서 만난 할머니께서는 처음 보는 낯선 필자를 매우 반가워하며 요구르트를 건네신다. 할머니 드시라고 사양해도 물러서지 않으신다. “춥지. 들어왔다가 가요.” 와줘서 고맙다면서 할머니께서 작별인사로 내미는 손을 꼭 잡으며 건강하시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봉사를 일상으로 실천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기에 이번 동행 취재가 참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셋 중 하나는 나 홀로 가구인데다 전국 노숙인 숫자는 1만1천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이 어디 이들 뿐일까.
 |
서호노인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점심 무료급식으로 식사하는 어르신들. |
견고한 사회적 안전망은 더 절실히 필요하고, 안전망의 틈새는 우리들의 관심으로 메워져야만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기회와 온기를 주변에도 전할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길, 그리고 사시사철이 되길 기원하고 또 기원해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