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명절 설날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 뒤 웃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런데 이 땅의 며느리들에겐 명절이 반갑지 않은 연례행사다. 명절 연휴가 빨간 날이어도 며느리들의 입장에선 편안하게 쉬는 날이 아니다.
필자의 시댁은 차례를 지내지 않건만, 그래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 행렬에 끼여서 명절 당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시댁으로 갔다가 또 저녁이면 친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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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남자 싱글 입장권. |
하지만 올해는 평생 영원히 잊지 못할 설날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국가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이 필자에게 특별한 설 선물을 안겨주었다.
설 연휴에 강릉으로 경기 관람 및 취재를 겸한 2박 3일 겨울 휴가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물론 어른들의 허락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경기 입장권 앞에선 어른들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서울 청량리와 강릉을 왕복하는 KTX를 예매하고 나니 강릉에서의 숙박, 강릉 투어를 위한 교통편을 확보해야만 했다. 경기는 16일 오전 9시 30분부터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리는 스켈레톤 남자 경기였다. 숙소를 평창이나 강릉역 인근으로 알아보니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더구나 설 연휴라 강릉을 찾는 귀성객들도 많을 것 같았다.
16일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어떡하나? 그런데 2018 강원도 구석구석 택시투어가 있었다. 하루 8시간, 100km 이하라면 20,180원으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릉, 평창, 정선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
2018 평창 여행의 달 홈페이지(https://winter.visitkorea.or.kr/pyeongchang/program_texi.do) 로 들어가면 2018 강원도 구석구석 택시투어를 조회할 수 있다.
자가용처럼 이용할 수 있는 택시투어가 있어서 숙소를 강릉 시내에서 벗어난 강릉 북쪽의 주문진으로 정할 수 있었다. 강릉에서의 첫 날과 이튿날 이동 경로를 정해서 기사님께 문자로 알렸다. 경기가 있는 16일 오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강릉의 전통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아서 강릉으로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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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행 KTX에 몸을 싣고서. |
15일 낮 12시경 강릉역에 도착했다. KTX를 이용하니 설 연휴가 시작되는 첫 날인데도 차가 막히지 않았다. 강릉역 택시 승강장 건너편에 필자의 가족을 마중나온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강릉투어도 식후경이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라 강릉 전통의 맛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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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칼국수. |
점심으로 장칼국수를 선택했다. 장칼국수는 강원도 향토 음식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서 육수의 맛을 내고 있다. 서울에서 흔히 먹는 맑은 육수의 칼국수와는 달리 육수 맛을 내는 주재료가 된장과 고추장이어서 육수의 색깔이 붉고 칼칼한 맛이다.
된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말린 뒤 오랜 기간 장독에 넣어 숙성시킨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이다. 고추장은 찹쌀과 고춧가루, 엿기름 등을 섞어 만들어서 된장과 같은 숙성을 거친다.
장칼국수에 들어가는 된장과 고추장의 배합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맛이 아니었다. 면 음식을 즐겨 먹는 필자는 장칼국수의 칼칼한 육수 맛에 반해서 국수를 건져 먹은 뒤 남은 국물에 공기밥을 버무려서 말끔히 비워냈다.
칼칼한 육수 맛이 하얀 쌀밥과 잘 어우러진다. 칼국수와 밥이 들어간 뱃속이 든든하니 어디든 지치지 않고 갈 수 있겠다. 강릉의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강릉 올림픽 파크, 오죽헌을 차례대로 둘러보고 나니 어느 덧 저녁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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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
강릉은 동해안에 인접한 항구 도시다. 바닷가를 끼고 정동진, 강문동, 경포, 안목, 주문진 등지에 횟집이 즐비하다. 바닷가에 왔으니 싱싱한 활어회를 먹어줘야 한다. 마침 숙소가 있는 주문진항에 주문진 수산시장이 있다. 주 메뉴인 생선회가 나오기 전 한 상 가득 손색이 없는 해산물 곁반찬이 차려진다. 역시 생선회를 비롯한 해산물들은 갓 잡아올린 산지에서 먹어야 더욱 싱싱하게, 더욱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16일 새벽 7시에 택시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강릉에서 평창으로 직행이다. 30분 가량 지나니 평창이다. 평창올림픽플라자로 이동해서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로 가는 관중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로는 택시나 자가용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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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스켈레톤 경기 중. |
마침 이날 스켈레톤 남자 싱글에서 우리나라의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발이 시려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거렸지만, 윤성빈 선수가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강추위에도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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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중앙시장 풍경. |
다시 강릉으로 되돌아갔다. 설날이지만 강릉 중앙시장은 문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호떡으로 간단히 시장기를 해결하고 감자전과 감자옹심이를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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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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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옹심이. |
강원도는 산지 지형이 많아 감자가 많이 난다. 감자전은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물에 앉혀 앙금을 건져낸 뒤 소금으로 간을 해서 기름에 부친다. 감자전은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전이어서 바삭거리지는 않아도 맛은 고소하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갈아서 물에 앉혀 앙금을 건져낸 뒤 건더기와 감자 전분을 적당히 섞어서 새알처럼 둥글게 빚어내 장국에 끓인다. 옹심이는 새알심의 사투리 표현이다. 감자를 빨리 익히고 먹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 수제비처럼 떼어내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감자 전분의 쫀득쫀득 찰진 맛이 청소년의 입맛엔 내키지 않는가 보다. 맵고 짜고 달달한 자극적인 양념 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무슨 맛으로 감자옹심이를 먹는지 모르겠단다. 가난해서 굶주리던 날들이 훨씬 많았던 과거 보릿고개 시절을 상상하면서 먹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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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
강릉에 왔으니 커피도 마셔야지. 강릉의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퍼키는 강릉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강릉 안목항 커피거리를 마다하고 박이추 커피공장으로 향했다. 바닷가 인근에서 살짝 내륙으로 들어온 곳에 있었다.
설날인데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커피를 주문하려면 대기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강릉에 커피점만 200여 개가 된다고 하니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바리스타는 모두 강릉으로 집결하지 않았을까? 국내 바리스타 1세대가 박이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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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구이. |
16일 저녁은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생선구이를 선택했다. 집에서는 생선구이를 요리하기 어렵다. 자욱한 연기와 냄새도 처리하기 곤란하지만, 가스렌지 화력으로는 노릇노릇 구워내지 못한다. 생선 살점을 발라서 먹으니 “바로 이 맛이야!”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생선회나 생선구이는 온갖 양념을 해서 요리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역시 주재료의 신선도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강릉에서 보낸 설 연휴. 평창동계올림픽을 관람하고, 강릉투어까지 한 일석이조의 여행이었다. 양가 방문을 하지 못한 탓에 며느리와 딸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하는 특별한 설 연휴를 보냈다.
더구나 강릉의 전통 음식을 찾아서 맛집 탐방을 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한 셈이다. 필자의 이런 마음을 시댁이나 친정의 어른들께서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실거라 믿는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