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tos(아지토스)’
‘나는 움직인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아지토스. 올림픽의 상징이 오륜기라면 아지토스는 패럴림픽의 상징이다. 이는 역경을 딛고 전진하는 전 세계장애인 스포츠인을 표현한다. 아지토스 정신 아래 10일간 평창을 비췄던 동계패럴림픽 성화가 소화됐다.
성적도, 종목도 모두 달랐지만 국민에게 준 감동은 같았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49개국, 567명 선수가 80개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참가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로 이번 대회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대한민국은 3개의 메달(금1, 동2)을 따내 종합순위 16위를 차지했다.
(0)(0).jpg) |
우리나라 첫 동계패럴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신의현. |
특히 동계패럴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진 것이다. 이전까지 한국은 동계패럴림픽에서 총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알파인스키 한상민, 2010년 밴쿠버, 휠체어컬링) 첫 참가 이후 26년 만에 따낸 대한민국 금메달이 조국에서 열린 대회서 이뤄낸 쾌거인 만큼 그 감동도 배로 컸다.
이번 대회서 유일하게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른 주인공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km 좌식 경기에 나섰던 신의현이었다.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은 그는 이번에 동메달과 금메달 한 개씩 얻어 최고 실력을 뽐냈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첫 올림픽(패럴림픽) 메달을 안긴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동메달도 매우 뜻깊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앞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로 3위를 차지했다. 이후 대형 태극기를 경기장 가운데 놓은 채 울면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직접 관전한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진한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0)(0).jpg) |
동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
이외에도 동, 하계패럴림픽에 모두 도전한 이도연, ‘오성 어벤져스’로 불리며 컬링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휠체어 컬링팀, 한쪽 팔과 다리가 없어도 스노보드를 탔던 박항승, 3회 연속 패럴림픽에 출전한 서보라미, 가이드러너 고운소리와 함께 희망의 레이스를 펼쳤던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양재림 등 36명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평창 대회서 보여준 감동은 성적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감동의 도가니,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
지난 18일,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이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위치한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오후 8시에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었고 오후 4시부터 평창올림픽플라자에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 시간 전부터 폐회식에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평창에 몰렸다. 저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의 마지막 날을 추억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는 심우준 씨는 “2월과 3월이 금방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해 매우 큰 감동을 받았고 선수들의 뜨거운 투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중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0).jpg) |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 |
특히,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과 함께 평창올림픽스타디움은 그 화려한 모습을 뒤로 한 채 해체된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는 “패럴림픽 폐회식이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해체에 돌입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이유는 사후관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코끼리’로 전락할 것을 막기 위한 방도다. 해체 완료기간은 오는 11월 13일로 잡고 있다. 단, 최소한의 시설물을 남기는 레거시 모드로 전환돼 2018 평창의 추억을 영원히 남길 예정이다. 스타디움의 본관동 3층까지는 존치돼 향후 올림픽 기념관 건립이 추진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평창올림픽스타디움과 작별한다니 아쉬워요
(0).jpg) |
평창올림픽스타디움. |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이해가 되면서도 좋은 추억을 남긴 곳인 만큼 해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미혜 씨는 “평창올림픽스타디움이 해체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가족들과 함께 스타디움을 찾은 유승우 씨는 “오늘 이후 스타디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제 스타디움을 지금처럼 직접 보긴 어렵겠지만 사진으로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패럴림픽 폐회식에서만 볼 수 있는 황연대 성취상 시상식
오후 8시, 카운트다운과 함께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의 막이 올랐다. 폐회식이 열린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자리했고 3만여 관중이 함성을 지르며 행사의 흥을 돋웠다. 스타디움 무대는 지난 개회식 때와 달리 눈 모양의 무대가 설치됐고 그 사이에는 동계패럴림픽에 참여했던 선수들이 자리 잡았다.
이날 동계 패럴림픽에서만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바로 황연대 성취상 시상식이었다. 이 상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운동가이자 한국인 최초의 장애인 여의사인 황연대 박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황연대 박사가 1988년 봉사활동 등으로 받은 상금을 국제패럴림픽조직위원회(IPC)에 기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매 동, 하계 패럴림픽 대회마다 패럴림픽 정신이 뛰어난 남녀 선수 한 명씩 이 상을 수여한다.
지난 1988 서울하계패럴림픽부터 시작된 황연대 성취상은 패럴림픽의 최우수선수(MVP) 격으로 불리곤 하다. 2008 베이징하계패럴림픽부터 폐회식 공식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폐회식에서도 황연대 성취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황연대 박사가 식장을 찾아 애덤 홀(뉴질랜드)과 시니 피(핀란드)에게 상을 수여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된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
.jpg) |
배희관 밴드와 에일리가 함께 피날레 공연을 펼쳤다. |
90분간 펼쳐졌던 폐회식 행사는 특별함의 연속이었다. ‘아이 무브(I move)’라는 아지토스 정신에 맞춰 ‘위 무브 더 월드(We move the world)’ 슬로건 아래 진행된 폐회식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조화를 이뤄 공연을 펼쳤다.
우선, 강원도 홍천군 출신 청각장애 발레리나 고아라가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고아라는 첼레스타 바순 2중주에 맞춰 꽃이 움직이는 과정을 연기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의 아름다운 선율이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을 채우기도 했다. 김예지는 피아노 독주와 노래 ‘꽃이 된 그대’의 반주를 맡았다. 악보를 통째로 외워 연습해서 무대에 올랐다는 그는 안내견 ‘찬미’와 함께 호흡하며 폐회식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화면에서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최근 TV 광고에 나와 화제가 됐던 석창우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평창동계패럴림픽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대형 수묵 크로키를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슬로건인 ‘하나된 열정’을 쓴 뒤 공중으로 던졌다. 작품은 영상 밖 올림픽스타디움 성화대 미끄럼틀에 내걸렸고 크로키 작품은 성화대를 닮은 작은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도살풀이춤 무용수 양길순 씨의 춤이 끝나고 흰 천이 땅에 닿는 순간 달항아리에서 불타오르던 성화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폐회식 마지막 공연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화를 이루었다. 리드싱어 시각장애인 배희관을 중심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 만든 배희관 밴드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가수 에일리와 함께 펼친 무대는 장애인 선수들과 관중석에 있던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마지막까지 빛났던 자원봉사자들과 조직위원회
.jpg) |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 때 나눠준 방한용품 패키지. |
폐회식 당일은 여전히 추웠다. 영상 5도 안팎이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를 기록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벌써 봄꽃이 피어나고 따뜻한 봄 날씨가 진행됐지만 평창은 아직 겨울이었다. 더구나 이날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려 궂은 날씨가 이어졌다. 폐회식이 진행된 밤에도 진눈깨비는 계속 내렸다.
평창동계패럴림픽조직위원회는 동계패럴림픽 개회식과 마찬가지로 방한용품(핫팩, 털모자, 우비, 방석 등)을 준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 폐회식과 같은 방한용품을 한 자리씩 배치해 추운 날씨를 막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폐회식을 관람한 이세영 씨는 “방한용품이 아니었으면 폐회식을 관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세심히 챙겨준 것 같아 좋았다.” 라고 전했다.
(1).jpg) |
관중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 |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이날 계속됐다. 큰 목소리로 관중들을 안내한 자원봉사자들은 장애인들이 많이 오는 만큼 더 세심하고 친절한 행동을 보였다. 찡그리는 모습 하나 없이 항상 웃는 모습으로 안내했다. 휠체어를 탄 김수영(가명) 씨는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이 매우 고맙다. 그들 덕분에 자리도 잘 찾고 폐회식도 잘 관람할 수 있었다.” 라고 언급했다.
자원봉사자들은 폐회식 이후에도 관중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했다. 3만여 관중이 일제히 내려오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법도 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로 무사히 잘 마무리 됐다.
(0).jpg) |
평창조직위가 폐회식 당일 관중들에게 보낸 문자. |
평창패럴림픽조직위원회에서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하나 더 증편해 모두 안전히 귀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계패럴림픽 폐회식 당일 KTX 막차가 밤 11시 10분이었으나 조직위원회가 밤 11시 30분에도 예비열차를 투입시켰다. 물론 올림픽 때처럼 KTX 막차가 새벽 1~2시까지 있는 건 아닌 점에서 좀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발빠른 대처로 시민들이 안전히 귀가할 수 있도록 대처한 점에서는 박수를 받을 만했다.
567명이 10일간 펼친 드라마가 이제 막을 내렸다. 패럴림픽은 선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만큼 각자의 인생 속에서 편견과 어려움을 뚫고 이겨내 경기를 펼친 모습 자체가 승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은 역대 가장 큰 드라마 주인공이 펼친 대회였다.
그리고 그 주연들을 도왔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주연들이 더욱 빛났다. 이제는 우리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그 감동의 여운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남아 있을 것이다. 열정으로 하나 된 뜨거웠던 시간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