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좋은 주말 밤, TV를 보다가 마음이 메였다. 포르투갈의 어느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가수(김윤아)가 세월호를 언급했다. 그 낯선 땅에 울린 추모곡, 그 마디마디에 서린 슬픔이 브라운관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세월호를 기억했을 거다.
마침 16일은 세월호 4주기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회 국민안전다짐대회 대회사에서 “안전다짐대회는 바로 그 세월호에서 배우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날”이라며 “우리 학생들, 꽃봉오리인 채로 그 짧은 생을 그토록 허망하게 마친 학생들을 포함해서 304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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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지진, 메르스 등 국가재난에 의한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돕기 위한 심리치료기관인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설립됐다. |
재난 발생 후, 피해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과 사람들이 차차 제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트라우마는 오롯이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내면의 갈등이 아닌, 벼락처럼 삶이 부서지는 거다. 이는 사고수습으로 현장을 지킨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노력을 진행해 왔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이 이러한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제 국가트라우마센터(5일 개소)에서 본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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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난 발생 시 재난현장을 찾아다니며 심리 치료를 해주게 될 ’안심버스‘로 디자인 한 센터 내 사무실은 트라우마 대상자들에게 집중치료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서울 광진구의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위치했다. 중곡역 1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쉽게 시야에 들어왔다. 4층에 위치한 국가트라우마센터는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었다.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내부는 차분하게 화사했다. 입구에 자리한 안심버스 디자인의 집중치료실이 눈에 들어왔고, 연구실과 사무실 등은 여느 회사의 공간과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지진과 화재 등의 재난이 멈추지 않았고, 우리 사회는 심리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제껏, 특정 사고에 관한 임시적인 치료센터가 운영돼 왔지만, 앞으로 이곳 트라우마센터에서는 상시적으로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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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하늘색 톤으로 밝은 이미지를 연출하는 트라우마센터 내 사무실 모습 |
“보다 전문적인 심리지원의 필요가 절실함에 따라 설립된 트라우마센터는 국가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 대상자를 중심으로 지원이 가능합니다. 국가 차원의 재해나 트라우마적 경험을 겪었던 사실이 확인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재해의 범위를 분류할 구체적인 기준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트라우마센터에서는 전문장비를 통해 스트레스 측정과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를 안정화시켜 주는 등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이뤄진다. 아울러, 재난발생 시 사고현장에 의료진을 파견하거나 트라우마 전문가를 교육시키는 등의 부가적인 활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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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이 트라우마센터에 전달한 안심버스 켈리그라피. |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현장에 찾아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명 ‘안심버스’는 내년부터 운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 시 심리적 대응 기본 교육을 실시하고, 심리적 응급처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재난 전문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 입니다.”
트라우마 전문가 양성은 정신건강 전문요원을 중심으로 한 단계별 교육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보다 정확하게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파악 및 평가하고, 결과에 맞는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신규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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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구성한 트라우마 설립추진 TF팀의 전경선 팀장이 트라우마센터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현장 대응도 중요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와 국민들이 가진 트라우마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의 자료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유형별 재난의 활동 지침과 심층 사정평가 도구를 개발하고 재난 현장을 찾아 신속하게 심리치료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대형재난 관리는 그 사회가 가진 자원을 총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는 서울의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시작으로 공주와 춘천, 나주, 부곡 등에 위치한 국립정신병원에 권역별 센터를 설치할 예정(2020년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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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이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이전보다 더 나아지길 기대한다. |
세상에는 절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트라우마가 그 중 하나다. 누구도 남겨진 자들의 절망을 이해한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이런 걱정에 반응조차 하기 힘든 상대방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말이다.
체계적인 시스템도 좋지만,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더 슬펐을 마음. 슬프면 그냥 슬퍼하라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그 중심에 트라우마센터가 있다. 유연한 기준으로 보다 많은 재해 피해자가 센터의 도움 받을 수 있길 바란다.
지우고 싶은 것만 기억나는 순간, 떠오른 상처의 기억은 디테일하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자가 가장 큰 치유능력을 지녔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죄의식으로 남은 자들의 부서진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는 국가가 해야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