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우리는 서로 간 동질감 회복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함께 지내야 해. 비록 지금은 이렇게 글로써 서신만을 주고받지만 언젠가는 화상, 대면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
글은 참으로 건조한 표현체인 것 같아. 고작 글은 손과 눈, 머리로만 쓰는 거잖니? 서로 만나서 부둥켜 안고 온몸으로 표출될 수 있는 눈물과 함성으로 만났으면 좋겠어. 아니, 곧 머지않아 그런 날이 꼭 올 거야.
우리는 상호 협력의 동반자임을 인식하고 국제적 무대에서 함께 협력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처럼 국경이란 제약을 극복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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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5회 남북청소년교류 편지쓰기 전국대회 입상작품집. 학생들의 자필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
2006년,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남북대화나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던 터라 북한의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필자도 다소 저돌적인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창 대입에 신경을 쏟아부어야 할 시기였으나, 필자는 북녘의 청소년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기회를 알게 되었고, 교내에서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하는 예선대회를 치러야 본선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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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친구에게 보내는 필자의 자필 편지. |
소식을 듣자마자 필자는 바로 담당선생님께 찾아가 교내 예선대회 개최를 정중히 요청드렸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해줬다. 이렇게 예선대회를 거쳐 본선대회에 진출, ‘특별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특히, 이 상은 지도교사 상장도 있어 더욱 유의미했다. 본선대회 시상식을 금강산 탐방과 더불어 실시하기로 했는데, 필자는 입시가 코앞이라 가지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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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필자가 수상했던 편지쓰기 대회 특별부문 최우수상. |
입상작품집에 소개된 주옥같은 작품들. 우리가 자필로 쓴 날 것의 편지글이 이 작품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필자는 북한의 친구에게 진심을 다해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편지를 적어나갔다. 당시 남북의 훈훈했던 모멘텀이 잘 유지되고 좀 더 진전된 관계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관계 회복은 요원한 일일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감돌았다. 불과 작년 말까지만 해도 북한과 미국 정상은 살벌한 말을 주고받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조성하기도 했다. 필자가 순수했던 학생 시절 꿈꿨던 편지 내용들이 사문화(死文化)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국면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개최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아주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은 껄끄러운 관계였던 북한,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주요 인사들을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한 자리에 모이게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북관계 개선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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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후, 활짝 웃고 있다. |
이윽고 4월 27일,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게 됐다. 필자는 좋은 기회를 얻어 남북정상회담 당일 고양 킨텍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MPC) 현장취재를 하게 됐다. 메인프레스센터는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열기로 매우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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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새로운 시작!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서 나올 때,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으로 잠시 넘어갈 때의 환호성과 박수 갈채, 북한 기자들의 넘치는 열정으로 이따금씩 화면을 가리는 장면에서 나왔던 기자들의 너털웃음은 필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율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게 크나큰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개성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무엇보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또한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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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취재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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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화 이벤트에 참여한 필자의 모습. |
필자는 메인프레스센터에 오기 전, 2006년에 썼던 편지를 찬찬히 훑어봤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편지에 그렸던 청사진을 오늘 판문점 선언에서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일련의 예로 우리는 수십 년 전부터 문화, 사회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잖아. 이제는 각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아닌 한반도기를 사용하고 있구. 정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금할 길이 없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COREA 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남북 선수들의 모습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이 하나된 장면을 보기 참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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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머지않아 단군릉에 갈 수 있을까? |
“나는 작년 역사과목 시간에 ‘단군릉’ 이라는 유적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정말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나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어. 오죽하면 ‘그림이 좀 더 컸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까지 가졌었다구. 남쪽도 단군 할아버지를 나라의 시조로 여기는 것처럼 북쪽의 사람들도 모두 통합된 역사관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하나씩 공통점을 찾아나가다 보면 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모두 뒤덮을 만큼의 동질감이 생길 거야. 비록 우리가 공부하는 환경은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같은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단군릉처럼.”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가 각종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살펴보니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이제 평양에 가서 평양냉면도 먹어볼 수 있겠네 ’, ‘KTX로 강릉까지 가서 육로로 금강산 등산을 할 수 있겠구나’, ‘그동안 사진으로만 봤던 유물과 유적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겠다’와 같은 기대섞인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단군릉을 그림이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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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염원하는 비둘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지? 지금 이 비둘기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어. 글이 아닌 마음으로 쓰는 글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처럼 남쪽의 학생들은 너희들과의 활발한 교류 서신을 원하고 있어. 이 주옥 같은 글들이 비둘기가 되어 수백, 수천만의 무리로 북쪽의 너희들에게 날아갈 거야. 이렇게 웃으며 쓴 글들이 우리 모두의 기쁨과 동질성 공유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남쪽 박두진 시인의 ‘해’ 라는 시의 내용처럼, 자연 모두가 하나되는 날이 우리가 부둥켜 얼싸안고 서로를 이해하는 눈빛으로 응시하는 날이 되었으면, 그날이 하루 속히 왔으면 정말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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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을 심다! |
필자가 염원했던 비둘기 무리들의 힘찬 날갯짓. 많은 국민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겠지만, ‘통일’이란 단어는 매우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단어처럼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넘어야 할 장벽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조금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온 듯하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두 나라가 한 나라로 되는 것은 나중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 남북교류와 왕래에 물꼬를 트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진전을 이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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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선언 후속조치와 관련하여 브리핑하고 있는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출처=KTV) |
4월 29일,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5월 중,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시 대외에 공개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동안 북한의 표준시와 서울의 표준시가 달랐는데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로 했다.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들이 가시적으로, 검증 가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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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필자가 북으로 띄운 편지. 2018년을 기점으로 밝게 빛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아무쪼록 판문점 선언이 북미정상회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가 핵 없는, 전쟁 없는 ‘누구라도 올 수 있는 평화의 땅’이 되기를, 필자가 2006년 꿈꾸고 염원했던 남북교류 및 상호 방문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제 17-18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전 형입니다. 외교, 통일, 그리고 박사과정 분야인 한국어교육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유익한 정책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