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 4월 28일부터 5월 13일까지, 봄 여행주간입니다. 이번 여행주간 슬로건이 ‘여행이 있어 특별한 보통날’ 이라는데, 파릇파릇 돋아난 신록 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보통날 즐기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봄 여행주간에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TV 속 여행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데요. 어디든 한 번 발걸음을 던져보시죠. <편집자 주>
“엄마, 미안하지만 내 마음속 1번은 할머니야~”
아이를 낳고도 직장 생활로 바빴던 나는 친정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5년 넘게 친정어머니는 손녀딸인 내 아이를 돌봐주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나와 딸은, 내게는 어머니, 딸에게는 할머니가 이 세상 누구보다 서로가 1번이라는 사이가 됐다. 이제 11살이 된 딸아이는 할머니가 힘드실까 귀찮으실까 누구보다 더 살피는 ‘할머니 바라기’가 됐다.
그래서 종종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곤 한다. 여행마다 벌어지는 손녀딸과 할머니의 러브스토리에 우리 부부는 항상 들러리가 되지만, 너무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결국엔 함께 웃음꽃이 피고 만다. 이번 봄 여행주간, 경주에 가고 싶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에 2박 3일 ‘경주, 봄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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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을 달려 잠시 들린 건천 휴게소. |
차를 몰아 출발 한 지 3시간, 경주로 향하는 마지막 휴게소 건천 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도 안 들리고 달려온 터라 잠시 숨 고르기로 했다. 기와를 얹은, 한국적인 외향을 지닌 건천 휴게소를 보니 경주에 다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10여 차례 경주에 와 볼 기회가 있었던 나도 오랜만에 오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와보신 후 처음이라는 친정어머니와 생애 첫 경주 여행 중인 딸아이는 몹시 들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신라와 경주의 역사 책을 같이 읽으며 가보고 싶은 장소를 선택하여 3일간의 동선을 짜 보았다.
그 중 첫 번째, 모두가 제일 가보고 싶어 하던 불국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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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불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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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준비로 축제 분위기였던 불국사. |
석가탄신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인지 불국사는 한창 축제 준비 중이었다. 갖가지 화려한 등과 소품들이 불국사를 장식하고 있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분위기가 좋았다. 가족 모두 같은 생각인지 불국사의 아름다움에 취해 오랫동안 걷고 보고 쉬면서 한가로운 봄날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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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문화 해설사 프로그램. |
정해진 시간마다 문화 해설사의 안내 프로그램이 있었다. 미리 공부는 하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문화재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 불국사와 석굴암의 이야기, 불국사의 작은 부분 하나에 담긴 의미 등을 들을 수 있는 설명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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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내진설계를 한 불국사 건축양식. |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내진설계라는 불국사 건축양식은 인상적이었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시 남남서 쪽 8km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발생해 정말 놀랐던 기억에 떠오르는데, 사실 경주는 이미 신라 시대부터 큰 지진이 있어왔다고 한다.
신라 혜공왕 15년(779년), ‘봄 3월에 경도(경주)에 지진이 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그 당시부터 지진에 대비하는 노력을 한 것이다.
불국사는 돌 모양 그대로 깎아 받침을 쌓은 새깃돌 덕분에 견고하게 오랜 세월을 견뎌냈다고 한다. 살펴보니 정말 사진과 같이 견고하게 맞물려 있는 받침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상들의 고민과 과학적 해결 방법에 감탄한 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집중해서 듣는 친정어머니와 열심히 메모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니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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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석굴암과 경주 대표 관광지 스탬프 투어. |
불국사에서 차로 15분 정도인 석굴암으로 향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석굴암까지 가는 길이 완만하고 아름다워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경주에서는 대표 관광지 스탬프 투어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뿐만 아니라 경주를 방문한 사람 누구나 재미있는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우리도 참여해보았는데, 가는 곳마다 스탬프 찍는 재미가 좋았다. 스탬프를 다 찍은 후 보내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준다고 한다. 모바일로도 다운로드해 쉽게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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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 |
저녁에는 ‘동굴과 월지(안압지)’에서 아름다운 야경에 취했다. 그 어느 쪽을 찍어도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한참이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 가족도 몇 번의 실패 끝에 동굴과 월지의 환상적인 배경을 뒤로 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경주 여행 첫째 날은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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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촉촉히 내리던 국립경주박물관. |
다음 날 아침, 봄비가 조금씩 내리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박물관은 실내 전시가 많아서 다니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시원해 걷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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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대왕신종과 동굴과 월지 박물관. |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선덕대왕신종을 먼저 둘러본 후, 박물관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젯밤 다녀왔던 동굴과 월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소장된 전시관부터 보았다. 작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마침 외국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와 같이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는 행운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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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의 다양한 신라시대 유물들. |
딸아이는 박물관을 둘러본 후, 1300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상상 속의 신라 사람들이 이 유물들을 입고 쓰는 모습들을 이야기했다. 마치 동화작가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딸아이를 보며 이번 여행이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을 확신했다. 그런 손녀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친정어머니의 사랑도 느낄 수 있는 박물관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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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고도를 읊다’ 기획전. |
국립경주박물관에선 ‘선비, 고도를 읊다’ 기획전도 열리고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경주에 와서 신라인들의 숨결을 느끼고 받은 감동을 한시로 표현했다고 한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 우리 조상들이 느껴지는 기획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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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역사 문화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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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의 발굴 역사. |
1970년 대부터 발굴이 시작된 황룡사 절터의 역사를 쉽게 알 수 있게 설명되어 있었다. 황룡사지 9층 목탑은 643년 선덕 여왕 때 자장 율사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9층은 주변 9개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는다는 것으로 신라 시대 호국 불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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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9층 목탑 모형. |
황룡사 문화관은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황룡사지 9층 목탑을 복원하기 위한 발걸음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황룡사와 황룡사지 9층 목탑의 역사를 보여준 3D 애니메이션 덕분에 딸아이뿐만 아니라 친정어머니도 깊이 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좋아하셨다. 의미 있는 역사탐구여행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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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와 신라복 체험 프로그램. |
밤에 더 아름답다는 첨성대를 동선 때문에 낮에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라복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딸아이는 신라복을 입고 경주역사유적지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너무 즐거워했다. 평소 체험이란 체험을 모두 해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딸아이는 할머니를 앞세워 이번 여행에선 더욱 열정적이 되어 버렸다.
또 한 가지, 첨성대 앞 화장실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첨성대의 명칭과 설명도 있고, 예쁜 신라인 캐릭터도 크게 붙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세세하게 신경 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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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현대, 황리단길. |
경주 여행의 마지막 날은, 유적지가 아닌 현재 경주의 명소를 가보기로 했다. 맛집, 멋집들이 가득한 곳은 어디일까? SNS와 검색, 경주에 사는 지인들의 소개 등으로 무장한 우리는 황리단길을 찾아 열심히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걷기를 반복했다. 친정어머니, 나, 딸까지 50년의 나이 차가 있는 우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같은 여자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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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경주. |
예쁜 풍경에 감탄하고, 작은 소품에 소리 지르며, 맛있는 음식에 황홀해하는 그런 여자들 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경주에서 우리 세 모녀는 오랜만에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이 봄, 다른 시간 속에서 살던 우리가 만나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하루하루 발을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