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을 불러 봅니다. 선생님을 뵙지 못한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는 게 정신없었다는 핑계를 드려봅니다. 제자된 마음으로는 좋은 모습으로, 좋은 때 인사드리고 싶어 차일피일 하던 것이 시간이 이리 훌쩍 흘렀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항상 제게 ‘스승’이란 분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젊은 선생님의 모습만 기억나는데 훌쩍 연세 든 선생님을 만나 뵈면 어떤 기분이 들지 그려지질 않습니다.
중학교 앳된 시절, 미술 담당 선생님으로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용기를 거꾸로 하면 내 이름이다. ‘최’ 씨가 아니라 ‘채’ 씨다.”라고 소개 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며 오랜만에 옛날 일기장을 뒤적여 봤습니다. 많이 기록되지 않았던 날 중에서도 중학교 3학년,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던 첫 날의 기억이 적혀 있어 참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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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채기용 선생님. 아쉽게도 선생님과 찍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았다. |
선생님께서 담임선생님이 되어 참 좋았다고 써놓았습니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시고, 내게 개성과 그 외의 것들을 심어주실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계량한복을 입고 거문고를 갖고 학교를 다니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때에는 재미있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세상에 유유히, 그러면서도 당당한 선생님의 모습이 실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들렀던 선생님의 반, 게시판에 걸려있던 환경미화 문구를 아직 기억합니다.
“선생님. 저는 13번이 아닙니다. ○○○입니다.” 들어가는 수업마다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선생님께 그 자신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학생들의 바람을 전달하는 눈에 띄는 문구였습니다.
당시에 비슷비슷했던 교실 풍경을 생각하면, 굉장히 개성적이고 아이들마다의 남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려는 선생님 교실의 분위기와 모습이 꽤나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선생님이 3학년 제 담임선생님이 되셨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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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일기장에 남아있는 선생님의 추억. |
수업 시간, 가끔씩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선생님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가난했던 미대생 시절의 선생님의 객기 같은 이야기요. 돈이 부족한 시절,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동전을 모아 산 위에 올라가서 뿌렸다는 얘기 끝에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 제 정신이 아니었나봐.”라는 선생님의 느릿한 말투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동시에 났던지요.
느릿하고 여유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별명이 ‘거북이’셨죠. 아직도 거북이 선생님으로 불리시는지, 새로운 별명이 또 생기셨는지 궁금합니다. 거북이셨던 선생님이 체육대회 때는 어찌나 열정적으로 북을 치며 응원을 하셨는지 꼭 이기고 싶었는데 3등 안에 들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갔던 교육 문화제 날도 일기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다른 반 친구와 함께 선생님과 소풍 가듯 다녀온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선생님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 반, 재충전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는데 아직 그 때 보았던 문화제의 영화와 풍경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꽤나 제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일기에 ‘선생님께서 제가 와서 좋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적혀있네요. 선생님과 이때 많은 이야기를 하며 생각보다 선생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어 놀랐다고도 적혀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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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학창시절, 그 교정. |
중학교를 졸업하고 찾아뵈었을 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찾아뵈었을 때도 언제나 선생님은 따뜻하게 반겨주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어쩐지 선생님이 삼촌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스무 살 무렵, 선생님을 학교 근처에서 만나 뵙고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마주쳤을 때 친구에게 우쭐하는 마음으로 “우리 선생님. 너무 좋으시지?”라며 자랑스레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보다 자라긴 했지만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철부지에 불과했을 텐데도 스스로는 대단히 어른이라도 된 냥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녀석아, 나중에 더 크고 와서 그 때 사줘라.” 하셨는데 이제는 선생님을 뵈면 정말 식사를 대접해 드려야 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님. 꼭 선생님 찾아뵙고 그 때 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서로의 변한 모습이 혹시 낯설더라도 선생님이라면 기꺼이 너른 마음으로 반겨주실 것 같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의 은사님은 100세 넘게 사셔서 팔순이던 할아버지께서는 꼬박꼬박 신년연하장을 보내셨거든요. 시간의 공백을 메울 만큼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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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간직하고 있던 선생님의 시화. |
선생님께 편지를 쓰며 옛 일기를 들춰보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다시금 알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스승으로 제가 감히 기억하고 따듯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순수한 순도 100% 마음을 담은 칭찬에 용기를 얻고,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많이 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순 없지만 마음만은 그때와 변함없이 선생님의 제자로 선생님을 따르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제자, 진윤지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스승과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