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친정어머니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 난소암이 발병한 지 1년도 안돼 암세포는 다시 대장에서 발견됐고, 어머니는 두 번째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야만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기도했다. ‘5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 그래서 막내 결혼하는 것까지 함께하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의지와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5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막내 아들을 결혼시키고 두 명의 손자, 손녀까지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암과의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5년 세월동안 굽이굽이 힘겨운 치료는 이어졌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절망 대신 희망의 손을 잡았다.
 |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여행길에서 평온함을 얻었다. |
그렇게 5년을 함께 했던 우리 가족에게 올해는 의미있는 해다. 어머니가 암 수술 이후 5년이란 세월을 잘 버텨 내셨고, 누구에게나 뜻깊은 70번째 생신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멀리는 못가더라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어머니에게 ‘특별한 보통날’을 선사하고 싶었다.
.jpg) |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건축물의 어우러짐이 특별한 곳이다. |
아름답고 멋진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던 중 올해도 어김없이 봄 여행주간(4월 28일~5월 13일)이 다가왔다. ‘여행이 있어 특별한 보통날’을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봄 여행주간에서 추천하는 여행지 중에 ‘뮤지엄 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봄기운 물씬 풍기는 여러 곳 중 어머니가 힘들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한 뮤지엄 산은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과 멋진 건축물의 조화, 예술작품의 수려한 미까지 골고루 느끼고 감상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매일 그대와’ 라는 드라마와 커피 광고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다.
.jpg) |
뮤지엄 산은 독특한 풍경의 매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
커피를 즐겨 마셨던 어머니는 배우 공유가 커피 광고를 촬영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뮤지엄 산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셨다.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돌, 물, 빛 그리고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곳으로, 이국적이며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jpg) |
조각공원에는 다양한 조각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있는 이곳은 2013년에 개관했다. 드넓은 공간 안에 웰컴센터와 본관, 세 개의 가든으로 구성되어 하늘과 예술이 소통하는 공간 콘셉트처럼 건축물과 오브제의 아름다운 조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딱딱하고 도시적인 느낌의 콘크리트가 산과 어우러지고, 콘셉트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 정원을 거닐며 조용히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또한 아이들에겐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패랭이꽃이 가득한 플라워가든, 자작나무 숲길, 워터가든, 스톤가든을 감상하며, 가족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귀한 시간을 소유할 수 있었다.
.jpg) |
붉은 색의 아치웨이(archway)와 초록의 자연이 잘 어우러진다. |
.jpg) |
80만 주의 패랭이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
산속에 감춰져 있는듯한 뮤지엄 산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순수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패랭이꽃이 만발한 플라워가든을 마주하게 된다.
패랭이꽃들이 눈부시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진다. 그 길을 따라 더 걸어가면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정원이 나온다.
뮤지엄 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인 워터가든은 뮤지엄 본관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물의 정원이다. 이곳에 설치된 강렬한 빨간색 아치웨이(Archway)는 뮤지엄 산의 랜드마크가 됐다.
.jpg) |
신라 고분의 모습을 본떠 만든 스톤가든은 산책 코스로 인기있다. |
또한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은 9개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어 산책하기 좋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한국적인 미를 존중하는 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jpg) |
자작나무숲길을 따라 걸으며 봄날의 정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
본격적으로 뮤지엄 산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웰컴센터에서 티켓을 끊어야 한다. 매표소에서 성인과 소인으로 구분해 발권할 수 있는데 가격은 저렴하진 않다. 그러나 일단 관람을 하고 나면 절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곳이 뮤지엄 산이다.
티켓은 뮤지엄권과 갤러리권으로 구분되는데, 뮤지엄권은 세계적인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전시까지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이다. 우리 가족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뮤지엄권을 끊어 입장을 했다.
.jpg) |
빛과 콘크리트, 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
뮤지엄 산은 해설 서비스가 있다. 평일과 주말 정해진 시간에 들을 수 있으니 시간을 미리 파악하고 해설을 들으면 좋다. 뮤지엄 산이 왜 만들어졌고, 어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jpg) |
카페 테라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추억으로 저장되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드디어 공유가 광고를 찍었던 카페 테라스에 도착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왜 뮤지엄 산을 와야하는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많은 가족들과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테라스 자리는 몇 자리 없으니 붐비는 시간에 방문하면 기다려야 한다. 뮤지엄 산에서 유일하게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카페 테라스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소녀처럼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엄 산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전시에는 우리 주변의 소담한 예술을 소개하는 ‘일상의 예술 : 오브제’와 조각품으로 한국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한국미술의 산책Ⅲ : 조각’, 종이의 멋을 알려주는 페이퍼 갤러리, 그리고 제임스 터렐의 특별전시장이 있다. 특별전시장에서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유명한 제임스 터렐의 대표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jpg) |
짧지만 강렬했던 여행이 주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뮤지엄 산은 도심의 분주한 삶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산과 나무, 꽃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아늑함과 포근함, 의도한 휴식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이곳을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매일 매일 ‘다시 살아갈 힘’을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 다시 살아갈 힘은 암투병으로 힘겨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머니에게 각별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jpg) |
바람결에 잔잔히 파동을 일으키는 모습에 넋을 놓게 되는 시간이었다. |
‘여행은 타성적인 일상을 떠나 사고를 깊게 하는 자신과의 대화’ 라고 말하는 안도 타다오는 이러한 과정이 인간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하늘과 예술이 소통하는 공간인 그곳에서 느꼈던 평온함은 오래도록 부모님과 필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울러 안도 타다오의 말처럼 여행의 힘이 어머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간절히 희망한다.
글과 사진으로 소통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