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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재를 빚진 애국선열들을 기리며!

호국보훈의 달 맞아 돌아본 백당기념관, 곡성 단군전

2018.06.06 정책기자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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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붙는 수식어 호국보훈의 달! 어쩌면 매년 찾아오는 계절의 의미 외엔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6월’일수도 있다. 현충일 기념행사를 보아도 크게 와닿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지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같은 현충시설을 방문한다면 무심한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

호국보훈의 달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호국·보훈의식 및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지정한 달이다.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를 새기는 일, 그것이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담겨진 의미이다.

애국지사 백당 신태윤(1881-1961) 선생을 추모하고, 호남지역 의병활동과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 전시하여 애국활동의 자료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 전남 곡성에 위치한 백당기념관.
애국지사 백당 신태윤(1881-1961) 선생을 추모하고, 호남지역 의병활동과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 전시하여 애국활동의 자료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 전남 곡성에 위치한 백당기념관.
 

우리는 과연 보훈의 의미를 얼마나 새기며 실천하고 있는 걸까?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남 곡성에 위치한 현충시설 백당기념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애국지사 백당 신태윤(1881-1961) 선생을 추모하고, 호남지역 의병활동과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 전시하여 애국활동의 자료를 보존 전시하는 기념관이다.  

이곳을 돌아보면 국민 모두가 누구나 알고 있는 애국지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감사를 잊지 않고, 현재를 빚진 숱한 애국선열들이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곳은 1931년 국조단군 신위를 모시다가 1952년에 단군성전 영정각으로 신위가 옮겨 간 후 백당선생이 거처하시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1970년부터 소규모로 백당기념관이 유지되어 오다가 2014년 신축했다.
이곳은 1931년 국조 단군 신위를 모시다가 1952년에 단군성전 영정각으로 신위가 옮겨 간 후 백당 선생이 거처하다 돌아간 곳이다. 1970년부터 소규모로 백당기념관이 유지되어 오다가 2014년 신축했다.
 

신태윤 선생은 곡성보통학교에 근무하며 단군을 자기네 건국 신화에 종속시키고자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았던 일제에 맞서, 역사계승과 자주독립을 위해 1914년 곡성 단군전을 건립했다.   

선생은 1919년에 곡성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3년간 옥고를 겪고, 이후 옥중에서 우리 역사책인 정사, 도해삼일신고, 고려사절요 등 역사서적을 집필했다.

백당 신태윤 선생.
백당 신태윤 선생 동상.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선 조금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기념관의 개폐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안내에 나와 있는 곡성관광안내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항상 문을 열어 놓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곡성군청으로 문의 바란다는 답변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곡성군청에 문의해 백당기념관을 관리·운영하고 있는 (사)국조단군곡성승모회 김학근 대표이사와 연락을 취했다. 광주에 살고 있다는 83세의 김 대표는 기꺼이 곡성까지 발걸음을 해주었다. 

이곳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전국에 있는 현충시설은 2,060개소, 독립운동 관련 시설은 894개소로, 이중 대부분은 비석과 탑이며 기념관은 각각 78개소와 58개소에 그친다. 소규모 기념관이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은 그만큼 한정적이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김학근 씨를 만나고 나서야 백당기념관이 왜 사전 연락이 필요한 곳인지 알게 됐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지만 국가보훈처의 지원은 매우 미비한 실정이었다. 때때로 지자체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시설 운영은 김학근 씨 몫으로 남겨졌다. 애국애향운동에 50여 년을 헌신한 83세 은퇴교사는 애국·애향심으로 개인 비용을 들이고 있었다.  

전국 현충시설과 독립운동 시설 관련 기념관은 각각 78개소, 58개소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자료=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전국 현충시설과 독립운동 시설 관련 기념관은 각각 78개소, 58개소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자료=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관리인이 있지만, 매일 이 기념관을 열고 닫길 기대하긴 어려운 처지이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3.1절, 개천절과 환웅이 다시 하늘로 돌아간 어천절에 행사를 갖는다. 그외에는 방문 요청이 있을 때에만 기념관의 문을 열고 방문객을 받는다.

백당기념관 내부. 이곳에는 백당 신태윤 선생의 저서와 번역서, 선생의 소장도서와 단군관련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당기념관 내부. 이곳에는 백당 신태윤 선생의 저서와 번역서, 선생의 소장도서와 단군관련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학근 씨는 “백당기념관과 곡성 단군전을 애국심을 기르는 수련의 장으로 만들고자 개인 사비를 들여 가꾸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상에 있는 아내를 돌본지 8년, 어쩔 수 없이 광주로 이사해서도 이곳 시설을 돌보는 그이지만 83세의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조금만 더 국가차원의 지원이 보태지길 간절히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2005년부터 백당기념관과 곡성3.1운동의 중심지인 곡성단군전을 관리, 운영하고 있는 (사)국조단군곡성승모회 김학근 대표 이사. 83세의 은퇴교사인 그는 사비까지 들여가며 이곳을 가꾸고 관리하고 있다.
2005년부터 백당기념관과 곡성 단군전을 관리, 운영하고 있는 (사)국조단군곡성승모회 김학근 대표 이사. 83세의 은퇴교사인 그는 사비까지 들여가며 이곳을 가꾸고 관리하고 있다.
 

공들여 가꾼 표시가 완연한 곡성 단군전과 백당기념관을 떠나며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 역시 관리부실로 방치된 곳도 많다는 기사가 얼마 전 보도됐다.

호국보훈의 달, 애국선열들께 감사를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교육하지만 그저 외침만으로, 개인의 애국심에 기대어 지켜질 수 있는 가치는 없다.

올해 3.1절 행사가 열린 곡성 단군전 내 모습.
올해 3.1절 행사가 열린 곡성 단군전 모습.
 

시대가 흘러가며 역사를 오늘날에 되새기는 우리의 마음도 어쩌면 날로 약해져간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고 미래의 거울이다. 우리의 지금을 빚진 애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기는 일은 응당 당연한 처사이다. 그 소중한 가치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호국보훈이 그저 6월의 수식어에만 그치지 않도록 조금 더 꼼꼼한 살핌과 관심이 필요할 터이다. 자랑스럽고도 가슴 아픈 선열들의 기꺼운 희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켜갈 수 있는 오늘이 쌓여가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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