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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 맞아 찾아본 도심 속 독립운동 흔적

2018.07.13 정책기자 최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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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조선총독부 제3대 총독에 취임하려 남대문역(現 서울역)에 내린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기 위해 그가 타고 있던 마차에 강우규 의사가 폭탄을 던졌습니다. 환갑이 넘은, 만 65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강우규 의사.

강우규 의사는 죽음을 앞두고 청년들에게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만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라고 말하며 청년들의 독립운동을 독려했습니다. 이후 ‘문화역서울 284’ 앞에 건립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은, 서울 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7월 3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출범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각료, 한완상 공동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들이 참석했습니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출처=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며, 우리의 역사적 자긍심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완상 공동위원장은 “서울역은 강우규 의사의 의거 현장이자 1919년 3월 5월 1만여 명이 참여한 대표적인 독립운동 장소”라면서 “일제 침탈의 아픈 역사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의 출발 거점 상징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출처=청와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서울역, 서울역 앞에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도심 곳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강우규 의사의 의거 후 이에 영향을 받아 결성된 ‘의열단’. 나석주 의사는 의열단원으로서  토지약탈에 앞장섰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후 경찰들과 추격전 끝에 조국을 향해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결했습니다.

서울역에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서울역에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당시 백범 김구 선생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현재 나석주 의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KEB 하나은행 명동영업부입니다. 이곳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나석주 의사의 동상과 함께 동판으로 의거 터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는 시민들은 이 곳이 과거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을지로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A씨는 “평소 동상을 깊게 쳐다볼 일이 있겠냐?”며 “이 곳이 밀정에 나온 의열단이 의거를 일으킨 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밝혔습니다.

나석주 의사의 동상과 의거를 알리는 비석
나석주 의사의 동상과 의거를 알리는 비석.
 

다음으로 전 김상옥 의사가 치열하게 총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향했습니다. 현재 이곳은 젊음과 연극의 상징,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입니다. 1923년 당시, 이곳에서 김상옥 의사가 일본 경찰과의 교전 후 자결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의 흔적은 역시 동상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종로구 연제동 일대, 효제초등학교 인근에는 김상옥로가 있습니다. 이처럼 김상옥 의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나석주 의사와 같이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끝으로 저는 서울특별시의회로 찾아갔습니다. 현재 국회의사당 이전에 대한민국 국회였던 서울특별시의회는 일제강점기 때는 부민관으로 불렸습니다. 부민관에서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옹호하는 영화가 상영되거나 강연이 이뤄졌습니다.

일제의 선전전을 볼 수 없었던 청년들이 1945년, 부민관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부민관 의거’ 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마지막 독립운동입니다. 상징성이 높으나, 현재는 서울특별시의회 입구에 작은 비석만이 그 때 그 현장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의회. 입구 하단에 작은 알림판이 부민관 의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의회. 입구 하단에 작은 알림판이 부민관 의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년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의 시작인 임시정부가 100주년을 맞기 때문입니다. 이에 정부에서도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첫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도심 속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을 보여주는 의사들의 동상과 비석들. 대한민국의 ‘뿌리’인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의 흔적을 잘 정비하고 기념해, ‘한 점 부끄럼 없는’ 후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최종욱 cjw01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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