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아이가 딱딱한 거실 바닥에서 넘어졌다. 순식간이었다. 이마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두려웠던 영숙(37, 성북구) 씨는 아이를 안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MRI를 찍어볼 것을 권유했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영숙 씨는 순간 고민했지만, 만의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다친 것도 속상한데 병원비까지 많이 드니 자신이 잘못한 듯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달라졌다. 뇌·뇌혈관 MRI 촬영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지난 10월 1일부터다. 이전까지 50만 원 가까이 부담해야 했던 뇌·뇌혈관 MRI 건강보험수가가 약 29만 원으로 책정됐고, 환자는 그 절반인 14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영숙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닥칠 수 있는 이런 응급상황에 부모의 부담을 덜 수 있어 참 반갑다”고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발표 된지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의료계의 반발과 예산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후속조치에 서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화된 ‘선택 진료비 폐지’가 대표적이다. 미아동에 사는 김정민(48) 씨는 “내가 원하는 의사한테 진료를 받기 위해 드는 추가 비용이 늘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부담이 줄어드니 좋다. 병원을 나서는 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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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특진비, 상급 병실료, 간병비 등, ‘의료적 비급여’는 원칙적으로 급여화 했다.(출처=KTV) |
2000년 9월부터 실시된 선택 진료비는 남다르게 비싼 느낌이었다. 오래도록 기다려 1~2분의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런 불만을 가중시켰다. 올 1월부터다. 특진비로 불리던 선택 진료비가 완전히 폐지됐다.
4월에는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 의심자와 확진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상복부 즉, 간·담낭·담도·비장·췌장의 초음파 건강보험이 일반 환자에게 확대 적용됐다. 금액은 기존 6~16만 원에서 2~6만 원으로 줄었다.
지난 해 8월이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고령화 시대에 진입했다. 노화된 육체는 여기저기 병을 만들고, 어르신들의 소비 중 대부분은 자연스레 병원비에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중 삶의 질과 몹시 연결된 치료가 있으니, 바로 임플란트 시술이다. 정릉에 사는 76세 김민자 할머니는 파인애플을 먹다가 흔들거리던 이가 빠졌다. 몇 년 전, 이미 임플란트 시술을 했었기에 선뜻 다시 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시절 3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7월부터 달라졌다.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임플란트 시술의 본인 부담률이 50%에서 30%로 줄었다. 김민자 할머니는 달라진 병원비 소식에 치과를 찾았고, 35만 원 선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었다. “나이 들면 치아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일이 많은데, 정부에서 이렇게 도와주니 참 고마운 일이다”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 치아가 상실되거나 손상이 생기는 것은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마음 때문에 치료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연로하신 부모님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돼 고마운 일이다.
‘상급종합병원 2, 3인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시기 역시 7월이다. 하루에 20만 원 가까이 들었던 비용이 8만850원 수준으로 줄었다. 김우진(종안동) 씨는 “대학병원은 늘 입원실이 부족해서 보험적용이 안되는 2인실에 입원하곤 했다. 비싼 입원실 비용 때문에 가족들에게 미안했는데, 이젠 한결 마음 편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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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부담금의 상한제를 인하, 저소득층, 15세 이하 어린이, 중증치매 환자의 본인 부담을 덜게 됐다.(출처=KTV) |
10월에는 뇌질환 진단을 위한 뇌·뇌혈관·특수MRI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11월부터는 수면 내시경, 결핵균 신속 검사, 난청수술(인공와우) 등 18개 항목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아울러 연말까지 건강보험 적용이 시작되는 항목은 신장·방광의 하복부초음파 검사다.
정부는 2022년까지 1인실 건강보험,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확대와 의학적 비급여 건강보험 적용과 신포괄대상기관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국민들은 새롭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항목이 뭔지 잘 알지 못했다. 의료비의 주요한 항목인 MRI, 상급 병실료, 선택 진료비 등의 병원비 영수증으로 체감했다. 그간 병원비로 많은 돈을 지불해 온 사람은 아는 거다. 눈에 띄게 줄어든 병원비가 건강보험 혜택의 효과임을 말이다. 이는 치료를 통해 건강을 찾고 비용을 절감하게 된 모든 환자와 보호자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년부터 실손 의료보험료가 최대 8.6% 인하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는 비급여 항목이 건강보험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급여 항목으로 늘어나면서 실손 의료보험의 보험료 인하를 가져오게 돼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또 다른 효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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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의료비 지원 대상이 확대돼, 4대 중증 외 모든 중증환자가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소득별 심사기준도 완화됐다.(출처=KTV) |
뿐만 아니다. 노인, 아동, 청소년, 여성, 장애인들의 ‘취약계층 대상자별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소득 수준에 비례한 ‘본인부담 상한액을 설정’했으며, 4대 중증이 아니어도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피눈물 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진심이 느껴지는 이 문장에 흔들림 없는 믿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