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도발 8주기다.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해병대원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참사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대립이 사라지고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나는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던 때에 경기도 포천 ○군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던 중에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비상경계령이 떨어졌다. 해병대가 즉각 대응사격을 하는 등 남북한 간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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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전 8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해병대사령부 장병들이 국립대전현충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찾아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선배들을 향해 경례를 한 후 묵념을 하고 있다.(출처=뉴스1) |
우리 부대도 즉각 비상이 걸려 회의를 중단한 채 철모와 탄띠, 군장 등을 챙겼다. 이러다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 육군 중령이었던 나는 27년간의 근무기간 중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상사태에 유서라도 써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라 장병들 모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연평도 포격도발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래 북한군이 한국에 직접 타격을 가해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이후 2014년 전역하기까지 천안함 침몰사건과 함께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은 내 군대생활에 가장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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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장병들이 지난 10일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에서 철수하고 있다.(출처=뉴스1, 국방부) |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던 남북한 간의 긴장은 2018년 9월에 들어서 완전히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았던 2010년에 비해 2018년은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은 예비역 장교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 후 계속돼 오던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은 최근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올해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되돌아보니 남북한 간에 한국전쟁 휴전 후 55년간 이어져 온 긴장과 대립을 해소할 획기적인 화해와 협력 사안들이 많았다. 과거 55년간 남북이 대치하며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올해 단 몇 개월 만에 이룬 것이다.
남북협력으로 평화 분위기를 만든 사안들은 9.19 평양공동선언, JSA 비무장화, 전방 11개 GP 병력과 화기·장비 철수, 남북 공동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출전부터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 합의, 비무장지대 내 공동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남북 산림협력 등 수없이 많다. 게다가 올해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지도 모른다. 이중에서 내가 가장 획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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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부전선 GP 11개 중 10개를 폭약을 사용해 완전히 파괴했다. 위쪽 사진부터 폭파되기 전 북측 GP(원안)와 폭파 장면, 그리고 폭파 이후 GP 건물이 사라진 모습.(출처=국방부) |
첫째,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다. 남북한과 유엔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내 초소와 병력· 화기의 철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남북한 민간인과 관광객, 외국 관광객 등은 빠르면 올해 안에 JSA 남북한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무기 없는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JSA가 자유 왕래가 된다면 가장 먼저 달려가보고 싶다.
둘째, 전방 11개 GP 병력·장비 철수 및 철거다. 남북은 10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시범철수 대상인 남북 각각 11개 전방 GP의 병력·장비 철수를 완료하고 현재 철거 중인데, 이달 안에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냉전과 분단, 그리고 내 군생활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던 GP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셋째, 비무장지대 내 공동유해발굴과 지뢰제거다. 남북은 비무장지대 내 공동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철원성 발굴 등을 골자로 한 군사 합의를 맺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지난 1일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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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지상·해상·공중 완충구역에서 포사격 및 기동훈련, 정찰비행 등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 11월 1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장재도의 진지 모습.(출처=뉴스1) |
넷째,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때 북한이 포탄을 쐈던 해안포 포문을 모두 닫았다. 이는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서명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서해와 동해 접경지역에서는 해안포 사격이나 해상 기동훈련을 서로 중단하기로 했다.
다섯째, 비무장지대(DMZ)에 남북을 잇는 군사도로가 개설되고 있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 고지 일대에서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을 위해 도로를 연결한 것이다. 남북이 총뿌리를 겨누던 DMZ에서 도로를 연결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뉴스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지휘관들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감개가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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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군사당국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공동유해발굴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도로개설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출처=뉴스1, 국방부) |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 적(敵)으로 여겼던 북한이 이제 평화와 협력의 대상자로 바뀐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이런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이런 감회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최전방 ○군단에서 근무하는 후배 장교 김남진 소령은 “8년 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일어날 때는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이 있었다. 요즘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장병들도 전쟁 공포가 없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며 군내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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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무기 없는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출처=KTV) |
군사적 긴장 완화 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에서도 남북간 교류협력이 활발하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남북이 공동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출전부터 2032년 하계올림픽을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살아생전에 남북이 단일팀이 되어 올림픽에 출전해 목청껏 응원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예비역 장교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때는 전쟁이 발발할 것 같아 가족들에게 유서라도 써놓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죽기 전에 올림픽 남북 단일팀 응원과 금강산과 백두산 구경을 가보고 싶은 새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이 바람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