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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총 대신 샅바 들고 씨름하는 발칙한 상상

사상 첫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 된 ‘씨름’… DMZ 씨름대회를 꿈꾸다

2018.11.30 정책기자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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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은 우리 고유의 전통놀이이자 스포츠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단오나 추석 즈음에 마을 한 가운데서 씨름판이 벌어지곤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즐겨보시던 프로그램이 이만기, 강호동이 나왔던 천하장사 씨름대회였다. 아마도 아버지는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보며 어릴 적 고향에서 벌어지던 씨름판 추억에 젓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 ‘씨름’이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문화재청은 11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 포트 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11월 26일~12월 1일)에서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북 최초로 공동 등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식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다.

26일 오전(현지 시간) 모리셔스 포트 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긴급안건으로 남북 씨름의 공동등재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출처=뉴스1, 문화재청 제공)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에서 씨름을 인류무형유산으로 결정했다.(출처=뉴스1, 문화재청 제공)
 

남북의 씨름 공동 등재가 제안된 것은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 국빈 방문 기간인 10월 16일 오드레 아줄레(Audrey Azoulay)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유네스코 사무국 차원의 협조를 요청하고, 아줄레 사무총장이 11월 15일~17일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면서 북한과 합의를 이끌어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이하 무형유산위원회)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for peace and reconciliation)’ 차원에서 씨름을 인류무형유산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남북이 처음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씨름을 공동 등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지난 23일 경북 안동체육관에서 열린 2018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여자체급별 장사전 예선전 경기.(출처=뉴스1)
지난 23일 경북 안동체육관에서 열린 2018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여자체급별 장사전 예선전 경기.(출처=뉴스1)
   

씨름은 장소나 시설에 제약이 없는 경기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터만 있다면 가능하다. 그래서 옛날 장날에는 소 한 마리를 상금으로 내걸고 씨름으로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씨름판에는 어른과 아이, 양반과 상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구경꾼이 많아지면 선수도 신명나게 시합을 펼치는 마을 잔치다. 씨름 하나로 마을 주민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씨름으로 남북이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 군대에서도 체육대회 때마다 씨름이 빠지지 않는다. 씨름을 잘하는 병사는 포상휴가를 가기도 한다. 그래서 체육대회 때마다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씨름을 한다. 북한 군인들도 씨름을 자주 한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봄, 가을에 학교, 공원 등에서 씨름대회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이번에 공동 등재가 되기 전에 북한도 씨름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 신청한 것을 보면 북한에서도 씨름이 상당히 인기 있는 민속 스포츠다.

26일 경북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8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모습(출처=뉴스1)
26일 경북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8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모습(출처=뉴스1)
     

지난해 7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에 나온 북한 인민군 중대장 출신 장교가 천하장사 이만기는 몰라도 씨름은 좀 해봐서 이만기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봤다. 경기는 예상대로 이만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비무장지대(DMZ)에서 보면 어떨까? 남북한 군인들이 총 대신 샅바를 쥐고 씨름을 하는 모습 말이다.

지난 11월 22일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한 지휘관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지휘관들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남북한이 DMZ에 전술도로까지 연결하고 남과 북이 북한 철도를 따라 약 2600km를 이동하며 남북철도 북측 구간 현지 공동조사까지 시작했으니 비무장지대 한 가운데에 씨름 경기장을 만드는 것은 남북이 마음만 먹으면 문제될 일이 아니다.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출처=뉴스1, 문화재청 제공)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출처=뉴스1,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남북한이 공동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씨름을 등재했으니 남북한 군인들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씨름 친선대회를 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씨름에 이어 비무장지대(DMZ)도 남북의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 1순위라고 하니까 DMZ에서 남북한 군인이 씨름대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DMZ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씨름 경기를 하고 이 모습을 현장에서 남북한 정상이 지켜본다면 이는 판문점에서의 만남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을 것이다. 정말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다. 남북이 공동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출전부터 2032년 하계올림픽을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씨름이 채택돼 남북한 화해의 상징으로 세계에 소개하면 어떨까.

이는 공허한 상상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전술도로를 개통한 데 이어 그 한 가운데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총 대신 샅바를 쥐고 씨름을 하는 발칙한 상상은 남북이 마음만 먹으면 현실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말이다.



이재형
정책기자단|이재형rotc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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