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영세상인들이 내몰리는 이른바 상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상생협약표준안을 고시하고 상생협력상가 추진방안을 확정해 지난 2일 발표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상가 주인과 임차인, 지자체장이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생협약을 운용 중이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권리·의무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이행 여부도 자율에 맡김에 따라 실효성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상생협약표준안을 만들어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 시 반영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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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에서 전국 최초로 운영하는 공공임대상가인 ‘성동안심상가’. |
상생협약표준안은 상가임대차보호법 상 임대료 인상률과 계약갱신요구권 수준 이상으로 강화된 임대계약을 맺을 경우 지자체장이 임대인에게 리모델링 비용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협약 위반 시 위약금을 물리게 했다.
우선, 표준협약서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경우 차임(또는 보증금) 인상률을 상가임대차보호법상 한도(5% 이하) 이하로 하고, 계약갱신요구권도 10년 이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수준보다 임차인에게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경우 지자체장은 임대인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용적률·건폐율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협약에 포함하도록 했다.
협약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인이 소유권을 이전할 때에도 협약의무가 승계되도록 하고,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반환하고 위약금도 지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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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안심상가는 기본 사무실 집기들도 갖춰져 있어 영세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
국토교통부는 상생협약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재생사업 공모시 상가 내몰림 예상지역에는 사업 신청 요건으로 상생협약 체결 등 상생계획 수립을 의무화했다. 또 도시재생사업으로 상가 내몰림 현상이 발생할 경우 영세 상인들을 지원하고 구도심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도시재생지역에 상생협력상가를 적극 공급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를 듣고 이미 전국 최초로 성동구에서 운영하는 ‘성동안심상가’와 성수동 지식산업센터(서울숲IT캐슬)를 방문해봤다.
낡고 오래된 공장들이 밀집해 준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은 편리한 교통,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등으로 예술가와 사회적기업, 젊은 사회혁신가들이 모여들고, 이와 함께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곳이다. 고가의 임대료로 기존 상인, 수공업자, 예술인들이 나가고 대규모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와 지역의 고유한 특색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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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안심상가가 입주해 있는 ‘서울숲IT캐슬’. |
이에 성동구가 직접 나섰다. 직접 건물주가 돼 임대료 걱정없는 안심상가를 운영하게 된 것.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본 상인들에게 주변 시세의 60∼70%의 임대료와 10년까지 임대기간 연장이 가능한 성동안심상가를 운영하고 있다.
안심상가에 입주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성동안심상가에 입주한 광고대행사 ‘애드플러스’ 이호찬 대표는 2016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소호 사무실을 전전하다 비싼 월세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지역을 옮겨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 성동구청에서 운영하는 안심상가에 지원해 입주한 경우다.
이호찬 대표는 “가장 큰 매력은 주변 시세 대비 임대료가 30~40% 정도 저렴하고 장기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신축건물이라 넓고 깨끗하고 환경도 쾌적하다. 책상, 의자부터 개인 사물함까지 모두 갖춰져 있어 몇 가지 개인 물품만 가져 오면 바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봤으면 좋겠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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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안심상가에 입주한 ‘공씨책방’. |
윤스김밥 윤복순 씨는 이전에 왕십리에서 국수집을 운영해오다 새로 바뀐 주인으로부터 지난 4년간 올리지 않은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겠다는 내용증명을 받고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사례이다. 비싼 임대료에 마땅히 장사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성동구의 안심상가 모집공고를 보고 신청해 입주의 기회를 얻게 됐다. 윤 씨는 “작은 상가지만 쫓겨날 걱정이 없다고 하니 내 가게같이 애정이 간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스김밥 옆의 공씨책방은 45년간 대를 이어 장사해 온 제1세대 헌책방이자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이곳 또한 두 배에 달하는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1년에 걸친 명도소송 끝에 쫓겨나 성동안심상가에 입주하게 됐다.
같은 1층의 아트그라운트 협동조합은 성동패션봉제조합 및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협업해 ‘떴다할매사업’과 ‘협동조합박람회’ 등 여러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경험이 있는 유망 업체로, 성수동에 있는 한국패션 사회적 협동조합 사무실의 한쪽 공간에서 일을 해오다 안심상가로 터전을 옮겼다.
‘모비워스’ 역시 성수동에서 영업하다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난 청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입주를 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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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안심상가에 입주한 윤스김밥. |
상생협력상가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조성해 장기간 저렴하게 제공하는 상업시설로 기존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하는 매입형과 아예 신축하는 건설형으로 나뉜다. 국토부가 입주대상과 입주기간, 임대료 등에 대해 표준안을 마련하면 지자체별로 지역 여건에 따라 수정해 운용한다.
지자체는 소상공인, 창업기업, 사회적경제조직, 장애인기업 등 사회적 배려대상 등을 우선 선정하고 최대 10년까지 주변 시세(감정가)의 80% 이하에 임대할 수 있도록 한다. 상생협력상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상가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입주 권장업종 선정, 사용 조건 및 퇴거 규정 등 지역 여건에 맞는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한다.
국토교통부는 상생협력상가를 조성하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은다면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한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뉴딜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상생협력상가는 영세 상인 뿐만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청년창업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