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의 일이다. 주문도 하기 전에 기분이 샤방해졌으니, 종업원의 ‘신분증 보여 주세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물론 아득한 소시적 일이다. 어려보이는 것은 나름 싱그러운 기분을 안겼다.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그랬다. 편의점이나 식당, 술집 종업원들은 ‘신분증 좀 보여 주세요’ 라는 말에 반응하는 모습으로 미성년과 성인을 구분할 수 있었다.
몹시 당황하며 ‘귀찮아서 안 가지고 다닌다’ 등의 거부 반응을 보이면 미성년자일 확률이 높은 반면, 환한 표정으로 ‘주민등록증 검사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식의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 누가 봐도 성인이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일부러 신분증 검사를 해 손님을 기분좋게 한다는데, 좌우간 고마운 일이다.
성인과 미성년을 구분하는 기준인 ‘주민등록증’. 한국인은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고,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통지를 받은 후 1년 안에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5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jpg) |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위해 찾은 주민센터. |
아들은 지난해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받았다. 통장님이 손수 가져다주신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들여다보며, 남다른 감회에 빠진 내게 아들은 그랬다.
“편의점 같은 곳에서 술 살 때 신분증 요구하잖아요. 그때 신분증 보여주는 기분이 어땠어요?”
“……(이건 뭔 귤 까는 소리?)”
아들이 성년이 되면, 주민등록증의 지문이 마르기 전에 술을 살 게 분명해 보였다.
아들은 2001년 3월생이다. 1년 기한을 딱 두 달 앞두고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했다. 별 일 없이 차일피일 미루다 주민등록증 사진 규제가 완화된다는 소리가 들렸고, 아들은 귀와 눈썹이 보여야 한다는 규제가 풀린 2월에 만들겠다고 한 거다. 아들은 완화된 규정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머리카락이 눈썹을 가린)으로 사진을 찍었고, 곧바로 주민센터를 찾았다.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에도 준비물이 필요하다. 신청자 본인이 작성한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서와 6개월 이내에 촬영한 반명함판 사진, 학생증이나 청소년증, 여권 등 국가기관이 발행한 법정 신분증이 있어야 하며 본인 이름을 한자로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나름의 세심한 스킬을 요하는 열 손가락 지문찍기는 내가 주민등록증을 만들던 시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한 손가락씩 신중을 기했고, 지문이 뭉개지거나 잘 안 나올 경우 종이를 덧대고 다시 찍는 것을 반복했다. 시대가 참 많이도 변했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열 손가락 지문 찍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느낌이 남달랐다.
.jpg) |
직원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지문을 찍고 있는 모습. |
정확히 2주 후, 아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물론 본인이 가야 한다. 하지만, 야간자율학습으로 바쁜 고3이 아닌가. 직계혈통인 내가 찾아 왔다. 신분증을 찾는 경우, 형제, 동생 등 미성년자는 찾을 수 없다.
주민등록증도 세월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과거 작고 네모난 신분증 앞면에는 사진, 주민등록번호, 본적, 주소, 해당 기초단체장 외에도 병역사항이, 뒷면에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의 지문과 특기번호, 주소변경사항까지 참 많이도 기재됐었다. 또한, 코팅된 갱지를 사용했기에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세탁을 하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망의 2000년, 주민등록증은 플라스틱 카드로 교체됐고, 본적과 병역사항이 삭제됐다.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시 주의할 점도 있다. 최초 발급 신청은 현재 본인의 주소지 관할 시군구 소속의 주민센터에서만 가능하다. 주민등록증 신청은 최초 발급이나 재발급 모두 반드시 본인이 방문해야 한다. 바쁘다고 딴 사람 보낼 생각일랑 접어두는 게 좋다.
분실로 인한 재발급을 신청할 때는 따로 신분증을 지참할 필요가 없다. 재발급까지 최대 1개월까지 걸릴 수 있으니, 그 사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확인서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정부24(www.gov.kr)에서 재발급 신청을 할 수도 있다.
 |
찾아가는 주민등록증 발급 서비스.(사진=뉴스1, 광주 북구 제공) |
2019년의 주민등록증은 더 진화하고 있다. 2월 8일부터 눈썹과 귀가 보여야 한다는 사진 규제가 완화됐고, 원하는 경우, 혈액형도 올릴 수 있다. 또한 7월부터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로 직접 방문하는 지자체도 등장했으며, 생애 첫 주민등록증을 신규 발급받는 청소년에게 축하카드를 보내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아울러,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아기 주민등록증도 발급해 준다. 특히 뒷면에는 아기에게 전하는 ‘부모의 바람’이 적을 수 있다고 하니 저출산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가 아닐까 싶다.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주민등록증과 더불어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채롭게 변하고 있는 거다. 대한민국 국적자임을 정식으로 증명하는 주민등록증. 그 신분증으로 성년이 되는 아들들에게 바란다. 그 작은 플라스틱에 담겨진 무거운 책임감이나 독립심 등의 감정도 함께 성장하길 말이다.
▶ 주민등록증 접수처 : 주민등록 주소지 자치구의 모든 주민센터
▶ 구비서류 : 주민등록 발급 신청서, 6개월 이내 촬영한 반명함판 사진 1매, 본인확인 소명자료(학생증, 청소년증, 여권 등 없으면 부모님 동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