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근처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계산대에서 점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한 아주머니를 봤다. 마트 내 비치돼 있던 속비닐 한 장을 끊어 그 안에 장 본 물건들을 이것저것 담아온 것이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점원은 1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담아갈 순 없다고 말을 했고, 아주머니는 그럼 왜 저 안에 이걸 가져다 놓은 것이냐고 대답했다. 마트에 온 사람들이 상품을 담을 용도로 쓸 수 있는 봉투가 아니냐며 그간 그렇게 해왔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결국 아주머니가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사서 장 본 물건들을 담아 가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그 분 입장에서는 정말 그 봉투를 써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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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부터 1회용 비닐봉투의 점검 및 단속이 시작됐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마트의 점원 말대로 올해 4월 1일부터는 전국의 대형마트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상점에서 1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됐다. 비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강력하게 제도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1월부터 3개월 간 계도기간을 거쳤고 이제는 본격 단속에 들어갔다. 위반하면 최대 3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국민들은 대체로 환경보호를 생각하면 괜찮은 정책인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적잖은 혼선이 있어 보인다.
비닐봉투 사용이 아예 금지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유상제공이 가능한 곳도 있고, 또 대형마트라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1회용 비닐봉투를 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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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내 농산품 코너 등에 주로 비치된 속비닐 롤. 과일, 채소등의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다는 지침이 적혀있다. |
1회용 비닐봉투 금지 규정을 담고 있는 자원재활용법 속 이 제도의 세세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체크해 보면 어떨까.
먼저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되는 곳은 전국의 대형마트를 비롯해 크기 165㎡ 이상의 슈퍼마켓이다. 1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이 장바구니나 에코백 등을 챙겨가야 한다.
제과점의 경우 현재 대상 업종에 포함되진 않는다. 이에 따라 무상제공이 금지될 뿐 유상으로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이미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으니 가급적 대상 업종이 아니더라도 비닐봉투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대형마트에서 1회용 비닐봉투를 쓸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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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당근 등 흙이 묻어 있거나 물기가 있는 1차 식품은 속비닐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
일명 속비닐이라고 부르는 이 비닐봉투는 마트의 채소 코너나 과일 코너 등의 한 쪽에 뜯어 쓸 수 있는 롤 형태로 비치돼 있다.
농산품 코너에 마련된 이유는 그러한 상품들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조금 더 상세한 기준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겉면에 수분이 묻어 있지 않더라도 포장되지 않은 1차 식품은 속비닐에 담아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쌓아놓고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담아갈 수 있게 진열해 놓은 과일이나 흙 묻은 채소 등이 바로 포장되지 않은 1차 식품에 속한다. 감자, 흙당근, 브로컬리, 파프리카, 무, 바나나, 귤, 배 사과 등이 그 예다.
주의할 점은 1차 식품이라고 해도 이미 트레이 등에 포장된 제품은 원칙적으로 담을 수 없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포장되지 않은 1차 식품이라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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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기가 흐르거나 물기가 샐 수 있는 어패류 또한 속비닐에 담을 수 있는 상품들이다. |
다만 포장 시 수분이 함유돼 있거나 자칫 액체(핏물 등)가 흐를 수 있는 제품, 예를 들면 두부나 어패류 등은 속비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도 원칙적으로는 속비닐 대신 비치된 보냉백을 사용해야 하지만 상온에서 수분이 발생하고 내용물이 녹을 우려가 큰 제품은 속비닐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음료수나 우유 등 이미 포장된 상품은 단순 온도 차이로 수분이 생기더라도 속비닐에 담을 수 없다.
이렇게 속비닐 사용 기준을 알아봤다. 환경부 지침에 따라 되도록 꼼꼼히 정리해 봤지만 아직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은 듯하다. 분명 현장에서도 매장 직원들과 소비자가 적잖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분이 함유된’, ‘액체가 흐르는’, ‘수분이 발생할 수 있는’ 등과 같은 상황은 사실 주관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를 몇 군데 다녀보니 대형마트들 조차도 통일되게 운영하고 있지는 못했다. 규정 자체에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요즘 속비닐 적용과 관련한 기사도 많고 불만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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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출처=pixabay) |
중요한 점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만큼 이왕이면 폭 넓게 수용하고 제도를 새롭게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당장 오늘부터 1회용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하나를 줄이고 내일 두 개를 더 줄여보자는 계획으로 실천하다보면 분명 다회용 컵 사용이나 장바구니 사용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일상 속 에코라이프 실현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노(No) 플라스틱, 노(No) 비닐봉투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삶.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깊게 느끼고, 질문하는 글쓴이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