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는 아들을 보며 저는 행복하기 보다는 하교 후 맡길 곳이 없어 한숨과 걱정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는 왜 추첨에서 떨어졌냐며 아들의 핀잔까지 들어야했습니다. 가슴 속에 넣어둔 사직서를 꺼내려던 찰나에 동네 복지관서 돌봄교실을 열어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부산 가동초 학부모 장 모 씨는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이다. 조부모의 도움과, 학교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없었던 그녀는 퇴근시간까지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잡았다.
장 씨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학원 투어로 지친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라며 “정관노인복지관의 돌봄교실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아이도 행복하고, 경제적 부담도 덜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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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육청은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역 내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우리동네 자람터, 거점형 자람터 등 총 9곳의 부산형 돌봄 자람터를 구축하고 있다.(사진=부산시교육청) |
부산시 기장군 정관지역은 신도시 조성으로 신혼부부가 대거 유입되면서 평균 연령 35세의 젊은 동네로 꼽힌다. 맞벌이 가정과 학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돌봄교실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와 교육청은 신학기만 되면 돌봄교실을 늘려달라는 민원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부산시교육청은 정관노인복지관에 ‘우리동네 자람터’를 열었다. 우리동네 자람터는 아파트나 복지관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 새로운 돌봄 모델이다.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정관노인복지관을 찾아가봤다.
이성숙 정관노인복지관(기장군도시관리공단 소속) 주임은 “2층에 위치한 프로그램실은 어르신들 수업공간이지만 사용빈도가 낮았다” 라며 “교육청에서 유휴공간을 활용해 돌봄교실을 찾고 있다는 말에 어르신들과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동참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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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정관노인복지관. 돌봄 자원봉사자 강옥자 할머니와 동행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오후 1시가 되자 정관노인복지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복지관에 돌봄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하나 둘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2층 프로그램실로 들어갔다. 알록달록 파스텔 톤의 친환경 매트와 책상이 아이들을 반겼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돌봄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에게 얘기하며 간식을 먹었다. 돌봄 자원봉사자들은 틈틈이 아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궁금해 할 학부모들에게 SNS로 소식을 알렸다.
이윽고 서예교실이 시작됐다. 서예 선생님과 돌봄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먹물을 묻혀 화선지에 하나 둘 글귀를 적어 내려갔다.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하면 글씨가 예뻐진다는 말에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붓 끝에 눈을 집중했다. 백가령(9) 어린이는 “처음에는 삐뚤빼뚤했는데, 서예를 배우고 나서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고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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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노인복지관의 우리동네 자람터가 특별한 것은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감성수채화·서예·요리교실·전통교육·생활체육 등 어르신들의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이뤄진다. 사진은 서예를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
정관노인복지관의 우리동네 자람터가 특별한 것은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감성수채화·서예·요리교실·전통교육·생활체육 등 어르신들의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이뤄진다. 감성수채화를 담당하는 교육봉사자 오예란(61) 씨는 30년 넘게 미술학원을 운영한 경력을 살려 아이들 수업에 자원했다.
오 씨는 “은퇴 후 보람된 일을 찾다 아이들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며 “오랜만에 수업을 준비하고 손자 같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느끼지 못한 성취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자녀들도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니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낯설어하던 아이들도 복지관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먼저 인사할 정도로 밝고 명랑해졌다. 퇴직한 공무원 어르신들은 음악·체육 등 자체 동아리를 결성해 아이들에게 특강 형태로 재능기부도 해준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교감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돌봄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강옥자(78) 할머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할머니로 꼽힌다. 강 할머니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미래의 꿈나무들인 아이들과 교류하다보면 시간도 훌쩍 지나가고, 매달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뿌듯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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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노인복지관 소속 어르신이 직접 키운 감자를 기부해 아이들의 간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
학부모들의 반응도 뜨겁다. 학부모 김 모 씨는 “주말에도 돌봄교실을 가고 싶어할 정도로 아이가 즐거워한다”며 “일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줘 근무시간 틈틈이 확인할 수 있어 업무 집중도도 높아졌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울 수 있어 사교육비도 절감됐다”고 귀띔했다.
돌봄교실에 지역민이 힘을 모아서였을까. 부산시교육청과 기장군도시관리공단이 함께 운영하는 ‘우리동네 자람터’는 2018년 전국 시·군·구 지방공단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인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지역사회가 아동의 방과 후 교육과 돌봄을 책임지고 노년층에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은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역 내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우리동네 자람터, 거점형 자람터 등 총 9곳의 자람터를 구축하고 있다.
원옥순 부산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장은 “우리동네 자람터는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새로운 돌봄교실 모델로 전국에서 처음 시행된 사례” 라며 “앞으로 지자체 중심의 학교 밖 돌봄서비스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