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지지지직, 깡깡깡…’
부산 영도구 대평동에 있는 옛 도선장 주변 동네를 지나가다보면 흔히 들리는 소리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조선산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등지고 있으며, 남포동 쪽의 뭍을 바라보고 있는 지형이라 1970년대 들어서며 수리조선업 메카로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마을에는 배 아래쪽에 붙은 조개를 떼어내고 녹을 벗겨내는 ‘깡깡’ 망치 소리로 가득 찼는데, 그 소리를 빗대어 지금까지 ‘깡깡이마을’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마을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수리조선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그렇게 10년 넘게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마을 주민의 4분의 1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뿐이었다. 그러던 이곳이 최근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게 됐다. 근대 조선산업 출발지이자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깡깡이마을을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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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대평동에 위치한 ‘깡깡이마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최초 조선소 자리였다.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88점의 예술작품이 설치되며 부산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
낙후된 마을이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2015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부산시 영도구청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으로 낙후되어가는 대평동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의미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며 “8곳의 수리조선소와 260곳의 선박부품업체가 밀집한 산업현장이라 방문객이 제로에 가까웠다. 주민들과 함께 협업체계를 꾸려 예술마을로 가꾸면서 관광객들이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8000여 명이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다른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비교해볼 때 주민 주도의 지속적인 도시재생사업 기틀을 마련한 점이 인상 깊다. 마을 공동재산을 운영하는 마을회 결성을 시작으로 마을정원사, 마을신문, 마을해설사, 마을다방 등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주민참여가 높아졌다. 깡깡이마을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깡깡이마을 100년의 울림’ 단행본 시리즈 3권도 주민들의 주도로 발간됐다.
이러한 주민참여 프로젝트가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외 예술가들도 과거의 항구와 조선업이 결합된 흥미로운 콘셉트에 28명의 국내외 작가들도 자연스럽게 초대에 응했다. 장식적으로 설치하는 예술작품이 아닌 지역의 특성과 주민편의를 바탕으로 예술가의 창의성이 반영된 작품 88점이 마을 곳곳에 조성됐다. 풍부한 해양생활문화와 근대산업유산을 바탕으로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을 재생하는 마을박물관, 선박체험관 등 거점공간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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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깡깡이마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안내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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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을 타고 옛 영도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항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영도바다버스투어와 해설이 있는 마을투어를 100회 넘게 진행하면서 깡깡이마을은 부산의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
근대 조선산업 1번지이자 수리조선의 중심지인 깡깡이예술마을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둘러봤다. 항구를 따라 뱃길 쪽으로 걷다보니 제일 먼저 ‘깡깡이 안내센터’가 보였다. 관광객들이 마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안내센터와 함께 운영하는 ‘신기한 선박체험관’은 깡깡이예술마을에서만 체험가능한 공간이다.
선박체험관은 대평동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인선을 활용해 예술작가들의 예술적 상상과 감수성이 묻어난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무엇보다 선박을 타고 옛 영도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항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영도바다버스투어와 해설이 있는 마을투어를 100회 넘게 진행하면서 깡깡이마을은 부산의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가수 최백호의 ‘1950 대평동’,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깡깡 30세’, 만화가 배민기 작품의 ‘깡깡시티’와 그래픽노블 작가 마크 스태포트의 ‘깡깡이블루스’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각각 음원과 만화를 발표해 깡깡이마을에 대한 대중의 흥미와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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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공중전화부스를 활용한 공공예술작품에는 깡깡이 아주머니의 음성 인터뷰를 통해 깡깡이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물론 배가 나가고 들어가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었다. |
길을 걷다보니 폐기된 공중전화부스를 활용한 공공예술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깡깡이 아주머니의 음성 인터뷰를 통해 깡깡이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물론 배가 나가고 들어가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지역 재생과 함께 깡깡이마을만의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 내는 작품 중 하나였다.
예술프로젝트에 벽화가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수리조선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 중간 컬러풀한 벽면을 볼 수 있다. 대평동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벽화는 깡깡이 아주머니를 주인공으로 했다.
지도를 들고 한참을 좁은 골목길을 왔다갔다 하며 마을 구경을 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공간의 골목 안을 들어가다 보니 작고 아담한 마을공원이 나왔다. 마을에서 가장 지저분했던 폐가 주변을 공원으로 꾸미게 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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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공간의 골목 안을 들어가다 보니 작고 아담한 마을공원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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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이 동네에서 가장 지저분했던 폐가 주변을 공원으로 꾸민 장소이다. |
때마침 마을공원 꽃을 다듬던 주민 김 모 씨는 “브라질 작가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자 하나 둘 단장하기 시작하면서 공원이 조성된 것”이라며 “처음에는 ‘우리 동네에 볼 것이 뭐가 있느냐’며 반문하던 사람들도 예술작품들이 하나 둘 설치되니 시선이 달라져 화합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고 귀띔했다.
한편 ‘키네틱 프로젝트’로 만든 예술작품도 있었다. 키네틱 프로젝트란 예술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예술작품에 움직이는 부분이 들어간 작품을 말한다. 깡깡이마을에서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풍력으로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바람과 시간’을 비롯해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해와 달이 시소처럼 움직이는 ‘발견’등이 바로 그것이다.
옛 대평유치원과 대평동 마을회관 건물을 개축한 3층 규모의 깡깡이 생활문화센터는 마을 주민에게는 사랑방이자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이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쉼터이자 깡깡이마을 콘텐츠의 보고로 마을 주요 거점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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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예술마을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벽화는 깡깡이 아주머니를 주인공으로 했다. |
이렇듯 근대 조선산업 발상지라는 역사성과 해양문화수도 부산의 원형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깡깡이예술마을’이라는 마을브랜드로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노력들이 빛을 발한 걸까.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지역문화 대표브랜드를 육성하고자 시행된 ‘2018년 지역문화 대표브랜드 공모전’에서 ‘깡깡이예술마을’이 최우수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역문화 대표브랜드 공모전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특화된 지역문화 발전을 유도하고,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우수한 지역 브랜드를 발굴·확산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깡깡이예술마을은 살아있는 역사의 흔적 속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산업현장으로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복고풍(레트로)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과거의 땀과 노력이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감성의 코드로 작용한 덕분이 아닐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