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럼 100년이면? 강산이 10번이나 변하다 못해 그곳에 강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 못 할 시간일 것이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만들어진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실로 이 기간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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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처음 상영한 영화관 단성사.(1907년 설립)(출처=KTV) |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단성사 영화관에서 한국영화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개봉했다. ‘연쇄극’이란 연극과 영화를 결합한 공연 양식이다.
먼저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등장해 연기를 한다. 주인공과 악당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악당이 도망을 친다. 순간, 무대 조명이 꺼지고 하얀 천이 내려와 스크린 역할을 한다. 스크린에는 무대에 있던 인물들이 영화 속에 등장해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을 보여주다 만나는 장면에서 다시 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배우들이 등장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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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의리적 구토’에 대한 필름이 남아 있지 않고 기록으로만 존재한다.(출처=KTV) |
이런 연출 방법을 ‘연쇄극’이라고 부른다. 그럼 과연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첫 한국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비록 연극과 결합한 형태이기는 하나 단순히 스크린에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니 이를 최초의 한국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의 날도 이 영화의 개봉일에 맞춰 10월 27일로 정했다.
첫 한국영화 이후, 2004년 2월 20일, 한국영화 중 첫 1천만 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나온다. 바로 실미도. 지금은 1천만 영화라고 하면 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대서특필 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 2012년엔 연간 한국영화를 본 누적 관객 수가 처음으로 1억 명을 돌파했다. 과연 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중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찾아가는 영화관,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상영회’를 부산시민공원에서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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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하녀’ 포스터. 옛날 포스터라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출처=한국영상자료원) |
내가 방문한 날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작)’가 상영됐다. 이 작품이 100주년 기념 상영회의 첫 번째 타자로 뽑힌 이유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나타낸 리얼리즘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녀’가 개봉했을 당시는 산업화의 발전으로 시골 출신의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중산층 가정에서 가정부나 하녀로 일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 모습이 이 영화에 잘 녹아있다. 특히 ‘하녀’는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 중 공동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평이 좋았던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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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에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출처=한국영상자료원) |
줄거리가 다소 복잡하긴 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그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영화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녀’는 실제로 있었던 하녀의 주인집 유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또한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트장이나 의상의 디자인이 매우 세련됐다. 음악도 보는 내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향을 사용해 몰입감을 최대한 끌어준다.
주인공 동식(김진규)의 장난꾸러기 아들로 배우 안성기가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며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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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시민공원 시민사랑채에 모여들었다. |
가족과 함께 시민공원을 찾은 이순옥 씨는 영화가 끝난 후 “59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최고로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도 공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배우 동방우(명계남) 씨와 평론가 권상희 씨는 “한국영화가 벌써 100주년이 됐다. 여기 오신 관객들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100년, 1000년 쭉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영화에 많은 애정을 부탁 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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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평론가 권상희, 배우 김승수, 감독 정형석, 배우 동방우(명계남). |
한국영화 100주년.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말이 쉬워 100년이지 이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영화라는 공통 주제를 목표로 엄청난 정성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감독, 배우, 제작사, 투자사 등등 각자의 위치에서 한국영화가 발전되도록 밑거름을 다지고 다져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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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들과 감독. |
또한 100년 동안 한국 영화를 사랑한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배우 이하늬 씨는 “한국영화가 100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관객들 덕분이다. 우리는 관객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관객이 관심을 가지고 혹평이든 찬사든 직접 보고,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영화를 보고, 평가를 해주는 게 한국영화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100년이 이전의 100년보다 더 기대가 되는 건 한국영화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