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찾지 않아도 지나치다 훅~ 시야에 들어 온 예쁜 장면은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매일 지루한 곳에 가더라도 가는 길이 즐겁다면, 좋은 기분은 유지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이 바로 그렇다.
자주 지나던 이곳은 이미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 2위로 선정됐고, 촬영장소로도 여러 번 사용될 만큼 손색없었다. 그곳이 올해 3월, 더욱 멋진 지하예술정원으로 탄생했고, 10월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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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 착공행사에 참석을 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으로 올해 12회째를 맞는 ‘2019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은 지난해에 이어 사업부문과 학술연구부문으로 나누어 공모를 진행했다. 특히 올해는 일반 공모를 통해 선정하기 어려운 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비공모 부문도 신설했다.
일단 누려보자. 지하 5층이나 되는 녹사평역이 뭐가 다른지. 지하철 녹사평역을 자세히 보려면 약간 여유를 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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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오브 라이트(Dance of Light)’. 녹사평역을 내리 쬐는 빛의 향연. |
녹사평역에 도착하면 반대편 가드에 위치한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 여기 다른데? 알아챘다면 당신은 감각이 좋다는 소리다. 서울시 디자인정책팀은 다른 역과 녹사평역의 색감을 달리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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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에 펼쳐진 미술작품. |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보자. 뒤를 보면 또 다른 그림이 있다. 찰나의 순간, 열차를 급히 타는 사람들의 눈 속에도 이 그림은 스며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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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 여기…’ 작품을 보며 잠시 쉴 여유. |
지하 4층. 천장에 매달린 ‘녹사평 여기…’ 라는 작품은 작은 여유를 심어준다. 작품은 코바늘뜨기로 완성된 그물이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듯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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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의 시간들.(정희우 作) |
벽면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등을 상징하는 탁본이 있어, 흘러간 시간을 되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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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백에 앉아 있으면, 이곳이 역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는다. |
왼편을 보면 소나무 숲에 온 듯, ‘숲 갤러리’가 눈에 띈다. 군데군데 빈백에 눕고 싶어진다. 바라만 봐도 편안해지는 곳.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5분 정도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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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오브 라이트(Dance of Light)’. 지하에서 지상으로 가는 느낌을 고스란히 준다. |
이젠 숨을 좀 골라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에서 내리는 역동적인 빛을 그대로 받을 차례니까. 중앙에 놓인 천장은 녹사평역의 가장 정점인 곳이다. ‘댄스 오브 라이트(Dance of Light)’. 이름에서부터 햇빛과 조명이 너울거리는 활력을 뿜는다.
지하 3층은 지하 35m속 식물원이다. 들어오는 자연광을 담은 쉼터에는 푸른 풀 무성한 녹사평(錄莎坪)이 그대로 담겨있다. 통로는 ‘흐름’이라는 비디오 아트가 설치돼 가는 길마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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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만나는 자연과 예술. |
이쯤 되면 주체하기 어렵지 않은가. 지하철을 타러 온 곳에서 접한 자연과 예술. 기술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상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끝없이 상승하는 직선을 만끽하면 ‘반짝 정원’과 만나게 된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여러 전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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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계단을 오르다 뒤를 보면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면 식물을 만나야 한다. 소소한 배려. |
걸어놓은 전시물을 구경하는 미술이 아니다. 그대로 역 전체에 녹아들었다. 섬세한 배려가 함께 했다. 보증금 환급기 옆에 놓인 식물,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으로 옮긴 개찰구. 숨겨진 디자인 씨앗이 퍼져서 만든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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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서울시 시정학교에서 서울시 공공디자인 녹사평역에 대한 설명을 하는 디자인정책 담당자. (오른쪽) 녹사평역 안에서 여러 강의들이 이뤄진다. |
녹사평역 프로젝트에는 시민정원사와 공공미술위원회의 전문가 등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고,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조경과, 전략계획과와 서울교통공사가 협업을 했다.
현재 녹사평역은 용산기지 둘레길 투어의 출발지이자, 생태 가드닝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으며, 지하예술축제나 글쓰기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됐고, 앞으로도 용산공원을 잇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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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중 식물상담소가 진행돼 시민들에게 식물상담을 해줬다. |
이곳, 공유정원에 대한 강연을 했던 이가영 대표(서울가드닝클럽)는 “정원은 사람들의 삶에 작은 쉼표 아닌가. 공공에서 좋은 공유공간을 만들고자 녹사평역에 지하정원을 조성한 시도가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 남대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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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광장이 조성돼 이제 잠시 앉으면서 문화재를 볼 수 있다. |
우수상을 받은 곳 중 남대문 광장을 향했다. 항상 차안에서 스치듯, 흘끔 남대문 광장을 봐와서일까. 찬찬히 쳐다보고 싶었다.
물론 걸어갈 수 있지만, 쉴 공간이 별로 없었던 곳. 이곳이 2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통해 남대문 광장으로 탄생했다. 조망을 고려했고, 특히 보행안전에 신경을 썼다. 또 남대문 지하보도가 우리나라 첫 지하보도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를 크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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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대한민국 남대문 최초의 지하보도라고 표시를 했다. (오른쪽) 오토바이 공간을 마련해 안전을 기했다. |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담당자는 “기존에는 남대문시장이 바로 옆에 위치해 차량, 오토바이 등으로 보행자에게 불편한 점이 있었다”며 “남대문을 가리던 이동형 경찰초소 위치를 바꾸고, 도로 하나를 정리해 남대문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듯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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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안에 잠시 머물러도 좋다. |
공공디자인이 함께 한 일상은 편리함 속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크게 동선을 바꾸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작은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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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찾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만나는 공공디자인. |
어느 장소에서 쉬거나 걸을 때 문화재와 예술이 함께라니, 이건 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마운 선물이다. 애써 돌아다닐 필요 없이 무의식 속에 스며든 예술이라 더 의미 깊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