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아세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2013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 덕분이었습니다. 제3회 한-아세안 그림 공모전에서 덜컥 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미술학원을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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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그림 공모전(왼쪽), 한-아세안 센터에서 친구와 아세안 악기를 체험하는 아이(오른쪽). |
어쨌든 즐거운 나머지 아세안 기념품을 학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시상식 날과 전시하는 내내 한-아세안 센터를 찾아 아세안 장식품을 보고 악기를 치며 놀다 오곤 했습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 제목은 ‘미래를 걷는 한-아세안 달팽이’였는데요. 느릿느릿하지만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자는 의미였을까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직전 문화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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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거주하며 이번 행사에 참여한 아세안인들. |
오는 11월 25~26일에는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고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아세안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뜻하는데요.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타이·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 10개국입니다.
제주도 산지천 하류에서 열린 대한민국 문화의 달 기념식
문화체육관광부는 매월 10월을 문화의 달로 정하고 매년 셋째 주 토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매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데요. 올해는 제주도에서는 문화의 달 및 한·아세안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느영나영, 문화의 달’이랍니다. 이름부터 재미있죠? 그곳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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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고희범 제주시장이 기념 문구를 적은 후, 축하하고 있다. |
문화의 달 주요 행사장을 순회하는 문화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칠성로 상점가였습니다. 90년대 만해도 ‘제주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는데요.
이국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제주도입니다.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제주 문화, 특히 아세안 친구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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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씨. |
“제주도는 바람과 자연이 좋지 않아요?”
베트남에서 온 지 2년 된 아만다(28) 씨는 관광경영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누구보다 한국과 아세안이 더욱 좋은 관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크겠죠. 제주도가 주는 자연을 느껴보라고 강조해 말했습니다.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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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제라미) 씨. |
이번에는 예쁜 딸과 함께 참여한 필리핀 친구가 눈에 띕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온 지 6년 됐다는 제라미 씨는 한국 이름인 이혜린이 편하다고 합니다. 다른 두 문화가 만나 한 가정을 꾸렸듯, 한국과 아세안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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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어 씨. |
“제주도가 공기가 좋고 여유가 있어 좋잖아요.”
13년 전 캄보디아에서 제주로 온 김호어(30) 씨는 한국 성과 캄보디아 이름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벌써 자녀가 셋이라고 웃습니다.
호어 씨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한국 드라마가 유명하다 보니 캄보디아에서는 ‘너 너무 드라마 해’라는 말까지 유행한다고 하는데요. 요즘 캄보디아가 K-팝과 드라마 때문에 한국에 관심이 많아 시장에 가면 20~30% 정도는 한국말이 통한다고 하네요. 앞으로 5년 후에 한국 사람이 캄보디아로 여행을 가면 한국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문화의 달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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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 작가. |
칠성로 빈 공간에서 시민들에게 문화체험을 하고 있던 박준동(35) 작가를 만났습니다.
“제주하면 바다니까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활용해 자유롭게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러다 보면 바다에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는 6월에 처음 제주도에 와보고, 제주의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제주도가 그의 뮤즈가 된 셈인가요? 제주도의 저지 오름에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이파리가 빼곡하게 있는 걸 보고 나뭇잎을 활용한 자연 작품을 만들었고, 노루를 만나 노루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작가야 조명이나 분위기가 멋진 갤러리 안에서 작품을 전시하면 더 멋있으니까 좋겠죠. 그렇지만 갤러리가 아닌 곳에서 하는 전시는 보람을 더 주지 않을까요? 번화했다가 쇠퇴한 이곳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주도청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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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실 주무관. |
“제주도는 해녀와 돌, 바람 등 지켜야 할 문화가 참 많아요. 이런 좋은 문화를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국제문화업무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안영실(제주도청 문화정책과) 주무관은 23년 전 중국에서 왔습니다. 이번 문화의 달에 큰 역할을 해준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글로벌 청년문화포럼 참가자들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원도심에 도시재생이자 문화예술로 변모하도록 큰 역할을 한 UCLG 글로벌 청년문화포럼은 지난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협업 프로젝트를 추진, 국내 외 멘토-멘티 60명이 3개 팀을 이루어 3개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번 문화의 달에 어떤 행사들이 펼쳐졌을까요? 잠깐씩 맛보기로 소개해 드릴게요.
느영나영 달빛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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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G 글로벌 청년문화포럼에서 온 해외 작가들이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다. |
너랑 나랑이란 의미를 지닌 느영나영 달빛 놀이터가 제주 칠성로 상가 내 빈 점포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적용해 운영됐습니다. 칠성로 상가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문화행사를 하는 건 처음이랍니다.
캐리커처 그리기를 하며 즐거움을 던져준 건 UCLG 글로벌 청년문화포럼입니다. 벨기에, 말레이시아, 홍콩 등 여러 나라 작가들이 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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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공연. |
중간에는 달빛 놀이터 거리공연이 열려 관람객들과 제주를 찾은 해외 및 국내 아티스트가 함께 노래하면서 마임을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느영나영 문화 놀이터
칠성로 아케이드를 따라 제주의 특징인 바람을 적극 활용하며 문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의미로 세 구간에 걸쳐 작품이 설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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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대한민국 문화의 달 행사가 열린 칠성로 행사장 1구간, 2구간, 3구간. |
전문 예술가로 구성된 1구간, 시민 아이디어를 구현한 2구간, 제주 문화도시 조성 결과물의 3구간인데요. 각국 음악과 함께 춤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문화의 달 기념식과 문화공연
산지천은 현재 리노베이션 된 거리로 쾌적한 산책이 가능하며 시장과 항구를 연결하는 거리입니다. 오후 6시 30분부터 문화의 달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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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 기념행사와 공연이 열린 산지천. |
배우 문소리 씨와 김지환 씨의 사회로 제주도를 상징하는 여인과 물, 불의 섬 및 공존, 어울림의 섬 문화공연이 펼쳐져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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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 기념행사. |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기념축사와 표창 수여 후 하이라이트인 ‘문화의 빛을 테우에 실어’가 진행됐습니다. 테우는 해초, 해치 등을 사용하던 통나무배라는데요. 등이 떠내려 오는 하천에서 작은 배를 산지천 하류에 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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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행사 중 관계자들이 등이 내려오는 하천에 배를 띄우고 있다. |
시민들에게 스티로폼으로 만든 등을 나눠줘 객석에서도 빛이 아른아른했는데요. 문화의 달은 하늘과 무대 위에, 하천에, 그리고 함께한 시민들의 손안에 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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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하늘과 무대와 물, 객석에서 빛났다. |
뒤이어 불꽃이 터지자 모두 함성을 질렀습니다. 물과 불, 거기에 달빛이 빛난 제주에서의 밤이 시나브로 흘러갔습니다. 그렇지만 흐르는 달빛으로 마무리한 행사가 아쉽지 않은 건, 한·아세안으로 이어져나갈 걸 알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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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이 터지자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
2013년 아이 그림에서 본 달팽이는 한국과 아세안을 함께 짊어지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동안 한·아세안은 꾸준히 함께하며 오늘을 만든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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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린 미래를 걷는 한-아세안 달팽이. |
11월에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아세안의 우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