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오른팔에 난 종기가 심상찮아 보였다. 며칠 전 아프다기에 대수롭지 않게 약을 발라줬던 종기였다. 이래저래 검색을 해보니 수술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황급히 동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간호사는 예약이 가득 차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에서야 진료가 가능할 거 같다고 말했다. 나온 김에 근처에서 밥까지 사먹으니 하루가 다 지난 듯했다. 맥이 풀렸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상급병원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줬다. 진료의뢰서를 받아 나오면서 이 종이 한 장에 시간이나 비용이 만만찮구나 싶었다. 워낙 병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는 이제 진짜로 수술을 받아야 할 생각에 두 번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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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받기 위해 들른 동네 병원. |
둘다 힘은 빠졌지만 본격적으로 상급병원에 예약전화를 걸었다. 진료의뢰서 기한은 1주일인데 가장 빠른 예약 날짜는 열흘 뒤였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7월 1일부터 15세 이하는 진료의뢰서 없이 2차 병원에 올 수 있어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으로 그렇게 고달픈 하루는 끝이라는 기대가 심신으로 확 전해졌다. 아프고 지친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상처도, 소소한 도움도 모두 크게 들리는 법 아닐까. 왠지 그 종기 수술은 처음보다 간단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이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수술하는 팔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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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만큼 속상하고 억울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
가을 낙엽이 물들 즈음, 뜬금없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지인으로부터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다. 간간히 걸리는 감기로 병원을 다니던 내게 ‘아직 젊은(?) 사람이 왜 아프냐’고 할 만큼 병원과는 거리가 먼 지인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했고,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았다는 그의 SNS 글에 좀 더 괴로웠다. 그러기에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었지만, 서서히 그는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했다. 폐암 국가검진을 통해 빨리 알지 못했으면 큰일날 거 아니었겠냐고 반문했다. 지지 않도록 열심히 치료받겠다는 그의 다짐을 들으니, 도리어 빨리 알게 된 사실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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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보면 안다. 그동안 무엇에 왜 그리 아둥바둥거렸는지. |
공교롭게도 어머니마저 가벼운 수술을 받아야했다. 잘 걷지 못하시니 화장실이 가깝고 침대 간격이 비교적 넓은 2인실을 원했으나, 솔직히 비용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돈 걱정이라니 싶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보험 혜택이 적용돼 2~3인실 입원비가 40%나 내려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는 편안한 마음으로 입원해 계실 수 있었고 경과 역시 좋았다.
올해 의료 정책은 다양하고 폭넓게 변화했다. 이중 주변에서 혜택을 받은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살펴봤다. 우선 7월 1일부터 진료의뢰서 없이도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 연령이 8세 미만에서 15세 이하로 확대됐고, 야간과 공휴일에 한정하지 않도록 개선됐다.
또한 8월 5일부터 만 54세~74세 장기흡연자를 대상으로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한 폐암 국가검진을 실시했다. 현재 1인당 약 11만원인 검진 비용 중 90%를 건강보험으로 지급해 1만1000원으로 검진받을 수 있게 됐다는 건 상당히 반가운 소리다. 또한 병원급과 한방병원의 2~3인실 보험 적용으로 의료비 부담이 평균 4만원 이상 경감됐다는 점에서는 실로 톡톡히 덕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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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대기실. 모든 환자와 보호자의 지친 표정에 빛을 주고 싶다. |
사실 의료 정책은 이 뿐만 아니다. MRI·초음파의 경우 하복부·신장(2019.2), 전립선(2019.9), 흉부·복부(2019.11)에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1세 미만 아동과 임산부 의료비 본인부담 경감(2019.1), 난임치료시술 건강보험 적용기준 확대(2019.7), 장애인 보장구 및 요양비 급여기준 개선(2019.7), 12세 이하 충치치료 건강보험 적용(2019.1) 및 임산부 인플루엔자 무료 실시(2019.10) 등 여러 정책이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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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히 쓰고 기다리고 하는 것도 아플 때는 더 길게 느껴진다. |
해마다 반갑지 않지만 찾아오는 소식들. 2019년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들려온 힘겹던 상황이 달라진 의료 정책으로 좀 더 경감이 된 듯하다. 2019년 달라진 정책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가까이 다가온 의료 정책은 그 고달픈 마음을 직접 느껴서 더 남았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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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아픈 사람들이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달리 보면 아픔이 있었기에 의료복지를 좀 더 크게 깨달을 수 있었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모쪼록 한 해가 가면서 아픔도 함께 가길 바란다. 이 세상 모든 아픈 사람들이 이겨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