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방문객 5000명, 11만권의 장서, 떠들어도 되는 ‘역발상 도서관’.
이곳은 폐교가 된 옛 구암중학교 체육관을 활용해 개관 1년 7개월 만에 방문객이 300만명에 이르렀고, 방학 때면 가족의 북캉스 명소로 전국에서도 핫플레이스 도서관으로 꼽히기도 했다. 바로 경남 창원에 위치한 ‘지혜의 바다’ 1호점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지난 12월 11일 경남 김해에 ‘지혜의 바다’ 2호점도 개관했다. 지난 3월 폐교된 옛 주촌초등학교에 마련된 지혜의 바다 2호점은 중소기업이 많은 김해의 특징까지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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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폐교된 옛 주촌초등학교에 마련된 지혜의 바다 2호점은 중소기업이 많은 김해의 특징까지 담아냈다. |
지혜의 바다 2호점은 연면적 3523㎡, 지혜동 2층과 바다동 3층 규모로 책, 문화, 예술, 창작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독서문화공간이다. 경남교육청 소속 25개 도서관에서 5만권의 장서를 기증받고 4만7000권의 신간 도서를 구입해 현재 9만7000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까지 15만권의 도서를 확충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공장 지대 골칫거리 폐교가 어떻게 복합독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걸까. 박인정 경남교육청 창의인재과 도서관독서교육담당 주무관은 “주촌면 일대는 골든루트 산업단지를 비롯해 1000여개의 중소기업 단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공장 말고는 문화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다”라며 “기존의 도서관이 도심이나 교통이 좋은 곳에 위치했다면 아무도 찾지 않는 공장 지대에 역발상으로 찾아가는 도서관을 만들어 문화적 감성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개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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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바다 2호점은 연면적 3523㎡, 지혜동 2층과 바다동 3층 규모로 책, 문화, 예술, 창작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독서문화공간이다. |
지혜의 바다 1호점이 도시재생 역할로 폐교를 활용했다면 2호점은 척박한 공장 지대에 문화적으로 활력소를 제공하기 위해 폐교를 활용했다. 직접 현장에 찾아가봤다.
먼저 옛 학교동을 리모델링한 지혜동은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을 비롯해 지역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홍보하는 기업 사랑방이 위치해 있어 중소기업이 많은 김해의 특징을 살린 공간이었다. 지역 사회에 녹아드는 공공도서관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기업 사랑방은 공단과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근로자와 기업가들의 휴식 공간이자 기업 특강, 회의실, 새내기 청년 근로자를 위한 전문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또한, 김해중소기업비즈니스센터와 연계해 휴롬, 영케미컬 등 인근 지역에 위치한 9개 제조업체의 추천을 받은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런가하면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지역 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재료들을 토대로 창작물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마련됐다. 염색아트, 에코백, 도자기, 머그컵 등 평생교육 프로그램 일환으로 지역민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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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에 녹아드는 공공도서관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곳이다. |
바다동의 1층은 급식소와 주차장으로 이용하던 학교 시설을 매력적인 개방형 독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레고방, 나눔방, 공룡방, 등대방, 동화방, 별빛마루 등 즐거운 책 놀이터가 펼쳐졌다.
막힌 벽이나 문 없이 사방이 탁 트인 공간으로 설계해 입구부터 접근성을 높였다. 여기에 밝은 채광과 딱딱한 책걸상 대신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소파가 배치돼 있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졌다. 책을 매개로 척박했던 공장 지대가 사람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박인정 주무관은 “특히 1층 개방형 독서 공간은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문이 없는 점이 특징”이라며 “아이와 책을 읽으면 ‘조용히 해주세요!’ 라고 핀잔을 주는 곳이 아니라 어느 정도 소음을 인정하는 공간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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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개방형 독서 공간으로 탈바꿈한 바다동 1층에서 어린이들이 누워 책을 읽고 있다. |
“추운 놀이터 대신 매일 이곳을 찾아요.”
지혜의 바다 2호점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레고방’이다. 주말에는 시간 제한이 있지만 평일에는 시간 제한이 없다보니 방과 후에 레고 블록을 이용하려는 어린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자녀와 함께 3일 연속 이곳을 찾고 있다는 배수지(39) 씨는 다락방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집 근처 작은 도서관만 다니다가 여기 와 보니 분위기나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며 “무엇보다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자유롭게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다. 아이 데리고 딱히 갈 데 없는 추운 겨울날 나들이 가듯 자주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책 카트를 끌며 입구에 들어선 주부 박 모(56) 씨는 “세련된 외관과 다양한 책 종류에 어디부터 구경해야 할지 흥분된다”며 “겉은 학교 건물 같지만 안에 들어와보니 서울 코엑스 도서관 못지않은 마법 같은 도서관이 펼쳐져 10대 문학소녀로 돌아간 것 같은 설렘을 준다”고 인증샷을 찍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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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바다 2호점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레고방’이다. |
과거 학교 강당으로 사용되던 2~3층은 어떻게 변했을까. 공연, 강연, 음악회, 독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북페라형 독서 공간으로 바뀌었으며, 지혜마루와 리딩존 등이 조성됐다. 무엇보다 천장이 닿을 듯한 10미터 높이의 서가에 10만여권의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어 탄성을 자아냈다. 책 전시 자체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신개념 독서문화공간이었다.
2층 중앙 무대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앞으로는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빈백 형태의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커피숍에서도 볼 법한 기다란 책상과 의자가 배치돼 노트북 이용자들을 맞이했다. 그 뒤로는 만화방 같은 다락방 구조로 미니 계단을 타고 올라가 눕고 엎드려 책을 읽는 학생들도 보였다.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니 알록달록 의자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독서를 할 수 있도록 1인 의자 10대가 배치돼 있었다. 뒤편에는 캡슐 형태의 개인 칸막이 공간이 마련돼 일등석 비행기 의자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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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폐교된 주촌초등학교 재학생이 지혜의 바다에 보내는 편지가 복도에 전시돼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
올해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김민성(19) 군은 “그동안 도서관은 조용한 공간으로 인식돼 시험기간에만 찾았다”며 “터치스크린으로 전자신문도 읽고 한쪽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하고 누워서 책을 읽는 공간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거실 같은 도서관’으로 익숙해져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교육청은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호응해 앞으로 지혜의 바다 3호점, 4호점 등을 꾸준하게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김해 지혜의 바다는 독서·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창의적 공간은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여 공장 지대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온가족이 함께 찾는 독서문화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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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터 높이의 서가에 10만여권의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어 탄성을 자아냈다. |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지혜의 바다 2호점을 찾아보니 이제는 도서관이 공부방 역할을 하던 시대는 지난 듯보였다. 책만 읽는 정적인 공간을 넘어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놀기도 하고 책 마루 중앙무대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돼 최신 기술과 문화, 지식을 습득하는 핫플레이스로서 복합독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지난해보다 9.3% 늘어난 약 6조4700억원 예산을 통해 국민 일상 속 문화생활을 더욱 가깝고 풍성하게 만들 예정이다. 일상생활 속 SOC(사회간접자본) 부문에서 공공도서관 건립 지원 예산이 3배 가까이 늘어나 일상에서 쉽게 여가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