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류장은 안중근 활동터입니다.”
서울에서 독립운동가 활동터를 지나는 시내버스를 타면 듣게 되는 안내 방송이다. 서울에는 인사동 들머리에 있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를 비롯해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이봉창, 여운형,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터가 많다. 그 터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붙여 버스정류장 이름을 만들었다. 3.1절을 앞두고 버스로 독립운동가 활동터 몇 곳을 가봤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울역이다. 서울역에 갈 때마다 구 역사 앞에 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을 본다. 구 서울역사가 강 의사의 의거터다. 동상 밑에는 강우규 의사의 항일 의거지 터임을 알리는 설명이 있다. 읽어보니 1919년 9월 2일 사이토 신임 일본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던져 항일 의거를 일으킨 곳(당시 남대문역)이라고 쓰여 있다. 강우규 의사 동상 오른손에는 폭탄이 쥐어져있다. 얼굴은 긴장된 듯하면서도 결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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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역사 앞에는 강우규 의사 동상과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시가 있다. |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豈無感想)’
강우규 의사는 폭탄을 던졌지만 일본 총독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체포된 후 일제의 사형선고로 1920년 11월 29일 순국했다. 위 시는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강우규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시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강우규 의사의 기개가 느껴진다.
다음으로 가본 곳은 삼일독립선언유적지다. 이곳은 본래 중종 때 순화공주의 궁터였다. 을사, 경술 두 조약 때 매국대신들의 모의처로도 사용되었는데, 3.1운동 때에는 그 조약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으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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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다. |
삼일독립선언유적비 아래 자세한 설명이 있다. 1919년 3월 1일 정오, 탑골공원에서 터진 민족의 절규와 함께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지금의 태화빌딩, 인사동 194번지 일대) 명월관지점에서 대한독립을 알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동시에 미리 서명해두었던 선언서를 발표했다. 탑골공원 독립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은 물론 해외까지 퍼졌다.
태화관이 없어지고 우뚝 솟은 빌딩 옆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비와 함께 지난해 세운 ‘3.1운동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비는 지난해 12월 23일 세워졌다. 인사동 초입이 3.1독립운동유적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인사동은 자주 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주변의 독립운동 장소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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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SM면세점 앞이 민영환의 자결터다. 그가 쓴 유서가 적혀 있다. |
태화빌딩 삼일독립선언유적지를 본 후 바로 옆에 있는 SM면세점 건물로 갔다. 그 앞에는 충정공 민영환 어른께서 자결하신 옛터가 있다. 칼로 자결했기 때문에 칼과 그의 주검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한문으로 쓴 유서가 있다. 유서 내용 중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와 비슷한 내용도 있다.
"夫要生者는 必死하고 期死者는 得生이니, 諸公은 豈不諒只아"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은 어찌 헤아리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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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각역 8번 출구 앞에 김상옥 의거터임을 알리는 입간판이다. |
이제 종각역으로 가본다. 8번 출구 앞에 입간판 형태로 김상옥(1890~1923) 의거터라고 표시돼 있다. 2016년 4월에 세워졌다. 안내문을 보니 김상옥은 3.1운동에 참여한 뒤 ‘의열단’에 가입한다. 1922년 겨울 김상옥은 의열단장 김원봉이 준비한 폭탄과 권총을 들고 서울에 잠입한다.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일본 경찰과 격전을 벌인다. 그러다 그 달 22일 일본 군경 1000여명과 3시간 넘게 대치하다 효제동에서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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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열사의 동상이다.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김상옥 열사의 동상이 있다. 동상 앞에는 김상옥 열사의 독립운동 기록이 자세히 적혀있다. 적의 심장부(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떼 지은 왜경과 싸우고 또 싸우다 최후의 일발로 자결하여 순국했다고. 김상옥 열사는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1대 1000의 대결자다. 마지막까지 싸우다 1발 남은 총탄으로 장렬히 산화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서 있는 김상옥 열사가 얼마나 멋진 독립투사였는지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남대문시장 앞은 이회영 활동터다. 남대문시장이었던 버스정류장 이름이 ‘남대문시장 앞, 이회영 활동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류장에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사진과 함께 그의 공적을 적어 놨다. 이회영(1867~1932)은 무장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운영했다. 남대문시장 옆 상동교회에서 진덕기, 이동녕, 이동휘, 안창호, 김구, 김고식, 이시영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조선 최고 갑부였던 이회영과 6형제는 모든 재산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목숨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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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이었던 버스정류장 이름이 ‘남대문시장 앞, 이회영 활동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류장에는 이회영 사진과 그의 공적이 적혀있다. |
남대문시장 옆 상동교회는 그냥 보통 교회가 아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1988년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스크랜턴에 의해 세워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구, 이준 등의 독립투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1907년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교회 청년회장이었던 이준에 의해 헤이그밀사 사건 모의가 이뤄졌다. 또한 비밀 독립투쟁단체인 신민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상동교회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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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비다. |
2018년 인기리에 방송됐던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독립운동을 하던 의병들의 이야기였다. 신분을 막론하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오직 조국의 독립이었다. 일제에 맞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서울 곳곳에서는 드라마 속 장면보다 뜨거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의거 현장을 찾아볼 수 있다. 어디 서울뿐이겠는가! 전국에 독립운동가 활동터나 기념관이 많다. 올해가 3.1운동 101주년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겨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