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우연히 알고리즘에 뜬 영상을 봤다.
1980~90년대 명절 풍경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서울역 앞에는 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 고향으로 떠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나는 사실 기차역으로서의 서울역을 이용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서울역은 내게 특별한 공간이다.
경의선을 타고 다니며 종종 그곳을 지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근대 건축을 좋아하는 나에게 서울역은 아름다움과 기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은 옛 서울역사. 현재는 문화역서울284로 운영 중이다.
붉은 벽돌과 돔 지붕, 좌우대칭의 석조 구조는 한 시대의 시간과 기술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멈춰 있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쓰이고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구 서울역사 준공 10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를 꼭 보고 싶었다.
기차역으로 사용되었던 옛 서울역을 떠올리며, 매표소로 꾸며진 안내처.
이번 전시는 9월 30일, 정확히 100년 전 서울역이 처음 준공된 날에 맞춰 개막했다.
문화역서울284와 커넥트플레이스 서울역점 야외 공간을 모두 활용한 대규모 기획으로, 서울역의 과거·현재·미래를 세 장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는 중앙홀. 권민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의 시작은 중앙홀이다.
한 세기 동안 수많은 이들의 이별과 만남, 출발과 귀환이 교차했던 이곳은 서울의 시간을 품은 가장 상징적인 장소였다.
르네상스 양식을 본뜬 좌우대칭 구조, 반원형 천장, 좌우 각각 여섯 개의 기둥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경성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서울역의 위용을 실감했다.
3등 대합실, 서울역의 역사를 재해석한 현대 작품 전시 중.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엮어내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전시가 펼쳐진다.
이곳, 3등 대합실은 100년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단조로운 콘크리트 기둥과 벽면 타일은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의 산물이었다.
1, 2등 대합실보다 단조로운 기둥과 장식이 특징이다.
3등 대합실에는 서울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사진, 사료, 그리고 현대 작가들의 설치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6·25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 '경계'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DMZ의 돌 위에 24K 금박을 입힌 작품은 폐허 위에서 피어난 희망처럼 빛나고 있었다.
서울과 서울역의 근현대를 담은 사진과 영상, 소장품.
공사 중인 경성역, 1924년.
서울역 전경, 1973년.
원래 승강장으로 향하던 통로, 지금은 실내 전시장으로 조성됐다.
복도를 따라가면 서울의 옛 모습과 철도 도시로 변모한 서울의 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이어진다.
원래 이 복도는 외부 통행로였으나, 구조물을 세워 실내 전시 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다.
서울역과 주변 풍경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며, 근대 도시의 성장사를 한 장의 필름처럼 펼쳐 놓은 듯했다.
남성 전용이던 1, 2등 대합실. 한층 화려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이어지는 기억'이라는 두 번째 주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구성이다.
1·2등 대합실은 과거 남성 대기실이었던 공간으로, 벽면에 새겨진 이오니아 양식 장식과 꽃무늬 조명이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시 대합실에서 판매되던 맥주와 커피 등을 현대 브랜드와 협업해 재현했는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시도였다.
1, 2등석을 구매한 여성 승객을 위한 부인 대합실. 당시 최첨단 건물에도 남아 있는 유교의 흔적이다.
최첨단 기술이 사용된 경성역에는 1. 2등 좌석표를 구매한 여성 승객을 위한 부인대합실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곳에 모여 앉았다고 한다.
나무로 마감된 벽면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부인대합실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오아시스레코드와 박민준 프로듀서가 서울역과 서울역을 주제로 제작한 음악이 흘렀다.
대리석 벽난로와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벽지가 어우러진 귀빈실.
귀빈실은 단연 화려했다.
대리석 벽난로, 샹들리에 조명, 대형 거울, 그리고 덕혜옹주가 일본 유학길에 오를 때 사용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긴 창문에서 쏟아지는 채광이 고급스러운 벽지와 어우러지며 공간을 더욱 넓게 보이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가구 브랜드가 옛 서울역만을 위해 제작한 가구를 배치해, 근대 인테리어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최초의 양식 레스토랑 '그릴'이 있던 곳.
최대 200명을 수용한 고급 양식당. 당시 코스요리는 현재 15만원에 상당하는 귀한 메뉴였다.
2층으로 올라서면 '읽어내는 상상' 이라는 마지막 챕터가 펼쳐진다.
메인 홀인 '그릴'은 1920년대 서울역 최초의 양식 레스토랑이었던 공간으로, 한때 최대 200명까지 손님을 맞이하던 넓은 홀이었다.
지금은 미래 서울역을 상상한 다섯 작가의 글과 다섯 서점이 큐레이션 한 100여 권의 서적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이 확장되는 서가로 꾸며졌다.
지하 주방의 음식을 승강기로 올리던 그릴 준비실.
해방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
그 옆 '그릴 준비실'에는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가 공개되어, 해방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은 역사적 사건을 환기한다.
그릴 준비실이었던 이곳에는 국내 최초의 음식 운반 전용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기술·서비스·문화가 한 건물 안에서 교차하던 서울역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앙홀, 플랫폼을 바라보면서 식사하던 소식당 자리.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소식당'은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길목에 자리한다.
돔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세 차례 교체를 거치며 시대의 상징을 품어왔다.
6·25 전쟁 이후 복구된 태극 문양과 봉황은 재건의 의지를, 2011년 새롭게 복원된 강강술래 문양은 역동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었다.
지하 1층 식당 사진. 조리된 음식이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KTX와 이어지는 통로. 예전처럼 이곳에서 출발한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수 있을까?
지하 1층은 이번에 특별 개방된 공간으로, 구 서울역사와 신 KTX 역사를 잇는 연결 통로가 있다.
나는 평소 경의선을 타고 다니며 서울역에서 환승할 때마다 플랫폼이 멀어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 통로가 상시 개방된다면 시민들에게 반가운 변화가 될 것이다.
단순한 편의를 넘어, 과거와 현재, 남북과 유라시아를 잇는 '연결의 상징'으로 자리할 수도 있다.
2층 복원실, 옛 이발소 자리.
문화유산의 복원은 다른 보존 방식보다 섬세한 판단을 요구한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지, 상충하는 자료 중 무엇을 채택할지, 현대의 안전·편의·전시 조건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등 풀어야 할 질문이 많다.
선택의 결과가 곧 건물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인 만큼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원형을 최대한 존중하고 덧붙이는 해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쪽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화장실이 있던 흔적인 배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서울역 복원 현장을 직접 보니, 예전에 메모해 두었던 안창모 교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서울역 복원을 이끌었던 그는 "조선시대 건축물처럼 근대 이전의 건축물은 이미 가치평가가 끝났지만, 근대 건축물은 다르다. 지금도 가치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이 반영되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서울역의 지나간 80년의 역사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다양한 삶도 이 건물에 담겨야 한다는 그 말이, 실제로 복원된 공간을 걸을 때 새삼 떠올랐다.
옛 서울역사에서 사용된 장식 요소들도 복원실에서 볼 수 있다.
서울역의 100년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도시의 기억이다.
시대의 변화를 품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생동하는 공간이다.
100년의 시간을 품은 이 건축물을 걸으며, 나는 한 세기 전의 여행자처럼 다음 100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또 다른 100년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시간 위에 다시 쌓여갈 서울역의 풍경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