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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의 섬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소록도'

소록도, 통제의 공간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전환 노력
지난 6월 25일 대통령 방문 '편견과 고통 없는 소록도 희망' 메시지

2026.01.06 정책기자단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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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가 보여주는 국가 정책과 인권의 과제

전라남도 고흥반도 앞바다에 위치한 소록도는 오랫동안 '한센병 환자의 섬'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이 섬의 역사는 질병 관리의 기록이라기보다, 국가 권력이 어떻게 한 집단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통제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 인권사의 어두운 단면에 가깝다.

전라남도 고흥반도 앞바다에 위치한 소록도 전경. 1916년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공간으로 지정
전라남도 고흥반도 앞바다에 위치한 소록도 전경. 1916년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공간으로 지정.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 수용지로 지정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격리한다는 명목 아래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했다. 이후 이 공간은 치료보다 통제가 우선되는 장소로 기능했다. 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이송됐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삶을 강요받았다.

소록도 내 옛 병동 건물. 치료를 명분으로 운영됐지만, 실제로는 감시와 규율이 우선된 통제의 공간이었다.
소록도 내 옛 병동 건물. 치료를 명분으로 운영됐지만, 실제로는 감시와 규율이 우선된 통제의 공간이었다.

일제는 한센병을 '전염병'이자 '사회 불안 요소'로 규정했다. 그 결과 소록도는 의료 공간이 아니라 감시와 규율의 공간으로 설계됐다. 외출과 이동은 제한됐고, 노동이 일상화됐으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단종 수술과 같은 강제적 의료 행위는 개인의 삶을 돌이킬 수 없게 훼손했다. 이 시기 소록도는 치료의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삭제된 공간이었다.

등록문화유산인 그 때의 감금실, 방안에는 단종당한 수감자의 절규의 시가 걸려있다.
등록문화유산인 그 때의 감금실, 방안에는 단종당한 수감자의 절규의 시가 걸려있다.

해방 이후에도 상황은 곧바로 개선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소록도의 격리 정책은 상당 기간 유지됐다. 국가 운영 체계가 바뀌었음에도, 한센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정책의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는 여전히 과학적 이해보다 공포와 낙인에 지배돼 있었고, 소록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해야 할 섬으로 남아 있었다. 이 시기 한센인들은 치료가 가능해졌음에도 자유롭게 사회로 복귀할 수 없었다. 

섬을 떠나는 일은 허락이 필요했고, 가족과의 재회는 극히 제한됐다. 결혼과 출산 역시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됐다. 질병은 개인의 몸에 있었지만, 통제는 삶 전체를 겨냥했다. 당시 수감자의 처절한 삶의 단면을 전하는 짧은 글이 지금도 그 공간 한쪽에 걸려 있다. 치료의 이름으로 격리되었던 이들이 남긴 시는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말로 전해지지 못한 삶의 기록에 가깝다. 가족과의 단절, 노동과 통제의 일상, 그리고 되돌릴 수 없었던 삶의 조건들이 몇 줄의 문장 속에 압축돼 있다.

당시 쓰여진 시는 읽히기 위해 남겨진 것이 아니라,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흔적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문장을 따라가게 된다. 순간, 소록도는 과거의 수용지가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낸 침묵의 공간으로 다시 인식된다. 

수탄장 자리에 서있는 안내판.
수탄장 자리에 서있는 안내판.

수탄장(愁嘆)은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지역이었다. 병원에서는 감염을 우려해 환자 자녀들을 직원동 지대에 있는 보육소에서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동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지역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허용하였다.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이 장소를 환자들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해방 이후에도 한센인들의 일상은 국가 정책에 의해 장기간 제한됐다.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이 겪은 고통은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 정책이 삶 전반을 통제한 구조적 인권침해의 결과였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고, 출산을 막기 위한 강제 단종과 의료 조치는 질병 치료가 아닌 사회적 격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는 한 개인의 생애 가능성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차단한 결정이었다.

노동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치료와 재활이라는 명목 아래 한센인들은 섬의 유지에 필요한 농사와 건설, 관리 노동에 동원됐다. 선택권과 정당한 보상은 보장되지 않았고, 노동은 치료의 일부로 포장되며 구조화됐다. 소록도는 의료 공간이자 수용 공간이면서, 동시에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폐쇄적 시스템이었다.

이 모든 정책의 전제는 강제 격리였다. 소록도는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한센인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입도는 강제적이었고, 외부와의 접촉과 이동은 엄격히 통제됐다. 치료 기술이 발전한 이후에도 격리는 유지됐으며, 공포와 편견은 제도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 결과 소록도는 보호의 장소가 아니라, 국가가 불편한 존재를 보이지 않게 관리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소록도의 잔혹사는 특정 사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의료, 행정, 치안, 복지라는 이름의 제도가 통제의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한센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고착됐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책임을 분산시켰고, 사회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현장을 직접 마주하면 이러한 역사는 흘러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다. 과거 병동과 생활시설의 배치, 작업장과 수용 공간의 흔적, 기록관에 남아 있는 문서들은 소록도가 단순한 섬이 아니라 '제도화된 격리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공간 자체가 증언이 되는 셈이다.

늦게나마 변화는 시작됐다. 정부는 과거의 강제 격리와 인권 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보상과 지원 정책을 추진해 왔다. 소록도는 점차 치료의 공간을 넘어 기억과 성찰의 장소로 전환되고 있다. 기념관 조성, 기록 보존, 치유 프로그램은 과거를 지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지난 6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국립 소록도병원을 방문해 병원 관계자들과 한센인 원생 자치회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날 소록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에게 자행된 강제격리와 출산금지 등 아픈 역사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전했다.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소록도의 역사는 여전히 많은 시민에게 낯설다. 소록도의 역사는 한 집단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공포와 효율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쉽게 유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늦었지만 책임을 인식하고 회복을 시도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말해준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소록도를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의 소록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격리의 섬으로 만들어졌던 이곳이 기억과 인권의 장소로 남을 수 있을지는, 우리가 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전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소록도의 잔혹사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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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자단 정재영 사진
정책기자단|정재영cndu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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