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관람객이 몰리고 전시는 연일 화제를 몰며 문화상품(뮷즈)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히 조용히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섰다. 이러한 열기 뒤편에는 관람객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박물관이 존재한다. 전시실보다 먼저 움직이고 작품보다 오래 남아야 하는 공간, 바로 수장고와 보존과학의 세계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개관은 문화유산 보존을 국가 운영의 공공 시스템으로 끌어올린 전환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는 '보이지 않는 박물관'을 전시장 한복판으로 끌어올린 전시다. 전시 입구 패널은 "박물관은 수천 년을 이어 온 인류 유산이 오늘날 우리와 만나는 공간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며, 만남의 뒤편에서 시간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보존과학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늘 곁에 있었지만, 쉽게 의식하지 못했던 보존과학의 세계를 관람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구성했다.
당시 사무실을 재현한 모습
◆ 낡은 책상과 몇 개의 도구, 1976년에서 시작된 '국가의 보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의 출발점은 1976년이다. 낡은 책상과 도구뿐인 작은 사무실에서 깨진 토기와 부러진 금동불상 조각을 붙이려 이쑤시개로 이물질을 제거하던 시절이었다. 환경은 열악했으나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 사명감만큼은 굳건했다.
이러한 노력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구와 학문 체계를 갖춘 보존과학센터로 이어졌다는 설명은 보존과학이 단순 기술을 넘어 국가적 역량의 결집임을 보여준다.
이런 기록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보존과학을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를 더 떠올렸다. 보존과학 전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의 역사는 한 기관의 역사를 넘어, 우리나라 박물관 보존과학의 표준과 방향을 함께 만들어온 역사에 가깝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그간의 축적이 이제 전시로 설명되고 대중에게 공유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초분광 조사와 성분분석(XRF)을 진행해 원래 색과 그림을 재현한 개마총 벽화편
◆ 빛으로 보고 단층으로 읽고 스펙트럼으로 기록하는 과학
전시의 두 번째 장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빛으로 보는 보존과학의 세계', 보존과학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은 우리가 눈으로 감지하는 가시광선만이 아니다. 라디오파에서 마이크로파,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까지 파장 길이에 따라 영역이 넓어진다. 보존과학은 이 빛들을 목적에 맞게 활용해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분석한다.
빛의 도구들은 유물을 해치지 않고도 정보를 읽어내며, 보존과학의 판단을 정밀하게 만든다.
예컨대 엑스선(X-ray)은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자외선은 형광 반응으로 수리·보수 흔적을 찾으며, 적외선은 탄소 기반 안료가 적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맨눈으로 보이지 않던 흔적을 드러낸다.
여기에 더해 이번 전시는 '초분광 영상기술'도 소개한다. 가시광선과 근적외선 영역에서 물질이 빛에 반응해 나타내는 고유 스펙트럼 정보를 영상으로 식별하는 기술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까지 감지해 사용된 재료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문화유산을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CT 조사로 내부를 확인해 복장 유물을 수습·보존한 사례
◆ CT 조사가 유물 안의 세계를 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CT 조사에서 보존 처리까지'였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은 일반 촬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내부 단층 영상을 보여준다. 전시에 소개된 사례 중 하나는 목조여래좌상 보존 과정이다. CT 조사를 통해 보존 처리가 필요한 부분과 내부 구조를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불상 내부에 봉안된 복장 유물(경전류, 직물류 등)이 확인·수습됐다고 한다.
단순히 손상 정도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내부에 숨겨진 유물까지 밝혀낸 것이다. 보존과학이 유물을 오래 남기는 기술에 그치지 않고, 유물 속 삶의 흔적과 지혜를 밝혀내는 과학이라는 설명이 이 대목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식리총 금동신발 디지털 복원 전후
◆ '디지털 복원'은 대체가 아니라 확장이다
전시의 마지막 장은 '보존과학이 열어가는 새로운 미래'로 이어진다. 여기서 핵심은 '디지털 보존과학 시스템'이다. 지난 50여 년간 쌓아온 보존 처리 기술, 3D 스캔, 고해상도 이미지와 분석 자료를 디지털로 전환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보존과학의 미래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전시에는 식리총 금동신발의 디지털 복원 사례도 나온다.
식리총 금동신발 재현물
그동안 상태가 좋은 화려한 바닥판 위주로만 전시됐던 '금동신발'을 3D 스캔과 CT 자료를 기반으로 디지털 복원하여, 보이지 않는 면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 구현해 냈다. 여기서 복원은 유물에 직접 손대는 물리적 복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복원은 보존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존과학×디지털, 보존의 미래를 준비하다.
◆ '모두가 함께하는 박물관'이라면 보존에 대해서도 알아야
국립중앙박물관은 2026년 비전 '모두가 함께하는 박물관'을 공표하며, 관람 경험 혁신, 자원의 가치 확장, 포용을 이야기한다. 보존과학 전시는 그 전략을 전시로 구현한 사례로 읽힌다. 관람객이 전시품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유물이 어떻게 보존되고, 과학으로 기록되며, 무엇을 더 밝혀낼 수 있는지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센터가 축적된 기술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허브로 성장해, 소중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건네는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
전시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박물관의 인기는 전시장의 조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뒤편에서 유물 하나를 지키기 위해 축적된 기술, 기록, 판단,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뒷받침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개관 소식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유산이 내일도, 그다음 세대에도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만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박물관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