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순간, 이전 여행과는 다른 피로감이 몰려왔다. 밀라노 올림픽 취재를 위해 2월 초 출국하여 현지에 체류하며 대회를 즐겼고, 마침 유럽까지 떠났으니 밀라노 주변 도시와 일부 국가를 함께 둘러본 후 일정을 마쳤다.
여행 이후 피로는 생각보다 오래 오래갔다. 시차 적응 문제와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신체적 피로, 여행이 끝났다는 허탈감에 며칠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여행 이후 회복 방법을 검색해 보니, 평소 즐기던 운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특히 수영이나 천천히 걷는 트레킹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히 나는 앞서 언급한 수영과 등산을 포함한 트레킹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가격이 적당하다면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선택하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꼭 등산을 한다. 이번에도 시차 적응과 피로 해소를 위해 오랜만에 국내 등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주말 산행은 북적이는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적이 드문 평일에 홀로 여유롭게 걷는 것을 선호한다. 목적지를 고민하다 선택한 곳은 한양도성 순성길로 유명한 북악산이었다. 백악마루를 중심으로 뻗어 있는 여러 등산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북악산 2코스다.
지난 5월, 영남 지역을 휩쓸었던 산불로 다양한 봉사가 진행됐다. 나 역시 봉사를 위해 영덕에 방문했는데, 현장에서 느꼈던 산불의 무서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해 말바위까지 가볍게 오른 후, 말바위에서부터 창의문까지 이어지는 북악산 2코스는 1시간 내외의 시간 동안 자연과 도심을 함께 즐길 수 있어 그 어느 코스보다 즐기기 좋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종각역에 하차해 마을버스를 타고 와룡공원으로 이동했다.
광화문과 북촌 한옥마을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반겨줬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와룡공원에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산불 조심'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는 산불 소식이 떠올라, 안내문을 평소보다 세심하게 살펴봤다.
우리나라 산림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불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참혹한지, 지역 주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실감하기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난해 영남 지역 산불 이후, 진달래 심기 봉사를 위해 방문한 영덕에서 마주한 흔적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뿌리가 타버려 벌목할 수밖에 없다는 군청 담당자의 설명, 관광객이 크게 줄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풍경이 허전하다는 택시 기사의 한숨, 그리고 집과 가축 등 생계 수단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웃들의 소식까지. 현장에서 마주한 산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고 잔인했다.
봉사를 다녀온 이후부터는 괜히 산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등산 전 평소 흡연을 하지 않음에도 혹시 모를 인화성 물질을 갖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산자락에 연기가 보이는 것 같으면 더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특히 추운 겨울이 지나,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봄철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철에는 등산객이 늘어나지만, 계절 특성상 건조한 바람이 불어 산불이 발생하기 더욱 쉽다고 한다.
북악산 등산로 입구에 있던 위해물품 보관함. 라이터 한 개가 보관돼 있었다. 입산 시 인화물질은 절대 소지해선 안 된다.
산불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산을 즐기며 산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산불 예방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북악산 탐방길 입구인 와룡공원에서는 '산불위해요소 보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강조하는 산불 예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입산 통제와 화기물 반입 금지다. 입산 통제는 등산 시 안전이나 산불 위험이 높은 구간을 통제구역이나 폐쇄 구간으로 지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통상 산불조심기간(2~5월, 11~12월)에는 입산이 통제되거나 등산로가 폐쇄되기도 한다.
내가 찾은 북악산의 경우 서울 한가운데 있어, 경호상의 이유로 입산 시간제한만 존재했지만, 만약 교외나 지역으로 등산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면 정부 주도로 주요 누리집에 고시된 내용과 관할 산림부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입산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등산이 가능한 곳이라 하더라도 화기물을 지참하고 입산하는 것은 금지된다.
대표적으로 라이터, 성냥, 담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만약 깜빡하고 지참한 상태라면 위해요소 보관함이나 입구의 안내소를 방문해 도움받는 것이 좋다. '꺼내지 않으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절대 금물! 산불은 한 번 발생하면 진화가 훨씬 어렵기 때문에 발생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갈림길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과 입산 시작점 근처에는 산불 무인 감시장비가 운영 중이었다. 산림청은 주요 산을 중심으로 유무인 감시장비로 산불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등산 중에도 산불 조심과 관련된 홍보물은 주기적으로 보였다. 봄철 산불 조심 기간 안내, 실수로 인한 산불도 처벌된다는 내용, 화기 소지 금지 안내 등이 주요 쉼터와 교차로마다 안내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등산로에서 산불 예방 관련 안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반복되는 산불 피해 소식을 떠올리면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유사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산불 진화 장비 보관함. 사용법이 함께 부착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숨이 가빠지고 땀방울이 맺힐 즈음, 산불 진화 장비 보관함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소화기, 펌프, 삽 등 산불 초기 대응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산불이 발생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 위급 상황 시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소화기나 펌프 사용법, 삽으로 산불 확산을 막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어 일반인이 초기에 화재 진압에 나서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고개를 하나 더 넘어 도착한 휴식 공간에서도 산불 관련 홍보물과 방재 시설을 볼 수 있었고, 등산로 곳곳에는 무인 감시장비가 운영되고 있었다. 평소 자주 찾던 북악산임에도 산불 예방을 위한 노력이 이토록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역시 관심을 가져야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산불은 실수로 일으키더라도 처벌받는다. 나는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우리 산림을 잘 보존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한편, 산불이 발생하는 원인 중 두 번째로 높은 이유인 불법 소각에 대해서도 주의가 요구된다. 산불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인 입산자 실화(38%), 그 뒤를 이어 불법 소각 역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원인이 전체 산불 발생 원인의 약 60%에 달할 정도니, 불법 소각 역시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인 셈이다.
산불은 개인의 편리함과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익숙함 속에서 시작된다. 불법 소각은 산불 피해는 물론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잠깐의 방심으로 발생한 산불은 실수라 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겠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도 지났다. 한두 차례의 꽃샘추위가 지나면 완연한 봄이 찾아오고, 산을 찾는 국민 역시 부쩍 늘어날 것 같다. 아름다운 산이 많은 대한민국의 산림 자원을 다음 세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관련 수칙을 잘 숙지한 뒤 등산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