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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살게"…농어촌 기본소득이 만든 연천군 청산면의 변화
[국민주권정부 1주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역 17개 군으로 확대 시행
지역화폐가 만든 소비와 공동체 회복의 현장을 찾다
2023년 12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연천역까지 연장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연천을 찾는 길이 한층 가까워졌다. 평일 아침 서울역에서 출발, 전철로 두 시간 남짓 달려서 도착한 연천은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 '서울 근교로 소풍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국민주권정부 1주년을 맞아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공동체 회복의 현장을 소개하기 위해 경기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를 방문했다. 평일 오전에 방문한 경기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드문드문 자리한 상점 출입문에는 '연천사랑카드', '경기지역화폐' 사용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작은 표지 하나에도 이곳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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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만나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생활에 보탬이 된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취재를 이어갈수록 농어촌 기본소득은 단순한 생활비 지원을 넘어 지역 안에서 소비를 일으키고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생활비 부담 덜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
궁평리는 청산면의 중심지다. 예전 청산면 소재지가 있던 곳으로 중학교와 농협, 금융기관 등이 모여 있어 청산면 주민들의 생활권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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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화 궁평리 이장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묻는 말에 "생활에 보탬이 많이 됐다"라고 말했다.
"한 달 15만 원씩이면 1년에 180만 원입니다. 조금만 보태면 월동비가 된다. 예전에는 생활비에서 써야 했던 돈을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경제적인 부담이 많이 줄어든 셈이죠."
생활비에 보탬이 된 기본소득은 자연스럽게 지역 소비로 이어졌다.
한 이장은 "마을 안에서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그전에 이곳에 없었던 미용실이 생기고 통닭집도 생겼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미용실과 통닭집이 생긴 것은 농어촌 기본소득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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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청산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염수경 대표도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이후 매출이 늘었다"라며 "주민들이 받은 지역화폐를 갖고 와서 떡을 맞추고 생활용품을 구매하면서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보완점도 제시했다.
"청산면에서만 시행되던 때에는 소비가 이 지역에 집중돼 상권이 더 활기를 띠었는데, 연천군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지역 내 소비가 연천읍 등 인근 중심지로 분산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염 대표는 "정말 낙후된 면 지역을 선별적으로 지원했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더 컸을 것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지원 방식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연천군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농어촌 기본소득 지급액은 누적 약 278억 원이며, 이 가운데 약 224억 원이 사용돼 80%가 넘는 사용률을 기록하고 있다. 청산면 주민등록인구는 2021년 12월 3895명에서 2026년 5월 기준 3920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지역화폐 가맹점 수도 2170곳에서 2195곳으로 늘었다. 올해 2월 1일 이후 연천군 신규 창업은 54곳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음식점이 20곳으로 가장 많았고 미용·뷰티업 8곳, 카페 3곳 등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 "오늘은 내가 낼게"…사람을 이어주는 15만 원
청산면을 천천히 걸어보니 농촌 특유의 한적함이 먼저 다가왔다. 넓은 논과 밭 사이로 마을이 이어졌고, 골목을 오가는 주민 대부분은 고령층이었다. 상점도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한태화 이장은 "예전에는 품앗이도 하고 장례가 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유지했어요. 지금은 과거보다 생활이 훨씬 풍족해졌지만 공동체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농어촌 기본소득이 주민들을 다시 이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전에는 커피 한 잔, 밥 한 끼도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오늘은 내가 낼게'라고 먼저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 작은 변화가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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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커뮤니티아트센터에서 희식 커피를 운영하는 우종필 대표는 귀향한 지 5년째다. 주민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는 그는 농어촌 기본소득이 가져온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월 15만 원은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 어르신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우 대표는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써보지 못한 어르신들이 기본소득을 받는 날이면 손주의 손을 잡고 편의점을 찾아 과자를 사주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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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살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먼저 주저 없이 건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 말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게는 자존감이고 삶의 활력입니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평생 농사일을 해 온 어르신들에게 월 15만 원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 돈이었다.
취재하며 깨달은 것은 농촌에 나눔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예전에도 자신의 노동으로 키운 농산물과 음식을 이웃과 기꺼이 나눴다. 달라진 것은 '현금으로 하는 나눔'이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주민들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오늘은 내가 살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자신감을 선물하고 있었다.
◆ 지역 소멸 해법의 시작…지속가능성은 과제
농어촌 기본소득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공동체 회복, 농촌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농촌지역 주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현재 전국 17개 시범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연천군은 전국 최초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한 지역이기도 하다. 물론 농어촌 기본소득만으로 지역 소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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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필 대표는 "청년이 정착하려면 기본소득뿐 아니라 일자리와 주거 여건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한태화 이장 역시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마을과 행정이 함께 지역공동체 회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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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친 뒤 한태화 이장의 추천으로 한탄강 출렁다리를 찾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강변에는 베개용암이 펼쳐져 있었다.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화산지형을 연천에서 만난 것도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한낮의 더위에도 출렁다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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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곡역으로 향했다. 역 앞에는 관광안내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소풍을 떠나듯 연천을 찾아 출렁다리를 걷고 한탄강의 절경을 감상한 뒤 관광안내소에서 연천의 다양한 관광 정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정이 될 듯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산면까지 발걸음을 옮겨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길 권한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월 15만 원이 적은 돈일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온 농촌 어르신들에게는 손주에게 과자 한 봉지를 사주고,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할 수 있는 소중한 여유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그 한마디는 단순한 소비의 표현이 아니었다. 지역 내에서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이어주며, 잊혀가던 공동체를 조금씩 되살리는 시작이었다. 청산면 궁평리의 조용한 골목에서 만난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정책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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