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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 대신 '추첨 판매'…초등 교실에서 피어난 우리말 사랑

초등 5학년 교실에서 시작된 언어 순화 바람
5학년 아이들의 기특한 한 줄 다짐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천하는 쉬운 우리말

2026.07.22 정책기자단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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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외래어 앞에 멈춰 선 아이들의 호기심

교실 정면의 커다란 칠판 위로 세 가지 단어가 나란히 적혔다. 래플(추첨 판매), 바이브 코딩(대화형 코딩), 제로 클릭(무방문 검색). 매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며 수많은 유행어를 쏟아내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었지만, 이 낯선 단어들 앞에서는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2026년 7월 중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실의 풍경이다. 이날 수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26년 1차 다듬은 말 보도자료를 활용해, 일상 속 무분별한 외래 용어 사용을 돌아보고 올바른 언어 습관을 다짐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토의 차시였다.

◆ 외래어와 외국어, 그 한 끗 차이를 배우다

본격적인 토의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외래어와 외국어의 차이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두 개념을 혼용해 사용하지만, 언어 순화의 관점에서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래어와 외국어 (본인 촬영)
외래어와 외국어 (본인 촬영)

컴퓨터, 텔레비전처럼 이미 우리말에 대체할 단어가 없어서 굳어진 외래어는 우리말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충분히 우리말로 바꾸어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들여와 사용하는 래플이나 제로 클릭 같은 단어는 외국어 표기에 해당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 우리가 이미 유용하게 쓰는 외래어를 모두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쉬운 우리말 표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어를 남용하는 습관을 반성해 보자는 취지였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이 과연 꼭 필요한 외래어인지, 아니면 바꾸어 써야 할 외국어인지 스스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 일상 속 소통의 벽, 아이들이 말하는 외래어 남용의 문제점

이어진 모둠별 자유 토의 시간에서는 외래 용어가 무분별하게 쓰일 때 일상생활에서 어떤 불편함과 소통의 단절이 생기는지에 대해 아이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모둠의 한 학생은 할머니와 함께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주말에 할머니를 모시고 새로 생긴 동네 식당에 갔는데, 메뉴판이 온통 영어와 낯선 외래어로만 가득 차 있어서 할머니께서 음식을 고르지 못하고 당황해하셨다는 경험담이었다. 결국 자신이 일일이 설명해 드려야 했다며, 만약 혼자 가셨다면 주문조차 못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읽을 때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다 보면 제목이나 본문에 뜻을 모르는 외래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를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토의 준비를 위한 학습지 (본인 촬영)
토의 준비를 위한 학습지 (본인 촬영)

아이들은 토의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뜻이 통하지 않는 외래어의 남용은 결국 세대 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커다란 벽이 되고, 정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지식의 격차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거창한 사회적 비판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상에서 느낀 소외감과 불편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토의였다.

◆ 74.9%의 목소리, 문체부 보도자료를 활용한 우리말 다듬기 퀴즈

수업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교사는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의 2026년 1차 다듬은 말 보도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국가 기관에서 국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어려운 외래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특히 아이들의 이목을 끈 것은 구체적인 수치 데이터였다. 이번 다듬은 말 선정을 위해 전국 15세 이상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국민 수용도 조사 결과가 제시됐다. 조사 결과, 국민이 우리말로 가장 시급하게 바꾸어 써야 한다고 꼽은 외래 용어 1위가 바로 래플(74.9%)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교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반발)가 74.2%, 허위 신고로 경찰력을 낭비하게 하는 스와팅(강력 범죄 허위 신고)이 73.3%, 다른 기업의 기술을 활용하는 서드 파티(외부 협력사)가 72.9% 순으로 조사됐다는 통계를 보며, 필자는 아이들이 자신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른도 이 단어들을 어려워하고 바꾸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우리말 다듬기 매칭 퀴즈 게임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아이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단연 래플이었다. 제한된 공급량 때문에 추첨을 통해 판매한다는 긴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이를 추첨 판매라는 네 글자로 간결하게 매칭했다. 일상 언어를 사용해 컴퓨터 명령어를 작성한다는 어려운 개념의 바이브 코딩은 대화형 코딩이라는 쉬운 말로 바꿈으로써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며 반겼다.

퀴즈를 풀고 있는 학생들 (본인 촬영)
퀴즈를 풀고 있는 학생들 (본인 촬영)

또한,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까다로운 용어들도 퀴즈를 통해 명쾌하게 정리됐다. 인공지능 기술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저급 콘텐츠를 뜻하는 AI 슬롭은 인공지능 저급 콘텐츠로, 검색 엔진에서 정보를 얻은 뒤 해당 누리집에 방문하지 않는 현상인 제로 클릭은 무방문 검색으로 매칭됐다.

퀴즈를 풀고 있는 학생 (본인 촬영)
퀴즈를 풀고 있는 학생 (본인 촬영)

아이들은 진작 이렇게 쉬운 우리말로 썼으면 뉴스나 책을 읽을 때 훨씬 편했을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이 외에도 일상에서 자주 쓰이던 리필 스테이션은 채움 가게로, 팬트리는 다용도 보관실로, 로보택시는 자율주행 택시로 연결해 가며, 교실은 퀴즈를 맞히는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 찼다.

◆ 교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올바른 언어 습관을 향한 한 줄 다짐

수업의 마지막 차시는 오늘 배우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언어 습관을 약속하는 나의 한 줄 다짐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학습지에 자신의 다짐을 꾹꾹 눌러써 내려갔다.

학생들이 적은 다짐 (본인 촬영)
학생들이 적은 다짐 (본인 촬영)

뜻을 모르는 외래어를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유행처럼 따라 쓰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외래어를 다듬어 우리말로 사용할 것이라는 기특한 다짐까지 적었다.

이날 진행된 5학년 국어 수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언어 순화 노력이 결코 딱딱한 문서나 행정 절차에만 머무는 정책이 아님을 증명해 줬다. 어려운 외래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일은, 결국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교실과 가정,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의 벽을 허물기 위한 가장 따뜻하고 실천적인 약속이었다.

어른들의 필요로 만들어진 행정 정책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살아있는 교육으로 재탄생했을 때, 교실에는 변화의 씨앗이 심어진다. 오늘 다듬은 우리말의 의미를 배우고 올바른 언어 습관을 다짐한 아이들의 작은 첫걸음이, 미래의 우리 언어문화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보도자료) 어려운 외래 용어 '래플', 쉬운 우리말 '추첨 판매'로 쓰세요

이수현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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