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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을 10대들의 문화로 남겨두라
2004 여자프로농구(W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는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정미란이 아니라, 스포츠 얼짱으로 뽑힌 신혜인이었다는 사실은 외모지상주의에 치우친 얼짱 신드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모든 매체들의 한결 같은 관심 덕에, '얼짱 신혜인 여자농구에 활력소될까' 와 같은 선정적 기사들이 주요 일간지 스포츠 면을 장식해도 여론의 뭇매를 쉽게 피해 갈 수 있었다.
대안 미디어로서의 인터넷, 주목 받는 1인 미디어
블로그의 등장이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불 붙은 블로그의 인기 덕에 우리는 실로 1인 미디어 시대의 인프라를 활짝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세상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기존의 미디어가 성처럼 굳건하게 만들어 놓은 스타 시스템에 뛰어 들지 않아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관문이 열린 것이다. 콘텐츠 소비자였던 네티즌이 스스로 콘텐츠 생산자가 된 1인 미디어의 시대엔, 지적 능력이나 신체적인 능력 뿐 아니라 외모 또한 콘텐츠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네티즌도 스타가 되고 유명해 질 수 있다는 점은 대안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의 위력이며 매력이다. 네티즌은 얼짱 신드롬을 통해 그것이 현실화 되는 것에 열광했다. 얼짱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알게 되는 '스타' 로 태어나는 이들은 수천만 네티즌 가운데 불과 두자리수를 겨우 넘는 정도로 극히 미미하다. 나머지 대다수의 네티즌은 그저 얼짱 신드롬이라는 문화 현상을 관람하고, 기꺼이 팬이 되어 '참여'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취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얼짱이 유명해지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그를 직접 만나고, 직접 악수도 했던 얼짱이 어느날 영화 배우로, 모델로 '뜨는' 과정은 지난 해 노사모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 문화 현상이다. 10대들은 얼짱들을 닮고 싶어하고,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19세기 초 사진 기술이 발명되고 1백여 년 전 영화 기술이 등장하면서 세계는 영상 복제의 시대로 급격하게 돌입했고, 그 덕에 외모에 대한 관심은 이후 세대의 불문율처럼 돼 버렸다. 독재권력처럼 군림하면서 줄기차게 사회 다수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왔으며 외모지상주의는 그야말로 필요악처럼 더욱 더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들에겐 보다 빠르게 확산될 여지가 크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나누는 화상 채팅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 특히 10대 네티즌들은 디카(디지털카메라), 폰카(핸드폰카메라) 열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얼짱' 이라는 이미지 문화 현상을 만들어 냈다.
얼짱 현상을 신드롬으로 부추긴 건 온라인 미디어 책임
하지만, 얼짱 현상을 '신드롬' 으로까지 키운건 8할이 포털을 비롯한 인기 웹사이트들 덕이다 . '얼짱 콘테스트'를 상설 이벤트로 열고, '얼굴이 가장 잘생긴 스포츠 스타 뽑기' 팬투표를 하고, 아예 '스타 만들기' 사이트를 열어 얼짱 열기에 기름을 들어 붓기도 했다. 아기 얼짱, 아줌마 얼짱도 뽑고, 심지어는 게임 캐릭터 얼짱 선발 대회나 동호회 회원들이 애견 얼짱 선발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터넷의 모든 관문은 얼짱이라는 뒷문을 통과해야 벗어날 수 있을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10대로 자라는 것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인가. 한국은 10대의 다양성을 원천봉쇄하는 사회다. 획일화된 입시 교육과 판에 박힌 일과를 강요 받는 10대들에게 해방구로서의 인터넷은 그나마 10대 문화의 다양성을 표출시키는 주요하고 다행스런 통로다. 10대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마음껏 펼친다. 10대들은 더이상 세상의 이목에 주눅들거나 쑥스러워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느 분야의 '짱'이 되고 싶어 한다. 얼짱 신드롬은 본질보다 매우 부풀려진 면이 있고 10대 문화에 기성 매체들이 자의든 타의든 휘청거린 측면이 많다.
10대의 다양한 '짱' 문화는 매우 고무적
'짱' 문화의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측면을 보자면 부끄럽게도 기성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의 다양성을 그들 스스로 개척한다는 면이다. '그놈은 멋있었다' 의 작가 귀여니는 글짱이고, 아마추어 가수 김순년은 노래짱이다. 1인 미디어 세대인 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짱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포털 사이트가 얼짱 신드롬의 값싼 상업성에 꽁깍지가 씌었다면, 이제 꺼풀을 벗고 이 다양성에 눈을 뜨기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를 쉽사리 걷어내기는 어렵겠지만 얼짱 열풍을 더 이상 부추겨서는 안된다. '얼짱 스포츠 스타 투표' 같은 이벤트가 그렇게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인용되고 해선 안될 일이다.
네티즌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웹 문화 선도를 강요할 수 없는 건, 자칫 다양성의 유일한 분출구마저 기성의 잣대로 흔들어선 안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10대의 인터넷 문화는 그 모습 그대로 남겨 두자. 20대 네티즌 문화도 마찬가지다. 대신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주요 인터넷 매체들이 상업성에 눈 멀어 그 일부를 의도적으로 확대하거나 부추기진 말자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타파와 성의 상품화 방지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여 미스 코리아 대회를 공중파에서 겨우 밀어낸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얼짱 신드롬에 미쳐가는 온라인 미디어를 보면 마치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온라인 매체들이 주도하는 얼짱 콘테스트는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얼짱 문화를 네티즌에게 돌려 줘라. 다양한 짱 문화의 하나로 돌아가라.
<국정넷포터>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readme@dreamwiz.com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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