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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①] 트로이 전쟁의 진실

고고학엔 파리스는 있고, 헬레네는 없다?

200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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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경 고대 그리스시대. 트로이와 스파르타의 평화협정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다.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 헬레네는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급기야 헬레네는 트로이로 돌아가는 파리스를 몰래 따라나선다. 이를 알게 된 메넬라오스는 노발대발해서 형인 미케네 왕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가멤논은 동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를 대동하고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10년 동안의 긴 전쟁 끝에 트로이는 결국 패해 멸망하고 만다.

최근 개봉한 영화 <트로이>
기원전 800년경 그리스의 맹인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신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트로이>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이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를 밝혀내기 위해 지난 수세기 동안 여러 과학자들이 도전해왔다.

1870년대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쉴리만 박사는 에게해와 흑해 사이의 다르다넬스 해협에 주목했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가 이 해협 근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쉴리만 박사는 다르다넬스 해협으로부터 수km 거리에 있는 히살릭 언덕에서 고대 도시국가의 유적을 발굴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존재했던 도시국가가 하나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깊이 파내려갈수록 한 도시 아래 또 다른 도시가 있는 식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자그마치 기원전 4500년경의 유적이었다.

◇ 파리스와 사랑에 빠진 헬레네 문헌에 없어

쉴리만 박사는 그곳에 있었던 여러 도시국가 중 하나가 트로이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오랫동안 트로이 신화의 사실 여부를 밝히고자 애써온 미국 신시내티대의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로즈 교수는 “여기서 발견된 잿더미, 뼈, 돌무더기를 통해 도시가 약탈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난 5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최근 미국 델라웨어대 지질학자들도 히살릭 언덕 근처의 평원에서 퇴적물을 연구했다. 그 결과 일리아스에서 전쟁터에 대해 묘사한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사실과 가깝다는 것을 알아냈다.

역사적인 내용의 사실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옛 문헌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1190년 무렵 철제무기를 사용해 오리엔트 최강 국가가 된 히타이트 왕국의 문헌에 트로이 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분쟁이 있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트로이(Troy)의 또다른 이름인 일리온(Ilion)이라는 도시와, 파리스(Paris)의 또다른 이름인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라고 불렸던 사람에 대한 기록도 있다. 반면 수천척의 군함을 진수시킨 당대 최고의 미인 헬레네의 이름이 언급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들을 토대로 고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 지역에서 그리스인들과 트로이인들 사이에 실제로 한번 이상의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이 헬레네와 파리스의 사랑 때문에 발발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파리스에 대한 기록만 발견됐고 헬레네가 기록된 문헌은 찾아내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또다른 배경에 주목한다.

◇ 사랑이 아니라 돈과 권력 때문에 전쟁이?

당시 트로이는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때문에 주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로즈 교수는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침략한 전쟁이 정말 있었다면, 그 원인은 사랑이 아니라 돈이나 권력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영화 <트로이>에서 아가멤논은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전사해 헬레네를 되찾을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로이를 정복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는데, 이와 같은 설정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신화를 널리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고고학적 증거 두 가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강한 자가 가진 단 하나의 약점을 가리켜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른다. 뒤쪽 발목 근육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불패의 전쟁 영웅 아킬레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그가 등장하는 옛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트로이인들은 그리스군이 난공불락의 트로이를 정복하기 위해 그리스군을 숨겨 놓은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 사용자 모르게 컴퓨터 시스템에 침투해 프로그램에 결함을 가져오는 트로이목마라는 IT 용어는 이 같은 그리스군의 교묘한 속임수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트로이목마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호메로스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한 고대 국가들의 전쟁에 러브스토리를 삽입한 영화 대본 작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트로이 신화를 주제로 제작한 다음 영화가 개봉될 때쯤이면 또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국정넷포터 임소형(과학동아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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