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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의 추진은 위임민주주의 원리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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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대전에서 열린 신행정수도건설 기본계획(안) 공청회. |
◆ 정책집행의 민주적 원리들
또 다른 민주주의 원리가 있다.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거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정책방향을 결정지어야 하는데, 모든 사안이 “공약” 사항일 수는 없다. 선거과정에서 “공약”으로 제시되지 않은 사안을 처리하는 민주적인 원리 역시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원리 중 하나가 코포라티즘 민주주의(Corporatism Democracy)이다. 외형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장관이나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 판단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민주적 원리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유심히 관찰하면 발견할 수 있다.
코포라티즘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아 위임받지 않은 사안 중 경제적, 사회적으로 이해당사자 집단이 분명한 경우에 실시하는 민주적 정책집행과정의 원리이다.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시민물가심의위원회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사회적 협약의 형태로 나타난다. 코포라티즘 민주주의는 이해당사자가 합의하고 이를 정부 혹은 정치권이라는 국민의 대표성을 갖는 부문이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위임” 사안에 대한 정책결정과 더불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는 정책결정의 원리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위임”받은 정책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해당사자가 분명하지 않은 정책도 존재한다. 이때 정책을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가장 의미 있는 원리가 논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이다. 논의민주주의는 대개의 경우 민주적 정책공론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 과정이 진행된다. 논의민주주의의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 정치적인 문제는 대부분 정당간의 토의와 협상에 의해 국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민주주의의 기제를 통해 형성되는 정책의 대표적인 예로는 세계화시대 교육시장이나 문화시장을 개방할 것이냐는 문제 등이 있다. 또한 생명공학의 연구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는 문제 등도 이러한 논의민주주의에 기초해서 해결해가는 경향이 강하다. 이 구조는 대부분 시민사회에서 많은 토론을 통해 자연스러운 공론이 형성된다. 이 공론을 정치권이 여론수렴의 형태로 받아들여 입법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나 정치권에 의해서 수차례 혹은 수십 차례에 걸친 국민대토론회 형식 등으로 사회적으로 폭넓게 논의를 전개하면서 의견을 수렴하여 정부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형식도 가능하다. 이는 민주노동당이나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건설과 관련된 문제를 국민대토론회를 통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행정수도건설은 논의민주주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신행정수도건설은 위임민주주의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쉬운 제도가 아니다. 복잡한 사회현실을 단순화하여 많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합의한 절차적 과정들의 복합이다. 특히 민주주의는 권력을 만들고 그것을 또한 제어하는 원칙을 정해놓은 원리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력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이 위험천만한 권력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기에 그것을 “예술”처럼 다루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는 위험 권력을 다루는 섬세한 기술이기 때문에 그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원리에 항상 기반해서 작동하고 해석되고 주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대표들은 항상 민주주의의 다양한 원리에 익숙해 있어야 하고, 모든 언어와 행위가 이 원리에 기초해서 전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민의 대표들은 자신의 행위와 발언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전체주의적 경향을 가질 수 있는 것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 특별법 통과로 '국민적 합의'는 이미 이뤄진 것
“공약”사항을 책임 있게 추진하는 것은 위임민주주의 원리의 기본임은 앞에서도 충분히 설명했다.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갖는 정부를 구성하고, 그 정부는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을 우선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가 주기적으로 보장된 다음 선거에서 제기된다. 이것이 대의제민주주의의 “책임성”의 원리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책임성의 원리가 직접적이지 못한 측면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이 중요하다. 바로 집권당이 다음 선거에서 책임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신행정수도이전과 관련된 “공약”이 주요 공약으로 제시되었고, 대통령이 선출되고, 집권여당이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것은 그 자체로 “공약”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야당이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한 조건임에도 “특별법”이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통과되었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선거에서의 “득표”를 전제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인 “책임성”이 강제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법 통과가 총선에서 충청권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행위였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정치적 행위이며, 이를 가리켜 잘못된 행위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서 다루는 의제 중 “국가적 대사”가 아닌 것이 없다. 특정해서 “신행정수도건설”만을 국가적 대사라고 강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민의 생명, 교육,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문제가 국가적 대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사안을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면, 국회는 무력화되고 헌정질서가 유린되면서 항상 “유신체제”와 같은 불행하고 암울한 헌정질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은 정부와 정당, 국회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공론을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되는 시점에서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지금처럼 적극적인 반대나 국민투표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류언론들에는 몇 건의 외부 기고자 칼럼을 통해 ‘국민투표’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어떤 신문도 국민투표를 신문의 1면 혹은 정치면의 중요한 기사로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따라서 “특별법” 통과 당시 이미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국정넷포터 박동진 phil123@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