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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차이나] 마오쩌둥의 부인들
1907년, 열네 살의 마오쩌둥은 봉건적 사상을 가진 아버지 마오순성(毛順生)의 강요에 의해 여섯 살 연상의 리바오산(李寶珊)과 첫 번째로 결혼하게 되지만 별다른 애정이 없어 곧 헤어지게 된다. 1920년, 창사(長沙) 제1사범학교 부속초등학교의 교장시절 은사였던 양창지(楊昌濟)의 딸 양카이후이(楊開慧)와 재혼하여 두 명의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녀가 장제스(蔣介石)군에게 잡혀 처형당하면서 다시 홀몸이 되고 만다.
1928년, 징강산(井岡山) 시절 서른다섯의 마오쩌둥은 당시 열아홉 살이던 혁명투사 허쯔전(賀子珍)과 세 번째로 결혼한다. 그러나 1937년 마오쩌둥과 미모의 배우출신 통역원 우광웨이(吳光維)와의 스캔들사건으로 두 사람은 중국공산당의 결정으로 이혼하게 되고 1939년 4월, 4인방의 주역이 되는 장칭(姜靑)과 네 번째 결혼을 한다.
그 이후에도 마오쩌둥은 재혼하지는 않지만 임종을 지켜주었던 열차 승무원 출신의 장위펑(張玉鳳)까지 많은 여성들을 그 곁에 두었다. 봉건 전통과 혁명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사랑의 아픔이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의 여성편력으로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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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허쯔전기념관에 있는 허쯔전의 모습. |
허쯔전이 징강산에서 닭 두 마리와 술 두병을 들고 마오쩌둥을 위문하러 간 것이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그야말로 혁명과 사랑으로 뭉친 부부였다. 1935년 허쯔전은 임신한 몸으로 1만 여km의 대장정을 완수해낸다. 허쯔전은 1929년 장녀 마오진화(毛金花)을 낳고, 1930년 둘째남자아이를 낳지만 바로 죽고, 1932년 장남 마오안홍(毛岸紅)을, 1935년 장정 중에 딸을 낳아 농민에게 맡기고, 1936년 산베이(陝北)에서 딸 리민(李敏)을 낳는 등 모두 3남 3녀를 낳지만 대장정과 혁명과정에서 행방불명되거나 어렸을 때 죽고 리민만이 생존해 있다.
더구나 대장정 때 수류탄 파편에 상처를 입은 허쯔전은 남편 마오쩌둥의 외도까지 겪게 되는데 바로1937년 여름, 통역원 우광웨이와의 스캔들이다. 결국 허쯔전은 마오쩌둥과 우광웨이와의 애정관계를 정식적으로 중국공산당에 고발하게 되고 마오쩌둥은 이를 부인하고 이혼을 신청하게 되니 허쯔전과 우광웨이는 모두 연안에서 추방된다.
허쯔전은 1937년 소련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곳에서 홀로 다섯 번째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도 곧 죽고 만다. 그녀는 이후 1947년 8월 귀국하여 저장(浙江)성 여성부에서 일하다가 1979년에는 제5기 정협위원으로 선발되기도 한다. 그리고 1984년 4월 19일 지병이 악화되어 상하이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베이징=국정넷포터 김대오(dae55555@hanamail.net)
<김대오님은> 베이징에 살며 오마이뉴스, 뉴스메이커등에 중국관련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북경바닷가'] myhome.naver.com/jindawu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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