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방북-4.2공동성명 37주년 기념 국제토론회 축사(서울 글로벌센터)
반갑습니다. 봄이 이제 다 왔는데 그러고 보니까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길어도 봄은 결국 온다 하는 목사님 메시지가 또 생각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오늘 송경용 우리 이사장님, 신부님께서 문익환 목사님을 기리면서 이 시기에 우리 평화와 한반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토론회를 여신다는 말씀을 듣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잠깐이라도 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문익환 목사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문 목사님이 청주 교도소에, 우리 문성근 선생님 워낙 여러 번 가셔서 연도가 헷갈리시겠지만, 여러 번 가신 중에 1986년도에 가셨던 적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85년도에 감옥 갔을 때 86년도 청주에 계셨을 때 저희가 이쪽 사동에 있고 그 옆에, 전문용어로 이게 감옥 갔던 사람들은 사동, 사동 이렇게 얘기하는데, 옆 사동에 계셨거든요. 옆 사동에 모시고 저희가 지냈던 시간이 기억이 납니다.
교도관들을 통해서 잘 계신지 매일 안부를 전하고, 말씀을 듣고, 오늘은 뭐 하셨는지 이걸 듣는 매일매일 안부 전하는 그 일과가 저희로서는 굉장히 기쁜 하루하루의 과정이었습니다.
생각나는 것은 그때 매일 아침마다 명상을 하시면서 그때그때 명상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신 걸 전해 주셨는데 어느 날은 '오늘은 아마존에 있는 원주민들하고 대화를 했어'하는 말씀을 전해 들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이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저희는 그때도 지금 돌이켜 보면 '맞는 것 같다. 아마 그렇게 하셨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맑은 영혼과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정열을 다 갖고 계셨던, 저희에게는 저희 민족사에 또 우리 대한민국에서 해방 후에 저희들이 함께 모셨던 굉장히 귀한 어른이셨습니다.
문 목사님께서 처음에 방북하셨을 때의 충격이 아마 지금도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많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행동과 이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마 단독적 행보의 충격은 가장 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통상적 상식과 관행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우리 역사의 획을 크게 여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에 가서 그전에까지 포함해서 두 번 밴스 부통령, 한 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는데 저는 그 과정을 통해서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이든 미국 측에서 북측과의 대화 또는 그에 대한 관심이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우리의 판단과 진단에 대해서 전하고,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떤가라는 이야기도 하고, 그에 대한 일정한 반응도 확인을 했었지만,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죠.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또 전체 상황을 바꿀 만큼 그렇게 우리의 힘이 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도 현실이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저희들은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라는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귀한 깨달음을 저희에게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던 문 목사님을 기리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모든 논의가 참으로 귀하고 실질적인 그러한 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문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기리면서, 그리워하면서 오늘 토론회가 잘 마무리되기를 빌겠습니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것은 조금 전에 영상 인사하신 우원식 의장님 계신 곳으로 저는 가야 됩니다. 2시에 지금 저희가 국회가 본회의가 시작돼서요. 먼저 이렇게 자리를 뜨더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