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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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웅 녹서포럼 의장과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는 AI를 화두로 일과 산업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하고, 최배근·우석진 두 교수는 민생경제를 둘러싼 이슈에 대해 조망한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와 안보 이슈를 점검하고, 홍석경 서울대 한류연구센터 소장은 한류의 미래를 탐사한다. 유명 셰프이자 작가인 박찬일은 특유의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우리의 음식문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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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K-아빠, 돌봄의 새로운 트렌드 : 기업과 함께 세계로 한국 아빠들의 변화는 개인의 진심에서 출발했지만, 그 여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주체는 기업과 사회, 그리고 국가다. 지금 우리는 '일하는 아빠'와 '돌보는 아빠' 사이에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전환기에 있다. 이제는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세상을 움직일 차례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지금 한국의 아빠들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유아교육 현장과 놀이터에서, 재택근무 중 점심시간을 쪼개 이유식을 먹이는 장면에서, 육아휴직 후 다시 돌아온 회의실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아빠상'을 목격한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24년 기준 4만 명을 넘어섰고, 주요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아빠 육아 교실'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디지털로 정보를 접하고, 아버지 세대의 부재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MZ세대 아빠들이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개인의 결단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이제는 기업, 정부, 사회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일상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형 양육 문화 'K-아빠(K-DADDY, 케이-대디)'의 출발점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제47회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5.2.6.(ⓒ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유연근무·재택 기반의 돌봄 균형이 성과로 이어지다 기업은 돌봄에 무관한 조직이 아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재택 기반 유연근무를 보장한 기업일수록 이직률이 낮고, 직원 만족도가 높으며, 성과 지표도 높다는 데이터는 이를 입증한다. 파르나스호텔의 경우 최근 3년간 육아기 단축근무제 사용률 2배 이상,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60% 이상 증가 등 가족친화적인 근무환경으로 자발적 퇴사율이 2023년 기준 8%에서 2025년 상반기 3%까지 감소하며 이직률이 낮아지고 신입사원 지원자는 늘어나고 있다. ◆ 'Care Buddy'와 'Care KPI'로 실질적인 문화 전환 돌봄 문화가 기업에서 작동하려면 제도만큼이나 '실행 구조'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전후 복귀자를 1:1로 연결하는 Care Buddy(케어 버디)를 통해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팀워크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조직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에 '휴가 사용률'이나 '돌봄 균형 지표'(Care KPI, 케어-케이피아이)를 포함하면, 상사가 먼저 실천하고 팀원이 따를 수 있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A 대기업에서 상급자가 2주간 육아휴직을 먼저 사용하자, 팀 전체 휴가 사용률이 약 18 %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기업 내부 보고 기준), 이는 '리더의 행동이 조직문화 전환의 실질적 계기'라는 조직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 양육친화기업 인증과 글로벌 확산 전략 정부는 지금이야말로 K-아빠 생태계에 필요한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식의 기업 참여 유도와 글로벌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 가족친화기업 인증 마크를 받은 중소기업에 대해 정부가 RD, 세제, 해외 진출 투자 우선 지원, 해외 투자 유치 설명회(예: KOTRA, 산업부 주관)에서 K-아빠 인증 기업에 대한 우대 투자 모델 제시 'Care ESG' 개념을 반영한 공공조달 및 정부 위탁 사업 우선 선정, '100인의 아빠단' 국제 공동사업화 UNESCO, OECD 가족정책 센터,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해 아빠 육아 참여 확산 프로그램 수출, 아빠 대상 리더십 워크숍 등 이러한 제도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 생태계 구조 혁신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 K-아빠, 이제는 문화와 콘텐츠로 세계를 연결할 때 돌봄은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영역이다. 케이-팝(K-POP)처럼, 한국의 아빠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아이와의 애착, 성장, 협력의 이야기는 세계에 통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공유되는 아빠들의 육아 챌린지 중 100인의 아빠단 콘텐츠의 누적 노출 조회수는 1800만 회에 달한다. 기업 주도의 아빠육아 일기 스토리텔링 마케팅, 유튜브·OTT를 기반으로 아빠 육아 웹시리즈, 브랜드와 협업한 육아 콘텐츠,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아빠와 국내 아빠들의 글로벌 육아 교류 콘텐츠 제작 등 K-아빠 기반 공공외교형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상의 문화 콘텐츠가 한국문화의 인식을 바꾸고 세계로 연결될 수 있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브랜드 신뢰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돌봄은 더 이상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 아빠들의 변화는 개인의 진심에서 출발했지만, 그 여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주체는 기업과 사회, 그리고 국가다. 지금 우리는 '일하는 아빠'와 '돌보는 아빠' 사이에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전환기에 있다. 이 균형을 사회 전체가 지지하고 확장할 때, K-아빠는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한국의 새로운 사회 혁신 모델이자 세계가 주목할 기준이 될 것이다. 이제는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세상을 움직일 차례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7.24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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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초고령사회…'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답해야 할 시간 고령화는 '장소에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시간에 따른 과정'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이 아니라, '동행'이며, '정책'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 반응하는 환경'이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는 이제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일상의 기반이 되는 주거와 지역, 서비스 체계는 여전히 '젊고 건강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 삶이 점점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고령자'라는 이름의 대상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필자가 정책 칼럼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과정으로서의 고령화'에 대응하는 생활환경의 전환이라는 관점이다.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이 여전히 특정 연령대만을 겨냥해 설계되고, 고령화에 따른 다양한 욕구가 개별적으로 분절된 채 대응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미래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글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10편의 칼럼을 통해 필자가 제안해 온 정책 메시지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새 정부가 초고령사회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고령자 지원'의 차원을 넘어, 모든 시민의 생애주기 전반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사회적 전환기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정책과 제도는 고령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상생활의 복합적 문제를 분절적으로 다룬다. 돌봄은 복지의 영역으로, 건강은 의료의 영역으로, 주거는 부동산의 영역으로 각각 흩어져 있으며, 이들 간 유기적 연결은 제도적으로 거의 설계되어 있지 않다. '살던 집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는 오랫동안 고령친화적 삶의 이상으로 여겨졌고, 많은 정책과 사업이 그에 맞추어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건강 상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돌봄과 지원에 대한 욕구는 점진적으로 혹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한 사람의 '노화'가 기존 주거지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전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결국 고령자의 삶을 특정 공간에 고립시키고, 다양한 사회적 자원과의 연결 가능성을 차단하게 만든다.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주거복지대전 내 주거약자 케어존에서 관계자가 노인체험복을 설명하고 있다. 2022.12.2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즉, '장소에 머무는 노화'에서 '과정에 대응하는 생활환경'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화는 장소가 아니라 과정이며, 따라서 대응도 고정된 공간이 아닌 유연한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거 공간이 변화에 적응하고, 복지 서비스가 연계되며, 이동성과 사회적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일상의 기반이 필요하다. 단순히 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응은 고령자만을 위한 정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령친화도시는 특정 세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도시여야 한다. 결국 오늘의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각자의 시점에서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도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초고령사회 대응은 '고령자 정책'을 넘어서 생애주기 전체에 대응하는 정책 전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전환의 시작점은 '어디서 나이 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령화 대응의 방향이 '공간에 머무는 것'에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망의 재구성'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등의 모델은 고령자의 신체적 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서비스 연계는 물론, 사회적 고립을 막고 삶의 목적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발전한 NORC는 인위적인 고령자 거주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고령자가 밀집된 지역을 기반으로 건강관리, 주거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이는 '어디에 사는가'보다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하다는 관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CCRC는 건강 상태에 따라 독립적 거주에서부터 간병이 필요한 단계까지 연속적인 돌봄이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되며, 고령자의 삶의 전환에 따라 적절한 환경이 유기적으로 제공되도록 설계된다. 이는 '고령자 시설'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서, 삶의 변화를 수용하는 생활환경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UBRC 모델은 대학 캠퍼스 인근 또는 내부에 고령자 주거지를 조성하고, 세대 간 교류와 평생학습, 건강 프로그램을 연계함으로써, 단순한 돌봄을 넘어 지속적인 삶의 의미와 소속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 바로, 고령화라는 과정을 하나의 '삶의 통합적 변화'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주거·의료·사회적 자원들을 '동선 위에서 엮어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모델은 단순히 복지시설의 하나가 아니라, 삶의 전환을 동반하는 인프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동안 고령자 주거복지정책의 틀을 '시설'과 '재택'의 이분법으로 구분해 왔다. 그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령자의 삶의 전환 지점들, 그리고 그 지점마다 요구되는 환경과 서비스의 연속성은 제도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계속 그 집에 살아야 오래 사는 것"이라는 단선적인 슬로건은, 오히려 주거 이전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결과적으로는 서비스 미이용이나 방치로 이어지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자의 삶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인 변화의 연속이다. 신체 기능의 저하, 배우자의 사별, 소득 구조의 변화, 돌봄의 필요 등은 시간과 함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변화들이며, 주거와 복지, 보건의 영역은 이 변화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살던 집에 머무르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기보다는 고령자의 변화에 맞춰 주거와 서비스가 함께 이동하고 조정될 수 있는 유연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들기(Agin in Place)'와 '지역공동체와 함께 나이들기(Aging in Community)'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고령자가 살아가는 공간은 더 이상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라는 물리적 단위에 갇혀서는 안 된다. 지역의 보건소, 작은 도서관, 마을식당, 경로당, 복지관, 공원, 골목길 모두가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며, 이들의 '네트워크'가 곧 고령친화도시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가 아닌,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도시, 즉 전 생애 주기를 포괄하는 연령친화도시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준비해야 할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의 핵심 방향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를 이미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령자의 삶을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 보는 정책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재택이냐 시설이냐, 복지냐 의료냐 하는 이분법적 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령화는 진행형의 과정이고 이에 따라 주거환경과 서비스체계도 함께 유기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러한 대응은 개인의 '집'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와 도시 전체가 함께 유연하게 전환하는 구조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UBRC(대학 기반 고령자 커뮤니티), NORC(자연발생적 고령자 밀집 지역 지원), CCRC(연속적 돌봄이 가능한 주거복합체) 등 다양한 해외 모델은 참고할 만한 사례일 뿐,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우리 실정에 맞게 설계하고 구현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정책적 통합력이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현재 국정과제 설정을 위한 논의와 구상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초고령사회에 대한 정책 대응 역시 고령자 지원을 넘어,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사회 전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에 머무르지 말고,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진정한 고령친화도시란,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하는 도시이며, 주거와 서비스, 커뮤니티가 함께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삶의 유연성을 지켜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늙음이라는 생애 과정을 '견뎌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 준비할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방향도 바꿔야 한다. 지원이 아니라, 동행을 위한 체계로. 정책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 반응하는 환경으로.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 2025.07.22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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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활성화 위한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변화 소상공인은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생경제의 근간이자 고용의 중요한 축이다. 기존 소상공인 지원이 이들을 지원대상으로만 가정해 보편성이라는 패러다임을 중요시했다면, 새 정부는 선별 지원, 성장 지원을 통해 소상공인을 민생경제 주체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정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소상공인상생연구실장 소상공인은 소기업 중 상시근로자가 10명 미만인 경우를 말한다(소상공인기본법 제2조). 즉 사람(인)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사업체를 일컫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소상공인 개념은 1998년 프랑스를 방문하고 온 김대중 대통령이 소기업보다도 작은 점포 수준의 사업체를 소상공인으로 명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IMF로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고용이 사회문제화 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점포 수준의 서비스업 사업체, 즉 소상공인 창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2022년 기준 소상공인 수는 766만 개로, 전체 사업체의 95.1%, 종사자 비중으로는 45.9%, 매출액으로는 17.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주체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중소기업 기본통계). 코로나19가 경제환경(침체기), 시장환경(온라인시장 전환), 기술환경(디지털기술 상용화) 변화와 결합되었고, 이것이 다시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리면서 소상공인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소상공인 정책에 있어서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코로나 기간 소상공인이 은행권을 통한 차입에 한계가 발생하면서 비은행권을 통한 대출규모와 대출연체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채를 견디다 못해 폐업하는 소상공인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폐업 소상공인의 증가는 사회문제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상공인에게 심각한 문제 중 또 하나로는 지역상권 침체 문제다. 인구감소는 소비 축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공실률 증가, 유동인구 감소로 연결되는 악순환에 놓여있다. 특히 소상공인은 지역상권에서 생활밀착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생활밀착업종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을 말하며, 이들 산업의 발전이 민생경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상공인은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생경제의 근간이자 고용의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올해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생활밀착업종의 5년 생존율이 39.6%에 그치는 등 상권이 발달한 서울에서조차 생활밀착업종 소상공인이 서서히 무너지는 중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여 민생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새 정부는 민생회복을 위한 소비쿠폰(13조 2000억 원)을 발행하고, 지역사랑 상품권(8조 원)을 확대했다. 특히 이번 대책은 소상공인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만큼, 소상공인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민생회복 지원금 사용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2025.7.4.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소상공인의 부채 및 폐업 문제, 지역상권 침체 문제 이외에도 소상공인은 일자리 문제, 소상공인 성장사다리 문제, 대기업-소상공인 갈등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기존 소상공인 정책이 경제성장 시기이자 인구증가 시기에, 일시적 IMF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 아래 추진되었다면, 인구구조 변화, 내수 침체, 온라인플랫폼화 등의 변화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소상공인 정책은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 하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즉, 기존 소상공인 지원이 이들을 지원대상으로만 가정해 보편성이라는 패러다임을 중요시했다면, 새 정부는 선별 지원, 성장 지원을 통해 소상공인을 민생경제 주체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경제로 급격하게 변화되는 상황에서 민간(특히 대기업과 온라인플랫폼)이 주도하는 소상공인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겨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새 정부는 특별채무조정패키지(1조 4000억 원)와 새출발기금 확대(1억 이하 저소득 소상공인의 빚 90% 탕감) 정책을 우선 내놓았다. 이는 채무상환 부담을 완화하고 부실채권에 대한 채무조정을 통해, 자영업자가 재기하여 지속가능한 경제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판단된다. 지난 6월 발표한 '3대 지원사업'(부담경감 크레딧·비즈플러스카드·배달·택배비 지원)은 영세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을 한층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렇듯 새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책들이 전국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차츰 트여주고 있다. 국정과제 발표 이후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이 더 큰 시너지로 작용되길 기대한다. 2025.07.18 정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소상공인상생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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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싱글노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싱글 노인이 되는 원인으로는 부부의 사별, 중년이혼이나 황혼이혼 후 재혼을 하지 않는 경우, 평생 결혼하지 않고 나이 드는 생애 미혼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누구라도 언젠가 싱글노후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100세 시대를 반영하여 혼자 사는 노인 즉, 싱글 노인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해면, 2014년에는 노 인인구 627만 7000명의 18.4%인 115만 2700명이 싱글 노인이었는데 2024년에는 993만 8000 노인의 22.1%에 해당하는 219만 6000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에 무려 1.9배로 늘어난 것이다. 참고로,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앞서가고 있는 일본의 경우 2015년에는 3343만 8000 노인의 17.7%인 592만 7000명이 싱글노인이었다. 이것이 2025년에는 3654만 5000노인의 22.3%에 해당하는 815만 5000명으로 늘었다(일본 인구문제 연구소 추계). 싱글 노인 문제가 크게 사회 문제화되어 있는 일본에서도 지난 10년의 싱글 노인 증가 속도가 1.4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싱글 노인의 수는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의하면 이 노인 인구 비율이 2036년에는 지금의 일본 수준인 30%를 넘어서고, 2045년에는 37%로 그 시점의 일본 비율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싱글 노인이 되는 원인으로는 부부의 사별, 중년이혼이나 황혼이혼 후 재혼을 하지 않는 경우, 평생 결혼하지 않고 나이 드는 생애 미혼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누구라도 언젠가 싱글노후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구시가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제공한 '24시간 AI 돌봄 스피커'를 보고 말을 하고 있는 주민.(대구 서구 제공) 2025.7.12.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구 선진사회에서는 노후에 혼자 사는 문제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경험해 왔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경우에는 젊은 세대, 노인 세대 합하여 전국 평균 1인가구 비율이 57%이고, 수도 스톡홀름의 경우 무려 60%에 달한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 35.5%를 훨씬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코노미스트지 조사에 따르면 미래가 어둡고 불행한 나라, 쇠락하는 나라가 아니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혼자 살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어둡고 비관적인 이미지를 갖기보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혼자 사는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꿀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 살게 되는 노후를 행복한 노후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노후의 3대 불안이라고 하면 돈(노후자금), 건강, 외로움을 꼽는다. 이 3대 불안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혼자 사는 노후에 대한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금과 보험 준비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생활비 정도는 3층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현역 시절부터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3층 연금으로 모자랄 경우에는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남편이 종신보험을 들어 두는 것도 좋다. 남편 사망 때 받은 보험금으로 혼자 된 아내가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이 경우 종신보험은 아내에게 가장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의료비 마련을 위한 의료실비보험 또한 필요하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을 당했을 때 병원비 마련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노후에 대비한 준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준비는 외로움에 견디는 능력, 즉, 고독력을 키우는 일이다. 현역 시절에 어느 정도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여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고독'에서만은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고독력을 키운다는 생각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혼자 살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립을 피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형태이다. 자녀와 같이 살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웃만한 복지시설이 없다.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일찍 경험한 일본의 경우, 노부부만 살거나 부부가 사별하고 혼자된 경우에는 18~20평의 소형평수이면서 쇼핑, 의료, 취미, 오락, 친교까지를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주거형태를 선호한다. 아직도 대형이나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노년 세대들이 참고로 해야 할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노후생활비 준비 방법이다. 종래의 남편 중심의 노후 준비에서 혼자 남아 살게 될 가능성이 큰 아내를 배려하는 노후준비로 바꿔야 한다. 65세 이상 혼자 사는 노인의 72%가 여성이고, 70세 이상인 경우에는 78%가 여성이다. 혼자 살게 되는 기간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길다. 어찌 보면 혼자 사는 노후는 여성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가 혼자 남아 살게 될 경우를 생각하여 연금, 보험 등에 가입하여 미리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가족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는 한편에 가족회복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 또한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한 건물 안에 3대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개축을 하면 세제혜택을 준다. 그리고 노인이 큰 집에 혼자 또는 둘만 살게 될 경우 젊은 세대와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룹리빙, 공유경제 등이 활성화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참고할 만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수 있는 다양한 설계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2025.07.17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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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돋보기 크리스마스의 기적, 고래의 꿈이 세계유산이 되다 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우리 상상력에 불을 붙이는 장치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은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이 거대한 바위의 장엄한 서사는, 인류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로 승화되어야 한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1970년 12월 24일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날이자 우리나라 선사 역사 연구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신라 승려인 원효대사의 흔적을 찾아 울산 언양을 찾았고, '절벽에 이상한 그림이 보인다'라는 말에 내 눈은 번쩍 뜨였다. 신라 마애불(磨崖佛)일 수 있다는 마음에 서둘러 간 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암각화가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71년 12월 25일에는 인근 대곡리에서 고래, 사슴, 호랑이,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과 사냥 장면이 실감 나게 표현된 또 다른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날 아침 연구진과 마을 사람을 태운 배를 타고 하류 계곡으로 출발한 지 10분 만에 윤기가 나는 암벽이 보였다.." 문명대 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중에서(2023) 대략 반세기 전, 1년 사이에 크리스마스 전후로 반구천 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교수의 회고담이다. 초기에는 먼저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와 나중에 발견된 '대곡리 암각화'를 묶어서 '반구대 암각화'로 기술하다가 지금은 '반구천 암각화'로 통칭하고 있다. 이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식 명칭도 '반구천 암각화'다.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데 순서를 바꾸어 발견되었고, 나란히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반구천 암각화는 선사 시대부터 무려 6000년을 이어온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성, 자연과의 교감이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라고 말하고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키워드는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이다. 제대로 평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이 지나서야 세계유산으로서 빛을 보게 됐다. 천전리 유적에는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을 따라 각종 도형과 글, 그림 등 620여 점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마름모, 원형 등의 추상적 문양이다. 후대인 신라 시대에 새겨진 명문(銘文)도 보인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7.12.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편, 반구천 암각화엔 새끼 고래를 이끄는 무리, 작살에 맞아 배로 끌려가는 고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호랑이·사슴 같은 육지동물과 풍요를 빌던 제의(祭儀)의 흔적도 생생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견된 이 놀라운 유적은 고미술학계에서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혹은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실제로 이 암각화를 '실물영접'으로 본 적이 있다. 1987년 3월, MBC 다큐멘터리'한국문화의 원류를 찾아서'를 제작하며, 동국대 문명대 교수 연구팀과 함께 그 현장을 찾았다. 계곡을 따라 깊이 들어가 처음 마주한 그 암각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에 햇살이 비치는 암벽에 50여 마리의 고래들이 살아 움직이듯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의 묘사가 아니었다. 집단의례의 도상이며, 인류 예술의 기원이며, 오늘날 다큐멘터리의 스토리보드였다. 반구천은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의 기록이자, 고래가 직립해 뭍과 하늘을 연결하던 신화의 공간이었다. 연구진과 함께 암각화를 눈앞에서 목도하고 만져보고 할 기회는 그 뒤로 다시 오지 않았다. 6000여 년 전 무렵, 동해 연안의 거주민이 바다에서 집단으로 고래를 잡았다. 그리고 뭍으로 올라 반석 같은 바위를 찾아 고래를 새겼다. 반구천 암각화는 선사인이 하늘로 띄운 기도이며, 공동체의 삶을 기록한 생활 연대기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이 자부하는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부럽지 않았다. 고래 옆에 새겨진 호랑이와 사슴, 여전히 해석되지 않은 기하문들은 미지의 코드를 품고 있다. 천전리 암각화의 다섯 개 다이아몬드 형상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추상시다. 2022년 울산MBC는 3부작 다큐멘터리로 이 신비를 탐구한 바 있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의 언어다.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수몰 위협과 싸워왔다. 고래의 유영이 기록된 바위는 댐의 수위에 잠겨 박락이 떨어져 나가고 어설픈 탁본으로 원본이 상실되기도 했다. 최근 가뭄이 잦아 암각화가 비교적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점증하는 기후변화와 댐 운영의 변수 앞에서 언제든 '반구천'은 '반수천(半水川)'이 될 수 있다. 물속 유산은 세계유산이 아니다. 등재 이후의 보호·관리 계획이 부실하다면 유네스코는 등재를 철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적의 현장'을 '수몰의 현장'으로 되돌리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진짜 과제는 지금부터다. 그동안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를 표방하며 고래 축제를 개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암각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형 테마공원과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까지 아우르는 생동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번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형 전략도 병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혹여 관광 인프라라는 명분 아래 생태 환경이 훼손되거나, 과잉개발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유산의 본질을 배반하는 일이다. 앞서 말한 프랑스 라스코 및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의 보존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뛰어난 입체감과 색채감으로 '선사 시대의 시스티나 성당'이라 불리는 라스코의 경우, 1948년 일반 공개 이후 관람객 증가로 이산화탄소, 습도, 곰팡이 등이 발생하자 1963년 진본 동굴을 폐쇄하였다. 인근에 재현 동굴을 설치하였고 2016년에는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복제본을 개관했다고 한다. 실제 동굴은 철저히 밀폐 및 감시 상태에 있다고 한다. 인류 선사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알타미라 동굴도 20세기 중반 이후 관광객 급증하면서 벽화의 균열, 박리, 곰팡이 등의 훼손 발생해 2002년에 전면 폐쇄했다. 이후 동굴 입구 인근에 정밀한 복제 동굴인 '새 동굴(Neocueva)'을 설치해 교육과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원본 동굴의 경우 2014년 이후 극소수 인원만 추첨제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경우는 문화유산의 공개와 보존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들은 동굴벽화로서 애로로 인하여 둘 다 결국 복제품을 통한 '간접 관람'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해야만 했다. 물론 문화유산은 원본이 주는 '아우라'가 최상이다. 그렇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후대에 잘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현대 기술은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AI 제어 등을 능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우리 상상력에 불을 붙이는 장치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은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이 거대한 바위의 장엄한 서사는, 인류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로 승화되어야 한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전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 MBC 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의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다.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MBC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K-콘텐츠와 한류정책을 연구하면서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 yonsol@hanmail.net 2025.07.16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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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연체자 채무조정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전략이다 한계 상황에 놓인 채무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에 기반을 둔 정의 실현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구조적 불평등과 경제적 고립의 장기화를 완화하고, 사람들을 다시 생산적인 활동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113만 명의 국민이 7년 넘게 갚지 못한 빚에 짓눌린 채 살아가고 있다. 대다수가 5000만 원 이하의 채무자이며, 그들은 이미 상환능력을 상실했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채 정상적인 금융거래는 물론, 취업과 창업의 기회조차 차단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이 경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나 사회의 비공식적 영역에서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의 피폐화된 삶을 살아가는 현상은 '연체자 개인의 책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이다. 이에 대응하여 새정부는 장기 연체채권의 채무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신규로 추진하고, 국회는 배드뱅크 운영에 필요한 예산액 4000억 원을 비롯한 새출발기금 지원 확대예산 7000억 원을 전례 없는 속도로 신속하게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하였다. 향후 정부는 장기연체채무를 금융회사로부터 일괄 매입하여 채무를 소각하는 한편,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 확대와 취약 소상공인에 대한 채무조정 감면폭을 90%까지 강화하는 등 부채정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금번 정책을 통하여 약 125만 명이 빚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리셋 장치 이번 조치는 단지 빚을 없애주는 행위에 그치기보다는, 그들이 인간다운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리셋 장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빚을 내고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라며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소 밀집지역 상가에 임대문의가 붙어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 사회에 울림을 주었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공동체의 가치와 미덕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이를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적용해 볼 때, 한계 상황에 놓인 채무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에 기반을 둔 정의 실현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구조적 불평등과 경제적 고립의 장기화를 완화하고, 사람들을 다시 생산적인 활동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세계 주요국들, 장기 연체채무 문제에 제도적으로 대응 세계 주요국들 또한 장기 연체채무 문제를 개인의 책임 혹은 일탈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대응해 왔다. 미국은 '챕터 7(Chapter. 7.)' 개인파산 제도를 통해 소득과 자산이 일정 기준 이하인 채무자의 잔여 채무를 소각한다. 특히 채무자가 성실하게 재산을 공개하고 법원 절차에 따를 경우, 파산 면책 이후 금융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한다. 독일은 '개인파산 및 채무조정제도(Verbraucherinsolvenz)'를 통해 일정 기간(통상 3~6년)의 변제 노력을 거친 경우, 잔여 채무를 탕감하고 금융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다.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채무자의 신속한 경제 복귀를 촉진하여 나라 전체의 생산성과 소비를 높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부채 구제 명령(Debt Relief Order, DRO)'을 운영하여, 일정 기준 이하의 소득과 자산을 가진 채무자의 채무를 법적 절차에 따라 소각한다. 이 제도는 고의적인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신청자의 자산, 소득, 부채 내역을 엄격히 심사한다. 이처럼 세계는 공통적으로, 장기연체자의 채무에 대해 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정당한 채무조정을 통해 경제에 복귀한 인력이 사회 전체 생산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제도 보완, 그리고 정부의 책임있는 역할 그렇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맥락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단순한 채무의 감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선별과 책임 있는 기회의 제공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원 대상을 선별할 때 대상자의 금융정보, 소득, 부동산 보유 내역 등을 면밀하게 확인하고, 재산을 고의로 은닉하는 행위가 발견될 경우에는 처벌 조항을 명확히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채무조정과 병행하여 일정 기간 내 취업활동, 직업훈련, 금융교육 이수 등의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연계함으로써 책임 있는 사회복귀 유도가 필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Joseph Arrow)는 "시장은 실패할 수 있으며, 그 실패를 교정하는 것은 정부의 정당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연체가 7년 이상 장기간 지속된다는 것은 결국 '시장 실패'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개인의 경제적 실패가 공동체 전체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장기 연체채무자의 경제활동 복귀는 단지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원력 회복에 기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채무자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와, 끝없이 낙인을 찍으며 그들을 배제하는 사회 중 어떤 사회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가?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미래의 방향이다. 2025.07.15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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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회복 소비쿠폰, 한국 경제 위기 극복할 실질적 신호탄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지역 소상공인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소비 유도를 통해 지역경제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정책은 최대 0.32%포인트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낼 것으로 예측되어, 내수진작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정부는 지난 5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7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31조 8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으로, 소비쿠폰 지급은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먼저 1차 지급은 오는 21일부터 9월 12일까지 국내 거주하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최대 4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며, 2차 지급은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에게 추가로 10만 원을 지급하여, 결과적으로 1인당 최대 55만 원의 혜택을 제공하게 된다. [그래픽] 민생회복 소비쿠폰 추가 지급(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사용 방식에 따라 사용처가 달라진다.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받은 경우 지자체가 지정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 가능한 가맹점은 지역사랑상품권 앱이나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용·체크·선불카드로 지급받은 경우에는 연 매출액 30억 원 이하의 소상공인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주로 전통시장, 동네마트, 약국, 음식점 등 지역밀착형 업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집중적으로 혜택을 제공하여 정책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그룹을 대상으로 설계된 전략적 접근이다. 한계소비성향은 추가적으로 얻은 소득 중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비율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소득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추가 소득의 대부분을 생활필수품 구매 등 즉각적인 소비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계층에 재정 지원을 집중하면 같은 규모의 재정 투입 대비 소비 확대 효과, 즉 재정승수가 극대화되어 보다 효과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사용처를 지역 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코스트코,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할인점은 물론, 백화점과 면세점 등 대기업 유통 채널에서는 사용이 제한된다. 쿠팡이나 네이버쇼핑 같은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배달앱에서도 쿠폰 사용이 원칙적으로 제한되었다. 서울시내의 한 전통시장에 온누리상품권 사용 안내가 게시돼 있다. 2025.7.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러한 사용처 제한 조치는 소비를 지역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으로 유도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와 경제적 취약계층 보호라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법이다. 정책 설계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들도 눈에 띈다. 우선 소비쿠폰의 사용 기한을 12월 10일까지로 명확하게 설정하여, 가계가 지원금을 저축하지 않고 즉각 소비로 연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불확실한 경제 환경 속에서 가계가 추가 수입이나 지원금을 저축할 가능성을 낮추고, 신속한 소비 확대로 이어져 내수 경제의 즉각적 활성화를 촉진하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추경에서 민생회복 지원금으로 편성된 13조 원 규모의 소비쿠폰에 대한 경기부양 기대가 높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최대 36%에 달하는 소비 창출 효과를 기록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번 추경이 집행될 경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14~0.32%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KDI 등 국내외 유수의 경제 전문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8% 내외로 예측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소비쿠폰지급의 경기부양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책 효과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도 존재한다. 우선, 경기침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영세상인이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업종별·규모별 할인율을 세부적으로 조정하여 소비 촉진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회성 소비 촉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소득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자영업자의 고정비용을 경감하며, 지역경제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구조적 지원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즉, 단발성 지원 방식에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복합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비는 단지 경제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국민의 심리 상태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이 단기적인 소비 활성화를 넘어 국민에게 정책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안정감을 제공한다면, 이는 지속 가능한 민생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소비쿠폰 정책이 다른 부처와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더욱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비수도권 및 재난 피해 지역의 숙박시설 이용 시 큰 폭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숙박할인권 사업과 연계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정책이 서로 연계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 취약 계층 지원 등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면,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실질적인 신호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7.11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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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세대를 잇는 도시, 연령통합사회를 상상하다 세대는 나눌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이다. 이제는 세대를 잇는 도시, 나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연령통합사회를 상상할 때이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우리 사회는 지금 출생은 줄고, 고령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커다란 변화 속에 있다. 아이 울음소리는 줄고, 동네 어르신들의 숫자는 해마다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관계까지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아이 돌봄, 청년 주거, 노인 복지처럼 각 세대를 따로 지원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다 보니,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세대 간에 서로 만날 기회가 적고, 함께 어울릴 공간도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공간,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연령통합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다음 걸음이다. 연령통합사회는 복잡한 말 같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어린이, 청년, 중장년, 어르신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시와 동네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공원 옆 벤치에서 어르신이 책을 읽고, 청년들이 지역의 마을카페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풍경.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연령통합이다. 해외에서도 이런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OECD는 최근 '모든 세대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 Ages)'라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도시 공간에서 세대 간 만남과 연결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안전한 보행환경', '세대를 잇는 공동체 공간', '공공서비스 접근성 강화' 같은 변화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양한 연령대가 공유하는 공간(카페, 유치원, 시니어케어)이 함께 배치된 주거단지 배치 설계(출처 - 온라인 건축 전문 플랫폼 ArchiDaily) 연령통합사회는 단순히 세대가 함께 사는 사회를 뜻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대 간의 경계가 지나치게 나뉘지 않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말한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동네 공간, 나이와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는 교통과 서비스, 세대 간 어울림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설계가 그 핵심이다. 미국 테네시 주 녹스(Knox) 카운티에 조성된 세대혼합형 놀이터.(출처 - https://legacyparks.org) 중요한 건, 연령통합이 복지정책의 일부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점이다. 생활환경 전체의 설계와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예컨대 청년 주택과 고령자 주거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은 단지 안에서 삶의 리듬을 나누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상호작용'이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구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와 프로그램, 그리고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는 디자인이 함께 작동해야 진정한 연령통합이 가능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된 주요 공약을 보면, 저출생 대응은 보육, 양육비, 주거 지원 중심으로, 고령사회 대응은 돌봄과 의료체계 강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정책은 분명 필요한 일들이지만, 여전히 세대별 지원을 나눠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세대를 따로 보는 방식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연령에 따라 정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고 연결하는 정책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 새 정부가 이러한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간과 정책, 서비스의 설계 전반에서 '연령통합'의 원리를 반영해주길 기대한다. 단지 복지를 확장하는 것을 넘어서, 세대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연결하는 도시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모두가 아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도시와 정책이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쪽에서는 출산율이 줄어드는 통계가 발표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령 인구가 어린이를 앞질렀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나이와 세대를 가르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전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대는 나눌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이다. 이제는 세대를 잇는 도시, 나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연령통합사회를 상상할 때이다.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 2025.07.10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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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행 고래의 꿈이 흐르는 바다 '장생포문화창고'와 고래고기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가 아니다. 여기엔 어떤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있다.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향수를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고,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한다.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포항 '구룡포'하면 과메기! 울산 '장생포'하면 고래! 수국 축제로 관광객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 주말, 로컬100에 이름 올린 장생포문화창고를 찾았다.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는 고래문화특구라서 가로등, 안내판 눈길 닿는 모든 장식과 조형물에 고래가 유유히 부유하고 있었다. 바다는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울산광역시 울주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져 있는 고래잡이 그림이나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래 뼈,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면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모이던 깊은 바다가 이곳 장생포였단 것을. 서해의 조수간만 차가 크게 8~9m에 이른다면 동해 중에서도 수심 깊으면서 조수차가 1m에 불과한 장생포는 염전 조성과 미역 같은 해조류 성장에도 유리했다. 더욱이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교차점에 있으면서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 크고 작은 강 하류에서 부유물과 플랑크톤이 유입되는 터라 장생포 앞바다에는 새우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이 들끓었다. 결국 새끼를 낳으려던 고래에게 장생포는 더없이 좋은 보금자리였을 터,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귀신고래'는 장생포의 단골손님이었다. 고래가 드나드는 깊은 울산 바다는 커다란 선박을 대는데도 쉬웠다. 문화창고에서 바라본 울산 바다.(필자 제공) 어업 성행한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더니 장생포에서도 개가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녔다 할 정도였다. 수출수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창고도 즐비했다. 1973년 양고기를 가공하던 남양냉동이 들어섰다가 1993년에는 명태, 복어, 킹크랩을 가공하는 세창냉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0년도 못 돼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버린 탓에 냉동창고는 주인을 잃었다. 폐허가 된 냉동창고의 문을 새로 연 것은 지자체와 시민이었다. 2016년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울산 남구청은 주민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해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를 개관했다.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창고는 총 6층 건물에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마련했다. 소극장은 물론 녹음실과 연습실을 둬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점이 되는 것은 물론, 특별전시관과 두 개의 커다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어. 나 같은 사람은 하루 종일 놀아도 지겹지 않겠다 싶다.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다양해 그 어떤 나이대여도 충분히 매력 있는 복합예술공간이다. 2층 체험관은 어린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에어장생(장생은 여기의 고래 캐릭터다)' 항공 체험(?)은 나이를 잊고 사진 촬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에어장생'을 타고 여행지 도착해서 입국 절차도 밟고, 환영의 즉석 사진 촬영 등 하고 나면 종이 고래 접기, 고래 붙여 바다 만들기 등 놀거리도 많다. 비행기 모형의 에어바운스까지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은 오는 8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체험전시 에어장생의 모습.(필자 제공) 정선, 김홍도, 신윤복,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화폭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이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싶을 만큼 대만족이다. 정선의 웅장한 산수화, 김홍도의 생동감 넘치는 풍속화, 신윤복의 섬세한 인물화가 붓의 결과 빛을 따라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되살아나는 걸 보니 제법 감동이 일었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클림프 같은 서양화 위주의 미디어아트를 보다가 우리의 고요하고 단아한 수묵화와 풍경화를 사계절과 산수화 풍속화의 멋에 맞춰 재구성한 미디어아트를 보니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일깨우려 노력한 '고래문화재단(문화창고 위탁 운영)'의 고심이 읽혔다. 수십 년 된 냉동 창고 문을 떼지 않고 그대로 뒀는데, 이 문 너머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다. 영하 수십도 아래로 내려가던 냉동 창고는 문화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시민의 공공 공간으로 되살아났으니, 이것이야말로 업사이클링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은 2층에서 상설 전시되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다. 울산 공업의 역사와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에서 늙으신 내 어머니 아버지는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울산석유화학단지는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이 집약된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로 한강의 기적을 선도했다. 나보다 25~30살 더 나이 먹은 부모 세대들은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성장을 온몸으로 체험한 동시대 사람들이기에 더 애잔했는지 모른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 내 문화창고2층 상설관.(필자 제공) 쉼 없이 굴뚝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탓에 일본의 '이타이이타이(아야 아야)병'같은 극심한 중금속 중독질환이 울산에도 있었다. 1980년대에 조성된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제련소, 석유화학공장, 중화학 기업들이 집중됐다. 구리·아연 제련소에서 나온 중금속(납, 카드뮴, 수은 등) 배출로 주민들이 카드뮴과 납에 노출되면서 중금속 중독 증상, 일명 '온산병'을 앓았다. 상주하는 해설사께서 더없이 재밌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에는 틀린 일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늘 지난 역사에서 배운다. 선사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장생포 고래 붐이 다시 일어난 것은 백 년도 안 된 일이다. 한반도 연근해는 고래의 황금어장이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포경업에 무심한 동안 연해 어장은 외국 포경선에 개방되고 남획됐다. 우리나라 근대 고래잡이는 일본 해방 후 일본 포경선이 철수하고 나서 그 당시에 고래잡이에 종사하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어선 2척으로 고래잡이를 시작했다. 유용한 기름으로 혹은 요긴한 단백질원으로 울산 일대 경제를 지탱하던 고래잡이는 IWC(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으로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은 전면 금지된다. 100년도 안된 장생포 고래잡이의 영광도 옛이야기가 됐다. 장생포는 長 길 장, 生 날 생, 이름 그대로 긴 생명 '고래'의 땅인가? '고래고기는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도 있듯 여전히 이 동네에선 고래고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고래는 식탁 위에만 남아있는 것이다. 장생포 고래요릿집들 대부분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하고 있지만, 고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맞다. 그러나 장생포가 아니면 언제 밍크고래를 맛보겠나?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메뉴 중 대(大)에 속하는 12만 원 '모둠수육'을 선택한다. 첫 인상은 '고래'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육고기와 닮았다.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한 접시는 어찌 이리 알록달록할꼬. 살코기, 껍질, 혀, 창자 염통, 모두 식용 가능한 고래고기는 특히 살코기에 혈색소가 많아 쇠고기보다 더 붉은 색을 띤다. 달달한 설탕과 참기름을 무쳐낸 고래육회는 거의 소와 다름없을 정도다. '一頭百味 일두백미'라고 소 한 마리에서는 100가지 맛이 난다더니 고래 한 마리에서는 최소 12가지 맛이 난다고 전한다. 내가 보기엔 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더 세분화하면 스무 가지 맛 정도는 나지 않을까 싶다. 고래 모둠 수육과 회.(필자 제공) 고래껍질 중에서 턱 아래 쭈글쭈글한 부채꼴 모양의 가슴 부위 '우네'는 대형 고래에서도 소량만 나는 고급 부위다. 가슴을 의미하는 일본어 '무네'에서 유래한 '우네'라는데, 우리의 포경어업 자체가 일본에서 기인한 것이다 보니 부위 이름에도 일본 잔재가 남아있다. '오배기(다섯겹)'는 고래의 배 쪽 기름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어 있는 건데,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지방(기름)과 근육층(살코기)이 층을 이루고 있는 부위로, 고래 특유의 맛과 식감이 가장 극대화되는 고급 부위다. 고래의 피부 아래쪽에 붙은 지방층과 그 아래의 근육층이 함께 절단된 부분이 섞여 있으니 기름의 고소함과 살코기의 쫄깃함이 조화를 이룬다. 부모님은 십수 년 전, 부산에서 비린 고래고기를 먹은 안 좋은 기억이 있기에 처음엔 마뜩잖아하셨으나 이번엔 기우였다. 부위마다, 또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간장 등 다양한 소스에 찍어 먹는 고래고기는 저마다 존재감이 뚜렷했다. 때론 보쌈 같이 부들부들 부드럽고, 다른 부위는 꼬들꼬들한 생 조갯살 같은 식감이 아주 재밌다. 신선하면서 기름기도 적당히 있는 살코기를 철판에 구워 먹으면 소고기 저리 밀쳐낼 정도로 맛나다고 주인이 너스레를 떤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가 아니다. 여기엔 어떤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있다.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향수를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다. 고래로 꿈꾼 어부들, 고래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한 6.25 피란민들과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고,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한다.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2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2025.07.07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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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폭우 침수 피해, 사전 준비로 막을 수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성 폭우의 발생빈도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극단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한발 앞선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여 상황 발생 시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면 안전할 수 있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공주대 스마트인프라공학과 명예교수)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자연재난이 대형화, 다양화, 복합화 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응 또는 예방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0세기 동안 전세계 평균기온이 0.74C 상승할 때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5C 상승하였으며, 바다 표면온도 또한 전 세계가 평균 0.5C 상승할 때 한반도는 1.4C 상승하였고, 해수면의 경우도 전세계가 연평균 0.18cm 상승할 때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은 연평균 0.19cm 상승하는 등 한반도의 기후환경변화로 인해 우리 국민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2023년 발생한 오송 지하도 침수 참사로 14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이후에도 여름 우기 때마다 침수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바 재발 방지를 위한 사전대비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오송 지하도 참사는 제방 붕괴 및 침수위험 경고에 대해 실시간 대응만 제대로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재난사고였다고 본다. "제방이 무너졌다"는 보고 후 30분 뒤 미호강 물이 궁평2지하차도까지 밀려왔을 때까지도 안전 책임을 맡은 관련 기관들의 대응은 미흡했다고 본다. 관할 기초자치단체는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침수위험 등을 전달받았음에도 광역지자체에 전달하지 않았고 자체대응도 하지 않은 듯하다. 도로통제 권한이 있는 광역지자체도 관련 기관들로부터 수차례 홍수위험 등을 전달받았지만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경찰도 지하차도 침수위험과 관련한 112신고를 받았지만 실제로 현장에 출동하였는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미호강 둑이 터지기 1시간 40분 전 굴삭기 작업 없이 인부 6명이 삽질로만 보수공사를 하는 수준의 대응을 하고 있었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사고 원인을 수사하는 검찰수사본부와 전문수사자문위원 등이 충북 청주시 미호천교에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을 살펴보고 있다. 2023.8.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돌이켜 보면, 궁평2지하차도 침수사고는 재난안전 관련 기관들의 신속한 행정조치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예를 들면, 임시제방 보강 공사가 치밀했고, 홍수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재난관리책임기관등에서 지하차도를 미리 통제했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홍수때 마다 빈번히 발생하는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폭우와 홍수경보가 발령되면 지하차도의 차량진입을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동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인 경우에는, 경찰 또는 지방정부의 차량 통제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매뉴얼화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대는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성 폭우의 발생빈도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국지적인 집중폭우로 인해 그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춰 재난 대응 및 대비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한편,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지하시설 활용도가 극대화됨에 따라 지하시설에 대한 침수 취약성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국지성 폭우가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이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지는 추세이다. 2050년 이후에는 세계와 한국 인구의 67% 이상이 도시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도시의 재난·안전 취약성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도심 침수에 대한 대비가 미리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극단적·국지성 폭우로 인해 유출이 증가함으로써 발생하는 도시의 지하 시설물과 인명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도시집중으로 인한 공간 부족으로 인해 교통, 주거, 전기설비 등의 시설물들이 침수에 취약한 지하와 저지대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고, 침수방지 시설설비인 펌프시설의 지상화, 배전시설의 지상화 등의 전반적인 침수대비 설비도 미흡한 상태이므로 이에 대한 개선 및 보강이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재난관리책임기관 등은 여름철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풍수해 방재 시설에 대한 점검, 보수·보강을 강화해야 하고, 재난관리책임기관 등에서는 재난재해 발생 대비 비상대처 계획의 수립 여부를 진단해야 한다. 재난관리 대상이 되는 주요 시설로는 하천시설, 농업생산 기반시설, 공공 하수도시설, 하수 저류시설, 빗물 펌프장, 항만시설, 어항시설, 도로시설, 산사태 방지시설, 재난 예·경보 시설 등이 포함된다. 풍수해는 지역별로 각기 다르게 발생할 수 있으며 그 피해 규모도 다양할 수 있다. 더욱이 도시지역에서 국지성 풍수해가 발생하면 인명과 시설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의 풍수해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는 첫째, 중앙정부 차원의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사전대책 수립과 운영이 중요하며, 지자체 차원의 재난역량 강화도 매우 중요하다. 둘째, 재난관리기관에서는 침수위험 예상지역에 대한 예방, 대비, 대응 전략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이를 위해 지속적인 하드웨어적 물관리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을 활용한 정보전달 시스템 구축 및 운용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이러한 자연재해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한발 앞선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여 상황 발생 시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면 안전할 수 있다. 2025.07.03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공주대 스마트인프라공학과 명예교수)